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반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대성동 자유의 마을. 행정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다. 비무장지대(DMZ) 내에 위치한 이곳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 통일의 염원이 듬뿍 담긴 감나무 한 그루가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지난 97년 10월 17일 이곳 마을에 사는 홍승순 씨(당시 66세)가 막내아들 김용복 씨(당시 36세)와 휴전선 부근 영농지역에서 도토리를 줍다 무장한 북한군 12명으로부터 강제 피랍, 북으로 끌려간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홍씨 모자(母子)는 군사분계선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어룡저수지 부근에서 2시간여 벼베기를 하고 전날 주워놓은 한 포대 가량의 도토리를 가지러 트랙터를 몰고갔다가 무장한 북한군에 의해 강제로 납북, 억류 5일만에 강제 피랍됐던 휴전선 인근 지역으로 극적 생환했었다.

홍씨 모자는 억류돼 있는 동안 북한군의 한 장교로부터 "마을에 감나무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없다"는 홍씨의 대답에 이 북한군 장교가 감나무 묘목 한그루를 선물로 건네며 "통일이 되면 감나무가 있는 집으로 찾아가겠다. 그곳에 가면 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 아니냐. 이 다음에 통일이 되면 찾아 갈테니 잘 키워달라"고 당부했다는 것.

이후 무사히 집으로 귀환한 홍씨 모자는 북한군 장교가 선물로 건네준 감나무를 자신의 앞마당에 심고 거름을 주며 애지중지 키웠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가져올 당시 6~70cm에 불과했던 이 감나무 묘목은 1m 80cm에 달할 정도로 무럭무럭 잘 자라며 통일의 꿈도 함께 키워가고 있다.

홍씨는 이 사실을 그동한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히지 않고 가슴 한구석에 담아왔다. 그것은 북의 고향에 두고온 남편 김근수 씨(72. 피랍 당시 대성동마을 이장)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남편 김씨는 고향이 황해도 개풍군 봉덕면(현재 황해남도 판문군 개풍면으로 바뀌었다고 함)이 고향으로 6형제 중 장남이었다. 그러나 6.25 이후 조부모와 부모, 5형제를 북에 두고 단신으로 피난 내려와 고향과 가장 가까운 이곳 대성동마을에 정착했다.

때문에 자신의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부모형제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 두려워 인터뷰조차 거부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15일 낮 남북정상간에 합의문을 주고 받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면서 홍씨 부부는 그동안 가슴에 묻어 두었던 피랍 당시의 사연을 털어놨다.

홍씨는 "북한군 장교와 약속을 지키려고 거름을 줘가며 정성껏 키우려 노력했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하루빨리 통일의 그날이 찾아와 북한군 장교와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파주지역신문사에서 31년째 취재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농민신문에서 접하게 됐고 중앙일간지나 각종 언론에 많이 할애되지 못하는 지역의 소외된 이웃이나 진솔된 삶을 살아가는 이웃, 그리고 문제점 등을 알리고 싶어 접속하게 됐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