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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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드디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전 카퍼레이드를 하던 교황은 김영오씨 등 세월호 유족을 보자 일부러 자동차를 멈추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김씨는 교황에게 "세월호를 잊지말아달라"며 직접 쓴 편지를 건넸다. 교황은 그를 위로한 뒤 김씨의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
ⓒ 교황방한위원회	관련사진보기

프란치스코 교황을 태운 차량이 스르르 멈춰 선다. 16일, '비바 파파'가 울려퍼지는 광화문 광장의 시복식 현장, 교황이 진중한 표정으로 노란 피켓을 든 한 여윈 중년 남자에게 다가간다. 손을 맞잡는 것도 교황이 먼저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되도록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십시오."

세월호 유가족 챙기는 교황의 '힐링 제스처'

온 국민이 지켜본 시복식 중계에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전격 출연(?)했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35일째 단식 중이다(17일 기준).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인 그의 몸은 이미 주치의가 "굉장히 위험한 상황으로 몸이 소진되어 가고 있다"고 전할 정도의 상태다. 

그런 김영오씨는 끝까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세월호"라며 교황에게 그 간절함을 전했다. 그에게 위로를 건넨 교황의 손길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를 마음 아파하는 국민들에게 진정한 '힐링'의 제스처였을 터다.

교황은 유민 아빠의 편지를 고이 받아들었다. 김영오씨의 등판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호소문이 적혀있었다.

"대통령님! 힘없는 아빠 쓰러져 죽거든 사랑하는 유민이 곁에 묻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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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유가족 이호진씨, 교황 집전 첫 한국인 세례 세월호참사 희생자인 단원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17일 오전 주한 교황대사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 이호진씨 페이스북	관련사진보기

17일 오전 서울 궁정동 주한 교황청대사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단독 세례를 받았다. 한국 신자가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일은 2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이호진씨의 세례명은 교황과 동일한 프란치스코. 김영오씨를 직접 마주한 것과 같이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얼마나 헤아리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천주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교황의 이러한 행보는 전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관심이라고 한다. 통역을 맡은 신부들의 귀띔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교황이 '세월호 참사'에 내비치는 남다른 반응과 마음 씀씀이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연설 중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오늘날 절실히 필요한 '연대의 세계화'에서도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의 어두운 현 상황을 두고 날린 직격탄이란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성직자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는 과거 교황의 발언은 되새길 만하다. 이를 "대통령이 행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고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주객전도 따로 없는 박 대통령의 감사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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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과 악수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오후 청와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러한 교황의 활약(?)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말이 없다. 14일 방한 첫날 교황을 직접 영전한 뒤로 다시 한 번 교황 옆에 서겠다는 입소문만 무성했다. '교황의 인기에 묻어가려는 전형적인 숟가락 얹기'란 비판이 인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공분을 산 말실수 아닌 말실수는 따로 있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독대 자리에서였다.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의례적인 감사, 그럴 수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자국의 참사를 언급하고 기도한 데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할 순 있다. 그런데 말이다. 전국민이 지켜본 시복식 현장에서 '유민 아빠'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교황을 보며,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감사했을까. 지난 5월, 눈물을 흘리며 책임을 통감했다던 대통령이 이후 단 한 번도 세월호 유족들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이나 하고 있을까.

교황은 위로하고, 대통령은 감사해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로는커녕 철저한 무시로 유가족들의 분노만 키우고 있다. 완벽한 주객전도. 전무후무한 참사로 인해 자식들을 잃은 자국 국민들은 경찰에게 응대시키고, 교황에게 덧없는 감사의 말이나 전하는 대통령을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프란치스코 교황님, 우리 정부를 압박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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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송강호와 김혜수.
ⓒ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영화인준비모임	관련사진보기

때마침 맞은 69주년 광복절. 박근혜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 투자활성화 방안과 함께 남북간 문화교류와 소통을 강조했다. '한·중·일 원자력 안전협의체'도 제안했다. 연설 중 '경제'와 '혁신'이란 단어가 각 22번, 16번 쓰였다고 한다. 보수 언론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함께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기 딱 좋은 시점이다.

그러나 국가 운영엔 선후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함한 세월호 특별법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하고 '안전 불감증'의 과거로 회귀한다면 경제고 혁신이 다 무슨 소용인가.

대통령이 관람했다는 <명량>의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따르는 것이고 그 충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해야 한다"는 이순신의 명대사를 들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깨달은 바가 없었던 걸까. 15일 시청광장을 가득 메운 국민들의 목소리를 헤아린다면,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유민이 곁으로 보내지 않으려면 조속히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급기야 16일엔 <변호인>의 송강호 배우마저 "세월호 유가족 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기원하고 응원합니다"라며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우는 유가족들에게 응원메시지를 보냈다. 배우 김혜수의 메시지는 더욱 명확하고 직접적이었다.

'곁에서 함께하지 못해 너무 미안합니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마음을 보탭니다.'

영화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의 이러한 기원과 응원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갈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이 왜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듬어 안는 교황에게 그리 열광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배워야 할 때다.

그 전에 '유민 아빠'가 교황에게 전한 편지를 읽어 보며 자신의 침묵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곱씹어 보길. 로마로 돌아갈 교황의 위로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통령의 말과 결단이다.

"제가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것은 유민이가 제 가슴 속에서 아직까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저만의 사건이 아닙니다.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탐욕적인 세상,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민보다 권력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정부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입니다. 우리 정부를 압박해 주십시오. 그래서 힘이 없어 자식을 잃고 그 한도 풀어주지 못하고 있는 우리를 구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