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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하루 전 지방캠퍼스 출신이라는 이유로 합격이 취소된다면? 그러나 회사에서는 합격을 통보한 사실조차 없다고 발뺌한다면?

대학 졸업반인 박아무개(D대학교, 여) 씨가 이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이다. 친구들은 취업준비다 졸업준비다 한창 바쁘지만 박씨는 절망감에 빠진 채 집에만 있다. 3주전만 해도 박씨는 친구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서울 소재 한 회계법인의 직원 수시 채용에 최종 합격한 것이다. 회사는 전화로 합격을 통보한 뒤 가능하면 빨리 출근하라고 했다. 아직 수업일수를 남겨둔 박씨는 학과 교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지방 생활을 정리했다.

"연락을 받고 회사에 갔습니다. 총무과장이 안내를 하며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라더군요. 총무과장은 각층마다 저를 '내일부터 함께 근무할 사람'이라며 소개했죠. 총무과장은 인사가 다 끝나자 제게 내일부터 하게 될 일이라며 일지 쓰는 법을 일러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부장에게 인사를 하자며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총무부장이 먼저 본부장실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총무부장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불안했죠. 아니나 다를까 30여분만에 본부장실에서 나온 총무부장은 제게 채용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본부장이 거절했다는군요. 제 학교를 지방캠퍼스가 아닌 서울캠퍼스로 착각했다는 거에요."

박씨는 또 회사가 채용 취소의 이유로 영어 실력을 검증할 수 없다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박씨는 영문과이긴 하지만 영어 성적이 썩 뛰어난 것은 아니었다. 토익 점수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박 씨는 미리 회사측에 알렸고, 회사도 자신의 영어 실력에 대해 별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박씨는 주장했다.

회사의 입장을 들어보자. ㅅ회계법인 장아무개 인사과장은 우선 박씨에게 '최종합격'을 통보한 사실이 없다고 답했다. 장 과장은 2차 면접까지 통과한 박씨에게 '최종면접'을 받으러 오라고 했을 뿐이라는 것. 그러나 담당자가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면접'을 '합격'이라고.

장 과장은 또 "입사 예정일을 묻거나 하게 될 업무를 일러준 것은 면접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일"이며 "이 과정에서 박씨가 합격한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에게 인사를 시키기는 했지만 '같이 일할 사람'이라고는 소개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박씨가 지방캠퍼스 출신인 것은 미리 알고 있었고 이 때문에 탈락시킨 것은 절대 아니라고 밝혔다. 또 박씨를 본부장실로 데려간 것은 본부장과의 최종 면접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왜 진작 서류 전형에서 박씨의 영어 성적을 문제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장 과장은 면접에서도 서류 심사가 다시 한번 이루어진다고 답했다.

그러나 본부장은 박씨에게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본부장이 박 씨를 만나기에 앞서 박씨의 서류를 검토하고 영어 실력에 이의를 제기한 것. 결국 박씨는 본부장을 만나 면접을 보기도 전에 불합격 통고부터 받은 것이다.

"최종합격을 통보했다손 치더라도 인사발령을 공식적으로 내리지 않는 한 회사는 채용을 취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 과장은 끝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노무법인 '한길'의 최공묵 실장은 "학교 성적이나 시험 성적은 서류 전형에서 심사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서 "내가 면접관이라면 박씨에게 성적표로는 증명되지 않는 실제 영어구사 능력을 시험해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실장은 "지방 캠퍼스나 지방 대학 출신들은 채용 과정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일이 허다하다"고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최 실장은 또 "현 노동법은 입사 후부터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학벌이나 출신 지역으로 인한 불이익이 발생해도 구제할 방법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억울하고, 친구들 보기도 창피하고, 무엇보다 모든 의욕을 잃어 학교에도 돌아갈 수 없다는 박씨. 그녀에게 웃음을 되찾아 줄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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