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2006 중국 퀴어영화 대담'에서 영화 <억제>의 감독 추이즈언이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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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11시 30분, 부산 해운대 장산 CGV에서 '2006 중국 퀴어영화 대담'이 열렸다. <스타 어필>, <억제>등 독특한 색깔의 퀴어 영화를 통해 중국의 주목받는 신세대 영화작가로 평가받는 추이즈언 감독, 아시아 영화에 조예가 깊은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가 참석했고 중국 퀴어영화의 상황과 추이즈언 감독의 작품세계에 관한 심도 있는 발표가 이어졌다.

추이즈언, 중국 퀴어영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다

1990년대 초반부터 중국에서 독립영화 제작이 크게 확산되며 중국영화계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추이즈언 같은 젊은 감독들을 통해 그동안 음지에 묻혀 있던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

그간 부산에서 소개된 추이즈언 감독의 영화는 모두 3편. 지구인과 외계인의 만남을 소재로 한 <스타어필>, 근친상간에 가까운 애증의 남매관계를 다룬 <꽃피는 계절에 시들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동생과 정신지체아 형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억제>가 바로 그것이다. 모두 퀴어영화인 동시에 기존 작품들과 다른, 독특한 개성이 있는 영화들이다.

초기에 '퀴어'를 소재로 다룬 독립 영화들은 흔히 젊은이들의 '커밍아웃'과 성적 정체성의 혼란, '호모포비아'로 불리는 동성애에 대한 공포 때문에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는 고통을 주로 다뤘다.

 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중국의 퀴어영화 추이즈언 감독의 <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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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추이즈언은 이런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이미 '게이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모든 이들의 성 정체성은 복잡하다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처럼 섹슈얼리티에 낯선 방식으로 접근하는 추이즈언은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격변하는 중국 사회에서 게이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묻는다. 이것이 추이즈언 영화의 특징이다.

다음은 이날 대담 내용이다.

음지에서 '게릴라 촬영'되는 중국 퀴어영화

 중국의 추이즈언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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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인과 외계인(화성인)의 감정 공유를 다룬 <스타 어필>은 무척 난해한 영화였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추이즈언(이하 추이) "기존의 모든 영화들이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그려내는 작품들이었다면 이 영화는 외계의 존재와 지구상의 인간 관계에 대한 영화다. 지구인이 외계인을 배척하고 차별하는 모습이 오늘날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지구상에 국가와 민족, 성적 취향 같은 외적인 구분과 조건들이 모두 사라진 상황이라면, 그때는 외계인과 지구인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중국에서는 퀴어영화가 대단히 민감한 소재일 텐데.

추이 "중국 퀴어영화의 역사는 짧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아예 퀴어영화를 다루는 감독 자체가 전무했다. 지금도 중국 퀴어영화의 역사는 갓 10년이 되지 않는다. 2001년에 중국에서 첫 퀴어영화제를 했을 때 출품작이 5편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난해는 13편으로 늘어났다. 다음 3회 때는 20여편 이상이 출품될 예정이다.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제재가 많아서 대부분의 퀴어영화들은 당국의 허가를 얻지 못한 채 음지에서 제작되고 있다. 중국에서 금기시되어 있는 것은 당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무엇보다 동성애 관련 소재다. 대만 출신인 이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을 때도, 중국 CCTV에서는 감독의 이름과 수상내역만 나올 뿐 정작 영화 제목이나 내용은 소개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중국의 퀴어영화'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대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토니 레인즈와 추이즈언의 대담을 관심있게 지켜보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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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추이 "중국에서 퀴어영화는 정부나 기업의 지원을 얻지 못한 채 열정 있는 감독들의 자체 역량으로 만들어진다. 나도 영화 제작비를 그간 신문에 기고했던 원고료나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충당했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여러모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하며 영화촬영을 도와준 것이 큰 힘이 됐다.

로케이션으로 누드 촬영 등 어려운 장면을 소화해야 할 때는 미리 스태프들과 사전답사를 마친 다음, 경찰이나 다른 사람들이 없는 시간을 골라 빠르게 찍고 도망가는 '게릴라 촬영'을 펼치기도 했다.

내 영화를 보고 인터뷰를 하러온 어느 이탈리아 기자가 "당신은 왜 영화에서 그렇게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쓰지요"라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인력이 없어서) 카메라 감독이 한손에는 카메라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현장 동시녹음을 하기 위한 마이크까지 들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폭소)

"동성애, 주류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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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퀴어영화의 현재 지형과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토니 레인즈 "한국에서는 1994년 박재호 감독의 <내일로 흐르는 강>이 최초의 퀴어영화로 소개된 다음, 10년의 세월을 거치며 많이 발전했다.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동성애 문화를 다루는 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관용적인 시선이 확산됐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등 공적인 차원에서 이런 테마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됐을 정도로 크게 변화했다.

물론 이러한 우리 세대의 변화 양상이 다음 세대까지 계속 지속된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동성애 문화는 폐쇄적인 퇴보가 아니라 개방적인 분위기에서 점차 주류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러한 소재를 다룬 이야기나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현실을 지적하는 영화들이 계속 나올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추이 "부산영화제에 두 번째로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부산관객들이 열렬한 성원을 보내주고 이런 좋은 자리까지 마련해줘서 무척 감사하고 있다. 현재 중국에서도 한류열풍이 일면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이 중국에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 열리는 이런 세미나나 퀴어 영화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중국 언론이나 관객들에게도 좀 더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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