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세이돈>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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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멘>과 <포세이돈>의 원작들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전에 만들어졌다. <포세이돈 어드벤쳐>(1972)는 1970년에 만들어진 <에어포트>와 더불어 <타워링>(1974), <대지진>(1974)같은 1970년대 재난영화의 막을 열었고, <오멘>(1976)도 <엑소시스트>(1973)과 더불어 오컬트 영화 붐을 일으켰다.

이들 영화가 나오던 70년대 초중반의 미국은 베트남전의 패배와 워터게이트 스캔들 같은 정치적 부패에 연루된 사건이 연이어 터져 미국적 가치의 붕괴에 대해 위기감이 커지던 시기이다. 그런 불안감과 공동체의 위기감이 재난영화와 오컬트 영화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3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미국은 영화를 통해 비슷한 위기감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이라크전의 불확실한 전망은 제2의 베트남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고, 워터게이트 사건같은 거대한 정치적 스캔들은 없었지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남부를 강타했을 때 보여준 부시 행정부의 늑장대응 역시 미국인들에게 근심과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아울러 1960년대의 흑인들의 저항운동만큼 전투적이진 않지만 어느새 라틴계 이주민들이 흑인을 제치고 미국내 제2의 인종집단으로 부상한 것도 주류백인들에게는 적잖이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리메이크된 <포세이돈>은 이런 근심이 반영된 텍스트이다. 재난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보통 재난의 징조(오멘)를 알아차린 사람들이 그 위험성을 공동체에 경고하지만 이를 무시하고 안이하게 대처했던 공동체가 재난을 맞아 엄청난 혼란에 빠지고 징조를 알아차렸던 이들, 또는 혼란 속에서도 살아남으려 하는 일부의 사람들이 재난을 해결하거나 아니면 재난을 피해 도망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때 도망가는 이들 또는 해결하는 이들의 무리들이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고 일부는 사고 또는 실수로 죽고 또 일부는 나머지 일행을 구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여 영웅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즉, 이때 이야기 구조는 위기가 반복적으로 닥치고 그때마다 결국 한사람씩 죽어가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이때 죽어가는 사람들의 순서를 보면 영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인종과 계급에 대한 의식을 알 수 있다.

영화 <포세이돈>은 '포세이돈'이라는 호화여객선에서 승객들이 신년맞이 파티를 하던 중 해일이 일어나 여객선이 뒤집히게 되고 일부의 승객들이 탈출하기 위해 파티장을 벗어나 뒤집힌 배의 프로펠러실로 가는 여정으로 구성된다. 이때 선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외부로부터의 구조를 기다리며 파티장에 남고 이들은 결국 수압을 견디지 못해 파티장의 유리창이 깨지고 바닷물이 들어와 익사하게 되고, 파티장을 벗어난 사람들은 장애물을 하나하나 넘어가며 결국 프로펠러실을 통과하여 구명보트를 타고 살아남는다.

현재 미국사회와 비슷한 '포세이돈' 탑승자의 인종구조

영화를 보면 주요 등장인물들의 구성을 보면 미국사회의 인종구조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종은 역시 백인이다. 전직 소방관이자 뉴욕시장이었던 로버트 램지(커트 러셀)와 그의 딸 제니퍼(에미 로숨), 로버트가 탐탁치 않게 여기는 제니퍼의 남자친구 크리스챤(마이크 보겔), 전문 도박사인 딜런 존스(조쉬 루카스), 나이든 건축가 리차드 넬슨(리차드 드레이푸스), 남편없이 아들과 함께 승선한 매기 제임스(제신다 바렛)과 아들 코너 제임스(지미 베넷) 모자, 남부 억양을 쓰는 속물스러운 러키 래리(케빈 딜런)은 미국사회의 백인들을 대표한다.

두 번째로 많이 등장하는 인종은 라틴계이다. 파티장의 웨이터인 발렌틴(프레디 로드리게스)과 다친 동생을 만나러 뉴욕에 가기 위해 밀항하는 엘레나(미아 마에스트로)가 이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파티장에 잔류할 것을 선택한 이들 중에는 파티장의 분위기를 돋우는 가수 글로리아(스테이시 퍼거슨)와 흑인선장 브래드 포드(안소니 브로어)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각된다. 글로리아는 빨간색 드레스와 라틴풍의 댄스 음악을 부르는 등 전반적으로 라틴계의 코드를 담고 있는데, 이는 파티장을 미국의 대중문화와 소비주의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본다면, 글로리아는 제니퍼 로페스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샤키라 등과 같이 미국의 연예사업과 대중매체에 전반적으로 라틴계가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장을 흑인으로 설정한 것은 콘돌리사 라이스나 콜린 파웰같이 미국의 정부부처에 흑인들이 주요한 직책에도 진출했음을 보여준다.

▲ <포세이돈>은 현재 미국의 인종구조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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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탈출을 감행하는 일행들을 보면 결국 라틴계는 다 죽고, 백인들 중에서는 러키 래리와 로버트 램지가 죽고 나머지 백인들만 살아남는다. 그럼 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첫번째로 죽는 사람은 웨이터 발렌틴이다. 탈출과정의 온갖 위험한 과정을 헤쳐 나갈 때 결국 신체 건강한 남성이 주로 활약을 하게 되는데 이때 웨이터 발렌틴은 '포세이돈'의 직원이기 때문에 배의 구조를 다른 승객들보다 잘 알고 있어 영웅이 될만한 가능성이 가장 높음에도 불구하고 첫 관문인 주방 엘리베이터에서 죽게 된다. 다른 승객들을 다 건너보내고 마지막으로 건축가 넬슨이 건너는 것을 도와줄 때 그를 돕다 발렌틴은 죽는데, 이때 넬슨을 돕던 딜런은 넬슨에게 발렌틴을 발로 차서 떨어뜨리게 한다.

나이든 넬슨이 약자이기 때문에 약자를 구하기 위해 발렌틴을 희생한 것으로 설정을 해놓았지만 그 전에 이미 발렌틴은 영웅이 되기에는 두 가지 주요한 도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엘레나의 밀항을 도왔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탈출을 하기 전에 길안내를 하는 조건으로 대가를 요구했다는 점이다. 이타적인 동기보다는 그 와중에도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움직인다는 점이 발렌틴의 결함인데, 이는 라틴계 남성이 전체 공동체보다는 자기 또는 자기 가족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편견을 반영한다. 아울러 그가 죽음으로써 영웅적인 활약은 결국 백인남성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두 번째로 죽는 사람은 러키 래리이다. 러키 래리는 신체건강하고 남부억양을 쓰는 강인한 남성이고 디스코장의 폐허 속에 크리스챤을 구해주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남몰래 슬쩍슬쩍 위스키를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이며 두 번째 관문인 배의 중앙로비를 통과할 때 마지막에 여성보다 먼저 가려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다가 천정에서 떨어지는 샹들리에에 깔려죽는다. 잘난 척하고 거들먹거리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이익을 챙기다 죽는데, 이는 현 대통령인 조지 부시 주니어를 비꼰 것이다. 텍사스 출신에 강한 남부 억양을 쓰고 강인한 척하지만 사실은 알콜홀릭이라는 것이 러키 래리와 조지 부시 주니어의 공통점이다. 즉, 필요할 때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풍자이다.

세 번째 희생양은 밀항하는 엘레나인데, 그녀가 밀항해서 뉴욕으로 간다는 것은 그녀가 곧 불법 이민자라는 의미이다. 아무리 그녀가 탈출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착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처음부터 그녀는 공식적인 승객이 아니었기에 탈출과정 중에 사고로 죽는 것으로 처리된다.

네 번째는 전직 소방수이자 뉴욕시장이었던 로버트 램지이다. 로버트 램지는 도박사인 딜런 존스와 더불어 위기상황을 주도적으로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주요한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는 언제나 딜런과 로버트가 갈등을 벌이고 그 둘이 합의를 보고 행동에 옮기기로 할 때 나머지 인물들은 그 결정에 따라 움직인다. 로버트 램지와 딜런 존스의 직업이 각각 전직 소방수와 도박사라는 것은 바로 미국사회의 리더십을 상징한다. 이는 소방수와 뉴욕시장과 같이 방제역을 하는 이와 돈을 버는 자본가가 미국사회의 리더십을 구성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상대적으로 로버트 램지가 불확실한 상황이 닥쳤을 때 앞으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에 딜런 존스는 도박사이니까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지고 그 승부수는 매번 성공한다. 로버트 램지는 마지막 프로펠러실을 눈앞에 두고 딸과 사위를 위해 희생한다. 그렇지만 그의 희생도 사태를 잠시 호전시키긴 했지만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고 결국은 딜런 존스가 프로펠러를 멈추게 하고 일행들은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 1억4천만달러의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재난영화 <포세이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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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미국사회의 리더십을 이끌고 있는 것은 '자본가'

이 일행들 중에서 여성들은 그렇게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들을 일으키는 존재들로 나타난다. 매기와 코너 모자는 미국사회에 늘어나는 싱글맘을 나타내는데, 매기와 코너가 곤경에 빠질 때 항상 딜런이 나타나서 구해주고, 제니퍼 램지는 아버지의 승인없이 결혼한 부상당한 크리스챤을 돌보느라 다른 것을 신경쓰지 못한다. 비교적 덜 의존적이고 독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라틴계 여성 엘레나는 결국 사고로 죽어버린다.

한편, 노인인 건축가 리차드 넬슨은 한때는 잘나갔지만 이제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미국의 노년층들을 대표한다. 발렌틴이 죽는 장면과 영화 마지막의 프로펠러실에서 위기에 빠지는 이는 바로 리차드 넬슨이며 그는 이 위기를 스스로 헤쳐나가지 못하고 딜런이 상황을 해결한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인종, 성, 계급을 살펴보면 어떻게 <포세이돈>이라는 영화가 미국 백인중산층의 위기감를 드러내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여전히 아시아계는 아예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것은 아시아계가 전체 미국인구의 3퍼센트밖에 차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백인중산층들에게 가시적인 위협이 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노광우 기자는 뉴욕대학에서 영화사와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일을 도왔습니다. 현재는 서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이 글은 시네21에 있는 블로그 '사과애'와 필자 개인의 사이월드 미니홈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06-06-07 14:00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노광우 기자는 뉴욕대학에서 영화사와 영화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1년부터 뉴욕한국영화제일을 도왔습니다. 현재는 서던 일리노이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전공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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