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차례가 돌아와 맡은 업계 당번일 뿐"이라며 웃었다. 차승재(47) 신임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 회장. 하지만 그의 너스레와는 달리 '한국영화의 위기'를 운운하는 요즘 특히 그에게 거는 영화계 안팎의 기대는 자못 크다. 단지 현재 61개 회원사가 모여 국내영화 제작편수의 50%를 소화하고, 국내영화 관객점유율의 70%대를 유지하고 있는 제협의 회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국내 최대 제작사인 싸이더스FNH의 공동대표로, 지난해 <씨네21>이 선정한 '영화산업 파워 50인' 중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제로도 지난해 12편의 영화를 개봉, 국내 영화관객(외화 포함)의 10%를 넘는 1700만 명을 모아 그 '파워'를 입증했다. 라틴어 '싸이더스'의 뜻처럼 '스타' 제작자인 차승재 대표. 2일 서울 충무로 그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 흔한(?) 상패 하나 없이 책장은 시나리오와 책들로 빼곡했다. 체 게바라 사진이 들어 있는 대형 패널과 최근 배우기 시작했다는 골프클럽이 공존하는 풍경 속에서 인터뷰는 1시간 40분이 넘게 진행됐다. "파티는 끝났다"... 그리고 '고난의 행군' @IMG1@차승재 대표는 협회장 당선 후 취임 일성으로 "한국영화의 파티는 끝났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영화 개봉편수는 108편. 그 가운데 손익을 제대로 맞춘 영화는 12, 13편밖에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그 같은 환경이 '한국영화 위기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영화는 2006년 상반기에 정점에 다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 '파티는 끝났다'는 얘기를 한 거죠. 108편 중 13편만 되고 나머지가 안됐다는 건 그만큼 돈이 태워졌다(burn out)는 얘기거든요. 돈이 들어갔다가 본전이 나오든지 붙어서 나와야 되는데, 상당 부분 파티 하면서 다 태워버린 거예요. 그러니 올해 불붙일 돈이 별로 없는 거죠." 그는 실제로 그런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업계 자본도 신중해졌고, 또 그런 행태를 보면서 신규로 유입될 자본들도 주춤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대목에서 한국영화의 현실을 '배추농사'에 빗대 설명했다. "그런데 구조가 왜곡되지 않은 상황에선 한해 정도 농사가 안됐다고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가령 배추농사 같은 것도 작년에는 금값이었다가 올해는 '그냥 뽑아 가세요' 그러거든요. 하지만 배추의 유통구조나 소비성향이 정상적이면 한해 농사가 안됐다가도 정상 복구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당면한 문제는 좀 다릅니다." 그는 그 다른 '당면 문제'로 "수익원은 줄었는데 제작비 구조는 그대로"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리고 '수익원 상실'의 첫 번째로 이유로 해외수출 시장 급감을 들었다. 2001년부터 매해 30% 이상씩 가파르게 성장하던 영화 수출액이 지난해엔 전년 대비 68%나 감소했다. 특히 일본시장의 경우 전년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는 그 원인을 '한탕주의'에서 찾았다. "해외수출의 70% 정도를 일본시장에 의존하고 있었어요. 의존하더라도 일본 수입업자들에게 적정 이윤을 보장해줘 시장을 계속 살려나갔으면 괜찮죠. 그런데 그걸 과당경쟁을 붙여서 마이너스 구조를 만들어버렸거든요. '캐시 카우'를 살살 달래가면서 계속 젖을 짤 생각을 안 하고 최대까지 올려 받은 거예요. 그러니 우유를 더는 못 짜내고 젖소가 죽어버린 거죠. 한탕주의예요. 우리 사회에서 제일 문제가 건강한 자본주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한탕에 해결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이런 사고방식 그대로 한 거예요."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한국 영상 콘텐츠 자체가 전멸한 건 아니"라면서 "붐은 끝났지만 시장을 고착화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 대안으로 중국 시장에 주목했다. 당장은 중국시장이 '불법복제의 천국'이라 돈이 안 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부터 중국의 WTO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0년까지 어느 정도 정비가 되면 이후로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파티는 2006년에 끝났고, 앞으로 2007~2009년 3년이 한국영화의 고난의 행군 시기"라고 했다. 한국영화계의 '카니발리즘' 그는 수출시장 격감에 이어 "국내 시장의 성장가능성이 정점을 찍었다"는 것, 또 디비디(DVD), 케이블 등 2차 부가판권시장의 위축을 언급하며, 이 세 가지를 한국영화를 현재 위협하고 있는 '삼각파도'로 꼽았다. 특히 부가판권 시장과 관련 "극장 대 부가판권의 수입이 이전엔 6:4 정도 됐는데, 지금은 8.5:1.5도 안나온다"고 걱정했다. 그 까닭은? "우리가 IT강국이기 때문입니다. 불법 다운로드 받아 디비디 화질로 집에서 볼 수 있으니 한 푼도 돈을 받아낼 수 없는 거죠." 그럼에도 그는 앞으로 온라인시장이 오프라인시장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그렇기에 더욱더 대책이 고민스럽고,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가장 기본적인 법정신에 관한 문제거든요. 법이 있으면 위법하는 것을 단속해야 하는데, 현재 행정력으론 단속이 안 되는 수준까지 온 거죠. 그럼 캠페인이라도 벌여서 이 자체가 위법이고 산업을 좀먹는 거고, 지금에는 공짜로 즐기지만 나중에는 즐길 물건조차도 없어진다는 것을 깨우쳐줘야 하는데 수수방관하고 있거든요." @BRI@그 같은 환경에서 제협 회장으로서의 최우선 과제를 묻자 다시 '제작비 구조' 문제로 돌아왔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평균제작비는 40.2억원. 제작비 10억 미만인 '저예산' 영화를 제외하면 평균 51.1억원이다. "순제작비 30억, 마케팅비 20억으로 평균이 50억인데 그 정도면 관객 147만 명이 이븐 포인트예요. 그런데 요즘은 100만 명 넘기가 힘들 정도로 영화 편수가 늘었거든요. 한국영화가 한국영화의 숫자를 뜯어먹는, 일종의 카니발리즘이 있는 거예요. 배추 농사 와장창 지으면 배추 값이 폭락하는 것처럼. 그래서 공급편수를 적정 편수로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회에서 너는 몇 편 하라고 할 수는 없으니, 공감대를 가지고 스스로 조금씩 자제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겠죠." 또한 "편당 제작비도 줄여나가야 한다"고 했다. 마케팅비는 몰라도 순제작비를 줄이면 영화의 품질이 떨어지지는 않을까. "영화를 들여다보면 재밌는 게 인건비 비율이 60% 이상이에요. 그중에서도 상당히 고액의 개런티를 받는 연기자나 스태프가 있거든요. 그 사람들에게 고액의 개런티를 주기 위해 하부를 구성하고 있는 스태프들의 인건비는 많이 깎았는데 올해는 그것도 안 됩니다. 이제는 노조환경 안에서 영화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니 톱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얼마만큼 끌어 내리느냐가 제작비를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죠." 그리고는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도 반성할 게 좀 더 합리적인 구조로 제작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면서 "지금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 하나로 제협 차원에서 표준제작규약을 준비하고 있다. "계속 긁어먹다 보면 결국 프라이팬이 '빵구'난다" - 스타의 개런티를 줄이려고 하면 저항이 있지 않을지? "단순히 줄이는 게 아니고 방법들을 찾아봐야죠. 스타는 상대적 가치란 게 없습니다. 스타 시장은 공급자 우선이기 때문에 자기자격을 자기가 매기거든요. 그러나 스타도 결국은 산업이 존재해야 계속 스타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거 아닙니까. 산업 전체를 공멸로 몰고 갈 제작비 구조를 유지하는 데 자신들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스스로 조금 양보를 해야죠." @IMG2@지난 2005년 6월 강우석 감독이 스타배우 실명을 거론하며 영화 출연 시 제작 수익 지분까지 요구한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이후 제협은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스타권력화' 현상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그때 안타까웠던 게, 제작자와 스타의 밥그릇싸움, 파이싸움으로 비쳤는데, 그건 파이싸움이 아니라 프라이팬이 아예 없어진다는, 계속 긁어먹다 보면 결국 프라이팬이 '빵구'난다는 문제였어요. 그래서 그걸 좀 막아보자는 거였죠." - 요즘도 그 같은 지분 요구를 하는 스타들이 있는지? "그렇죠, 지금도… 그때는 지분요구 수준이 아니라 공동제작을 해서 아예 이익의 반, 1/3을 가져가겠다고 해서 문제를 제기한 거죠. 영화 제작사는 영화산업의 엔진입니다. 동력이거든요. 영화사가 돈을 벌면 그 돈을 땅 사고 집사는 데 쓰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영화에 계속 투자해서 그게 돌아가면서 산업이 유지되는 건데, 그리로 갈 연료를 딴 데서 뽑아가는 거죠. 그러면 산업 동력의 젖줄이 자꾸자꾸 줄어드는 거거든요. 지금도 그 문제는 아주 심각합니다." 그는 이어 "스타배우들은 요즘 정상적인 방법으로 제작업에 뛰어들면서 그런 부분이 줄어들었는데, 그 빈자리를 스타감독들이 메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타감독들도 '권력화'됐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흥행이 되니까 남는 것에서 나눠달라 하는데… 어느 정도 파이가 나오면 인센티브를 주는 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건 성과에 대한 보상이죠. 그런데 인센티브의 수준을 넘어서 제작사 지분의 50%까지 요구하는 감독들이 등장하고 있으니까…. 결국은 동력의 젖줄을 약하게 만드는, 연료를 뺏어가는 현상이 똑같이 나타나는 거죠." 그는 "산업이 발전하면 그 정점에 스타가 있을 수밖에 없는 건 인정한다"고 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부를 일구고, 자기의 경쟁력을 재화로 바꾸는 건 자유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공익을 해칠 때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죠. 전체가 말라죽을 만큼 영향을 끼치는 행위는 사실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거든요." "영화노조는 건강한 영화인" 반면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영화노조)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6월부터 사측 교섭단 대표를 맡아 영화노조와 단체교섭을 벌여왔다. 한국영화사 100년사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외부에서 노사 단체교섭 장면들을 보면 사실 춥잖아요(웃음). 그래서 처음엔 상당히 긴장들을 하고, 교섭단 되는 것조차도 회피를 했죠. 저는 영화노조는 구성원들이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산업이 잘 유지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본인들의 권익을 주장하는 것 같아요. 훨씬 열악한 구조에서 일하면서도 고액 개런티 받는 사람들과는 정반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훨씬 건강한 영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단체협약은 "극히 일부 유예조항을 빼놓고는 합의가 됐"고, 임금협상은 "시급의 격차, 분배를 논의하고 있다". 실제 적용은 오는 7월 1일부터 될 예정이다. 그는 단체협약이 정식 발효되면 영화 산업환경과 제작환경이 많이 바뀌리라고 예상했다. "제작 시스템이 훨씬 더 정교해질 수밖에 없죠. 예전에 인건비 같은 경우 계약기간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이런 식으로 돼 있었거든요. 이제 시급과 주급으로 바뀌면 하루가 늘어날 때 직간접비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당장 계산할 수 있죠. 그러니 예전엔 업력(業力)이 없더라도 돈만 있으면(제작을 했는데), 지금은 스케줄링이라든지 버지팅(예산편성)이라든지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아무나 제작을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스크린쿼터를 쌀이랑 바꾼다면... 그는 지난해 삼일절에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24번째 주자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다. 피켓에는 '경술국치를 아십니까? 한미FTA, 경술국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합니다. <살인의 추억> 제작자 차승재'라고 적었다. 스크린쿼터 문제를 묻자 "굉장히 복잡한 생각이 있다"고 했다. 물론 스크린쿼터가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시골에서 노인들이 꼬부랑허리로 농사짓는 농산물도 다 내놓는 마당에 젊은 놈들이 하는 영화가 그걸 지켜야 되겠다고 하면 이기주의적으로 비칠 수 있기에" 생각이 복잡하다. 그러면서 "만약 스크린쿼터가 없어진다면 정말 쌀하고 바꾸고 싶다"고 했다. @IMG3@"저희는 젊으니까 그나마 머리 싸매고 하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데, 사실 피폐해진 농촌에서는 그런 경쟁력이 나오기가 힘들잖아요. 그런 거랑 바꿔야 해요. 그래야 저희의 양보나 희생이 힘이 있는 거죠. 그런데 협상 개시 전에 (스크린쿼터 일수를) 반토막 내버린 것은 정말 바보짓이라고 생각합니다." - 지난해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60%를 넘어섰는데도 필요한지? "1, 2년은 파고를 버티고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야금야금 고사될 수밖에 없는 골격을 갖고 있거든요. 결국 10, 20년 뒤 한국영화 점유율이 다시 10%대로 떨어지는 건 명약관화합니다. 그 안에 산업구조를 건강하게 만들고 절치부심해가면서 버텨내느냐의 문제만 남아 있는 거예요." - 스크린쿼터 문제에 앞서 스크린독과점 현상을 비판하는 영화인들도 적지 않은데? "일견 일리 있는 얘기지만, 같이 비판의 대상으로 하기엔 논쟁의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스크린쿼터가 있어야 하는 건 가장 원론적인 문제구요. 스크린독과점은 그 작은 부작용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그럼 스크린독과점 현상 자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반대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아주 짧은 장사를 하는 거거든요. 결국 장기적으로 가면 산업 전체를 위축시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에서 왕창 벌면 뭐합니까, 다른 투자한 영화들이 다 망하는데. 그런 게 실적주의가 낳는 폐해거든요." - 한 편에선 '극장이 원하니까, 관객이 원하니까'라는 이유를 내세우는데? "아니죠, 그 관객이 어디로 가냐구요. 650개관 걸 것을 350개, 400개 하면 되고, 그 외 250개관에선 다양한 영화들이 자본을 회수해갈 수 있는 룸을 열어줘야죠. 사실 좀 더 오랜 기간을 유지하면 되거든요. 예전엔 1개관에서 6개월씩 했습니다. <장군의 아들> <투캅스>는 6개월씩 했습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거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죠." 하반기부터 직접 배급 계획 그는 2005년 6월 자신이 운영하던 '싸이더스픽쳐스'와 김미희 대표의 '좋은영화'를 합쳐 싸이더스FNH를 만들었다. '싸이더스픽처스'에서 '싸이더스'를, '좋은영화'에서 영문명인 'Fun & Happiness'를 따왔다. 현재 직원은 89명. 김미희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호흡이 잘 맞는지 물어보자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대답했다. "영화 컬러가 워낙 달라요. 서로 다른 색깔의 영화를 조화롭게 같이 만들자, 그게 저희 목표입니다. 어정쩡하게 수정주의적인 방향으로 가면 다 몰락할 수 있거든요. 서로 영화노선을 인정하면서 전방위적인 대역폭을 가져보자는 게 합친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에 따라 쉽게 말해 그는 '무거운 영화'를, 김 대표는 '가벼운 영화'를 맡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해 개봉작품은 12편. 그러나 수익을 올린 작품은 <달콤, 살벌한 연인>과 <타짜>, 단 2편뿐이다. 매출이 400억원을 넘고 "흑자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흑자"를 기록했지만, 그 역시 <타짜>의 대박과 <달콤, 살벌한 연인>의 선전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아픈 곳을 건드렸다. "개봉 시기가 좀 어정쩡해서 손익분기점 근처까지 갔다가 돌파를 못한 게, 월드컵에 하나 죽은 게 <비열한 거리>가 있구요. <괴물>의 후폭풍에 말려서 그나마 150만으로 선전한 영화로 <각설탕>이 있습니다. 그런 배급 상황의 불운만 없었으면 한 4편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돌파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2편으로 그쳤죠." 단지 개봉시기 때문일까. 영화계 일부에선 싸이더스FNH가 '질보다는 양을 추구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그 역시 비판을 일면 인정했다. 그럼에도 "올해 배급업에 뛰어들기 전 미리 생산능력을 확인해보기 위해 전략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올 하반기부터 실제 배급행위가 이뤄질 것"이라며, 그를 위해 "이미 4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놓았다"고 밝혔다. - 왜 직접 배급을 하려고 하는지? "제작사의 수익은 흥행 수익을 투자자와 나눠 갖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흥행은 항상 들쑥날쑥하거든요. 흥행의 수익구조는 안정적이지 않은 거죠. 그런데 배급수익은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인두세'입니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거기서 몇 퍼센트(부가세를 제외한 입장료 1/2의 10%)가 배급수수료로 나오거든요. 그만큼 안정적인 거죠." @IMG5@올해 계획하고 있는 작품은 8-9편.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이장과 군수>로 시작해 야설록 소설 원작의 <불꽃처럼 나비처럼>과 황석영 소설 원작의 <무기의 그늘>, 그리고 <자객> <형사에겐 디저트가 없다> <식탐남녀> <라디오 데이즈> <킬링 미> <기방난동사건> 등을 준비하고 있다. 배급과 관련 영화계 현안 중 하나는 부율(배급사와 극장 측이 수익을 나누는 비율) 조정 문제다. 현재 외국영화는 6:4인 데 비해 한국영화는 5:5 구조다. 제작사들은 외국영화 수준의 부율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극장 측은 완강하고, 배급사는 미온적이다. "협의가 진행이 안 되죠. 협의를 진행해야 할 주체가 배급사인데, 초록은 동색이라고 같은 집안(CJ엔터테인먼트-CGV, 쇼박스-메가박스 등처럼 대형 멀티플렉스는 배급사와 극장이 계열구조를 갖추고 있다)이니 얘기가 안돼요." 그렇다면 앞으로 직접 배급을 하게 되면 부율 문제를 협의할 것인지 슬쩍 물어보았다. 그는 대답에 앞서 너털웃음부터 터뜨렸다. "저희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거겠지만 하여튼 목소리는 내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사들이 다 멸종이 돼버리면, 프로덕트가 안 나오고, 프로덕트가 안 나오면 유통구조 자체도 없어지는 거거든요. 그 생각들을 안 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상품을 만드는 데가 건강해져야 한다는 거죠." 감독은 선장, 제작자는 기관장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공하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 사이트에서 '차승재'로 검색하면 92년 <걸어서 하늘까지>부터 2006년 <올드미스 다이어리>까지 58편의 영화 목록이 뜬다. 아쉬운 작품을 물었더니 예상했듯이 "대부분"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특히?"라고 다시 물었다. "<화산고>가 아쉬움이 좀 많이 남아요. 굉장히 참신한 기획이고 유니크한 상상력을 가진 거였는데, 그때는 그렇게 큰 작품을 처음 핸들링하면서 오는 미숙함도 있었고, 그래서 좀 더 극대화시키지 못했죠. 그리고 절대영화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웃음). 항상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델을 향해 갈 뿐이지 그것에 도달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작품을 하면 하는 대로 다 반성만 있어요." <화산고>의 김태균 감독은 그와 대학(외국어대) 친구이기도 하다. 카페, 옷가게를 하던 그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 김 감독과의 친분에서 비롯했다. 그가 특히 아쉬움을 느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문일까. 현재 최화진 감독이 <화산고2>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 - 그럼 정말 제작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제작이 잘했다는 건 없습니다. 감독들이 잘한 거죠. 그런데 <살인의 추억>(봉준호 감독)이란 영화는 감독이 잘 만들 수 있도록 동력을 제공했던 것 같구요.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감독)도 그렇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봄날은 간다>를 참 좋아합니다." 그 같은 '동력'의 덕일까. 그는 '스타감독 제조기'로도 알려져 있다. 그가 '입뽕(데뷔)'시킨 감독만도 앞서 언급한 감독 이외에 김상진(<돈을 갖고 튀어라>), 임상수(<처녀들의 저녁식사>, 장준환(<지구를 지켜라>), 최동훈(<범죄의 재구성>) 감독 등등으로 화려하다. 그렇기에 특히 신인감독들은 그의 말 한마디에 고무되기 마련이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이해영 감독은 <씨네21>에 기고한 연출기에서 "초고를 읽은 차승재 대표가 말했다. '돈 냄새 나는 시나리오가 있고 기분이 좋아지는 시나리오가 있는데, 이 작품은 후자다. 기분 좋게, 한번 잘해보자. 노력하면 200만 못하겠냐' 이런 말을 해주는 제작자라니, 감동이다. 그의 구두에 불광이라도 내주고 싶다"고까지 밝혔다. @IMG4@이해영 감독처럼 직접 쓴 시나리오를 들고 그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도 그가 시나리오나 작품 아이디어를 갖고 적절한 감독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가 최동훈 감독에게 <타짜>를 세 번이나 의뢰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결국 감독은 해석기관이거든요. 문자텍스트를 영상으로 복원하는 해석 장치란 말이에요. 그런데 감독들마다 어떤 인생을 살고, 어떤 사회적 인식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해석하는 성향들이 달라요. 그것과 시나리오가 잘 맞아야 해요. 그래야 좋은 결과물이 나오거든요." 그는 시나리오와 감독의 관계를 '설계도와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관계'로 풀어 설명한 뒤 제작자와 감독의 관계에 대해서도 나름의 해석을 들려줬다. "영화를 배로 보면 감독은 선장이고, 제작자는 기관장이에요. 영화를 만들고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은 기관에서 제공하죠. 기름 냄새나고 어두침침한, 표면에 잘 안 드러나지만 배 가장 밑바닥에서 기관을 돌리는 거구요. 그 배가 어디로 가느냐는 방향은 선장, 감독에게 많이 의존하죠." - 감독과 의견이 안 맞을 때는? "절대 원칙은 연출자의 존재감을 말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연출 자체가 자기존재감을 확인하는 작업이거든요. 그러니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많이 얘기하죠. 배가 떠나면 결국은 선장을 믿고 갈 수밖에 없어요.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어디를 갈 건데, 어떻게 갈 건데, 그런 얘기를 많이 해놔야죠." "영화는 시대와 같이 호흡합니다" 그는 감독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들이 원고를 가장 보여주고 싶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단지 국내 최대 제작사 대표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시나리오를 잘 읽어내는 사람도 드문 까닭이다. 그가 그렇게 읽는 시나리오는 1달에 10권 정도. 그렇지만 "영 감을 못 잡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고백했다. "코미디영화는 잘 몰라요. 스릴러영화도 잘 모르구요. 그래서 공포영화를 한 편도 못 만들어봤어요. 다만 좀 사실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리얼리즘 계통의 시나리오,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갖춘 시나리오는 무슨 뜻인지 좀 읽어내는 편입니다." 그의 이런 시나리오 읽기는 그의 독서편력에도 힘입고 있다. 그는 소문난 독서광으로 1년에 1백권 정도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KBS-1TV 서평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의 '독서클럽'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쓸데없는 것을 많이 읽는다"며 요즘 보는 책으로 <20세기 문화지형도> <쿠바이야기> 등을 소개했다. - 독서가 제작에도 실제 도움이 되는지? "무조건 되죠. 왜냐면 영화의 기본은 서사거든요. 서사 안에 보면 캐릭터도 있고 드라마 구조도 있고, 그런 것들이 다 도움이 되죠. 아예 서사구조가 없는, 문학작품이 아닌 것조차도 결국은 이 사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동시대에 필요한 감정은 무엇인가, 무슨 문제를 안고 있나, 이런 것들이 직간접적으로 영화에 다 도움이 됩니다. 현실을 떠나서 뜬금없는 얘기가 영화가 아니거든요." @IMG6@그는 또한 "영화는 유기체 같다"고 말했다. "시대와 같이 호흡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 대중의 욕구, 그리고 경제트렌드, 문화트렌드, 이런 것들이 영화를 소비하는 데 다 영향을 끼칩니다. 그런데 기획은 2년 전, 3년 전에 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살아서 움직일지 몰라요. 한일합작으로 한일간 역사의 깊은 골을 메워보는 영화를 해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3년 뒤 독도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된다, 그런 상황에서 나가면 그건 그냥 죽는 거예요." 그의 꿈은 얼마 전까지는 아시아 최대 영화제작사였다. 지난해 이미 제작 편수만으로는 그 목표를 달성했다. 다음 꿈은?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같이 스튜디오를 한번 해보는 겁니다." 전성기 때 홍콩의 골든하베스트나 쇼브라더스를 모델로 삼고 있다. 그는 또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면"이라는 단서를 단 뒤 "예전 사회주의 국가의 영화들처럼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 절대로 그럴 수가 없겠죠." 그는 몸집이 크다. 언젠가 봉준호 감독은 <괴물>의 크기를 설명하면서 "아가리는 덩치 큰 차승재 대표가 입에 통째로 들어가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한국영화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자신의 몸집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는 현재 충분히 '거물'이다. 앞으로 한국영화계에서 그저 파워와 덩치만 큰 '괴물'이 될지, 아니면 고난의 행군을 승리로 이끄는 '거인'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일단은 그의 마지막 '당부 말씀'을 믿어보기로 했다. "업계 내부 문제를 제가 자꾸 공론화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업계 안에서 각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간의 이기적인 밥그릇싸움으로 비칠까 봐 겁이 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한국영화가 한국대중문화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데, 그 뿌리를 좀 더 깊게 내리고 좀 더 굵은 나무를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차승재 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 싸이더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