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 공포 <어느날 갑자기>가 첫번째 이야기 <2월 29일>의 개봉을 시작으로 한 달간의 공포 여행의 돛을 올렸다.

CJ엔터테인먼트와 SBS의 합작 프로젝트인 <어느날 갑자기>는 90년 후반 PC 통신에서 화제를 모았고 이후 6권의 책으로 출간된 유일한의 동명 연작 공포소설을 영화화했다. 일상적 공포를 다룬 검증된 콘텐츠와 HD 프로젝트 제작방식의 결합이 지상 목표인 셈이다.

우선 제작비에 있어 거품을 빼고 공포영화 특유의 저예산 정신을 살려냈다. HD 카메라의 효율성을 십분 살려 제작기간 한 달에 20회 촬영, 편당 6억원의 예산으로 완성했다. 공개 방식도 남다르다. 우선 7월 20일 <2월 29일>의 개봉을 시작으로 전국 CGV 배급망을 통해 1주일씩 차례로 한 편씩 선보인 뒤 이르면 다음달에 SBS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어느날 갑자기> 메인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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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판매도 한류 스타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콘텐츠만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CJ의 배급 노하우를 교두보로 삼아 활발히 해외 판매에 나서 이미 지난 5월 칸 마켓에서 20분 분량의 프로모 버전만으로 일부 국가에 선판매 된 상태.

스티븐 스필버그나 샘 레이미 같은 감독들이 공포 영화로 데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날 갑자기>는 신인의 등용문이라는 호러 장르의 역사에 발맞춰 <어느날 갑자기>도 재능 있는 신인 네 명이 메가폰을 잡고 김훈광 촬영감독과 고영광 조명감독이 전 프로젝트를 작업해 동일한 퀄리티를 제공한다. HD 프로젝트와 검증된 콘텐츠와의 결합, 호러 장르의 패러다임이 진화하고 있다.

반전은 없다, 간결한 호러 영화의 미덕 <2월 29일>

<장화 홍련> 이후였던가? 아니, <식스 센스>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우리 공포영화들이 반전에 집착했던 것은. 6억이라는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2월 29일>은 한국 호러영화의 현 지형도에서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한눈 팔지 않고 호러의 관습에 충실하다는 나름의 미덕을 지녔다.

이야기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매표원 지연(박은혜)은 동료 종숙으로부터 4년마다 한 번 돌아오는 윤달 2월 29일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소문을 전해 듣는다. 12년 전 2월 29일, 톨게이트 주변에서 교도소 수송차량이 전복, 전원 사망했으나 한 구의 시체만이 없어졌고 그 뒤 4년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 소문의 전말이다.

그 뒤부터 밤마다 기분 나쁜 검은 차가 톨게이트 주변을 맴돌고 연이어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그즈음 지연의 주변에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자가 돌아다니는 등 불길한 일들이 차례로 일어나고 급기야 종숙마저 살해된다. 불안감이 극에 달한 지연은 그녀의 주변을 수사하던 박 형사(임호)와 함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친다. 그리고 어김없이 2월 29일이 돌아온다.

 <2월 29일>의 정종훈 감독과 박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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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정종훈 감독은 <폰>과 <범죄의 재구성>의 조감독 출신으로 "지연과 박 형사, 두 개의 진실을 보여주고 관객에게 묻고 싶었다"는 출사표를 던진 바 있다. 뫼비우스의 띠를 언급하는 오프닝은 조금 과장된 듯도 보이지만 고속도로에서 시작, 정신병원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소재를 다루는 성의 면에서 한결같다. 이는 저예산에서 비롯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겠지만 이리저리 곁가지를 뻗어나가는 여타 호러 영화보다 훨씬 더 집중력있게 다가온다.

한밤 중 톨게이트라는 소재는 일상과 비현실성이 결합돼 그 자체만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모든 살인이 일어나는 자정의 톨게이트만 하더라도 음침하기 그지없지만 여기에 폐소공포증을 연상시킬 만한 매표소도 한몫을 단단히 한다. 귀신, 악몽 등의 설정은 물론 사운드와 미술, 예상 가능한 카메라 기법으로 관객에게 공포를 전달해야 한다는 호러영화의 관습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밀어 붙인다.

정종훈 감독은 여기에 2월 29일마다 찾아오는 살인마, 여성 피해자와 이를 해결하고 분석하는 남성의 목소리라는 자칫 진부해 보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반전 강박에 시달리지 않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호러 영화를 완성해냈다. 과학 전문 기자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려주고 또 다른 이야기로 대응하는 액자 구조도 정통적인 문법에 충실하다.

단편소설을 장편영화로 만드는데서 오는 빈약함과 저예산이 주는 어쩔 수 없는 화면의 단조로움이 아쉬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또 본격적인 공포의 궤도로 오르기까지 지연의 아파트신과 악몽신으로 변죽을 울리는 초반부는 지루함을 던져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억이라는 제작비를 감안한다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두번째 이야기 <네번째 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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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주간 이어지는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네번째 층>은 숫자 '4'를 모티브로 공간과 가족을 공포의 화두로 삼았다. 새로 지은 오피스텔 504호에 입주한 미혼모 민영(김서형)과 여섯 살짜리 딸 주희(민영). 언제부턴가 아래층 사는 수상한 남자가 모녀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음에 대해 항의해 오고, 더욱이 아파트 주민들의 기이한 행동과 의문의 죽음이 이어진다. 정신적으로 날카로워진 민영은 주희가 점점 이상하게 변하고 기분 나쁜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오피스텔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직접 비밀을 파헤치기로 한다.

영화아카데미 16기 출신으로 단편 <숨바꼭질>로 2001년 베니스 영화제에 초청됐던 권일순 감독은 "공포라는 장르로 포장되어 있지만 가족에 대한 영화"라고 강조한다.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인 집과 가족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장르 영화 안에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겠다는 의도. "하루 60~70컷을 촬영하는 열악한 환경, 충분하지 않은 지원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휘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했다"는 권 감독이나 "드라마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속도로 작업했지만 평균 제작비를 사용한 다른 영화보다 잘 나온 것 같다"는 김서형의 말에서 저예산의 노고가 묻어나온다.

<디 데이(D-day)>는 여학생 전용 재수 기숙학원을 배경으로 한다. 1등으로 입학한 유진(유주희)과 한 방을 쓰는 은수(김리나), 보람(이은성), 다영(허진용)은 어렵게 분위기에 적응하며 성격을 맞춰간다. 그러다 은수가 성적이 점점 날카롭게 변하고 유진이 3년 전 불 탔던 학원의 과거를 환쳥처럼 보기 시작하면서 이들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당신은 패배자입니다. 모든 욕망과 감정을 접고, 오직 경쟁심만을 키우십시오". <여고 괴담>의 기숙 학원 버전으로 보이는 <디 데이(D-day)>는 소재 자체로 교육에 대한 메타포와 소녀들의 신경증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폐쇄된 공간과 반복적 생활 패턴, 그 안에서 인간의 뒤틀린 감정들이 폭발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김은경 감독은 단편 <망막> <오르골> <허밍> 등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과 로테르담, 클레르몽페랑 팜스프링스 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바 있는 단편영화계의 스타 감독이다.

 네번째 이야기 <죽음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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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죽음의 숲>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 신문기자 우진(이종혁)과 무당이었던 부모의 영향으로 원치 않아도 미래가 보이는 여자친구 정아(소이현)는 친구들 셋과 산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산불로 인해 입산 금지된 숲에 들어서면서 일행 중 둘이 다치고, 휴대폰은 통화권에서 이탈하고, 급기야 길을 잃으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는다. 숲의 저주로 인해 일행이 하나둘씩 좀비로 변해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정아는 저주를 풀기 위해 슬픈 결정을 하게 된다.

<오버 더 레인보우>의 연출부, <자카르타> <튜브>의 조감독 출신인 김정민 감독은 <죽음의 숲>을 '좀비영화', '신파의 B무비'라고 못 박는다.

'한국형 좀비 영화'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인물간의 관계, 그 관계가 역전되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는 서로의 방식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될 예정. '숲'이라는 공간과 무당의 자식인 정아 캐릭터가 기존 할리우드 좀비, 스플래터 무비와는 차별화되는 지점이 될 듯하다.

<어느날 갑자기>, 4주간의 공포의 마지막은 한국형 좀비 영화지만 <죽음의 숲>의 마지막 대사처럼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TV로 다시 만나는 색다른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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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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