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베이컨,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독특함 게리 올드만과 존 말코비치가 보여주는 악(惡)의 카리스마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할리우드에서는 본의 아니게 자신의 악을 널리 알리지 못하는(?) 악인들이 많다. 케빈 베이컨도 그런 배우 중에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 감독이자 배우인 그는 그동안 악인이나 특이한 인물로 등장해 맹활약했다. < JFK >에서는 게이로 등장했으며, <슬리퍼스>에서는 소년범들을 추행하는 악질 교도관으로, <트랩트>에서는 어린 아이를 납치하며 아이의 엄마에게까지 흑심을 품은 유괴범으로 등장한다. 색깔도 참 다양하다. 연기 잘 한다고 소문난 배우가 아니라면, 쉽게 해내기 어려운 캐릭터들이 대부분이다. 맡는 역할이 매번 그래서인지, 케빈 베이컨의 미소를 보면 왠지 섬뜩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섬뜩한 미소 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일 듯하다. 오는 4월 6일에 개봉하는 <스위트 룸>에서도 그의 미소는 여전히 섬뜩해 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그가 묵기로 한 호텔의 스위트 룸에서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번에도 그의 짓(?)일까? 그 호텔, 그 <스위트 룸>에는 뭔가 비밀이 있다
 영화 <스위트 룸>의 포스터. 원제 '진실이 있는 곳(Where The Truth Lies)'보다 한결 나은 제목이기도 하다.
ⓒ 미디어 소소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개그 콤비 '레니(케빈 베이컨)'과 '빈스(콜린 퍼스)'. 그들은 소아마비 어린이들을 위한 전국적인 모금 쇼를 진행한 뒤, 최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에 묵기로 돼 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제대로 짐도 풀어헤치기 전에, 난데없이 시체가 한 구 발견됐다. 그것도 전라의 여자 시체였다. 누구의 짓일까? 혹시 이들의 짓인걸까? 아톰 에고이얀 감독의 영화 <스위트 룸>은 이렇듯 관객에게 대뜸 시체 한 구를 던져놓으면서 관객에게 추리할 것을 제안한다. 요즘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추리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케빈 베이컨이 등장하고 있다고 무턱대고 그가 범인일 것이라고 속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영화는 이들 콤비와 더불어 사건을 조사하는 여기자, 그리고 콤비의 매니저가 등장해 꽤 다양하게 사건의 흑막을 감춘다. 이 영화는 일단 눈앞에 벌어진 사건 앞에, 사건을 조사하는 여기자의 눈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다양한 일들을 펼쳐놓는다.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추리 게임'이다. 관객이 쉽게 이 사건의 실마리를 눈치 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계산으로 보인다. 다소 복잡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이 영화에는 무엇보다 그들 콤비의 팬이었던 여기자가 그들과 함께 나누는 야릇한 사랑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야릇한 사랑 속에 중요한 힌트가 숨어 있다. 인기연예인의 은밀한 사생활과, 스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 등, 이 영화에는 한편의 끔찍한 살인 사건 속에 다양한 이야기들을 숨겨놓으며, 그것을 매력으로 포장한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금발 여배우 알리슨 로먼이 여기자 '카렌' 역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 매력을 위한 포석일 것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와 마릴린 몬로의 등장 이후 금발 미인에 대한 남성들의 성적인 환상은 여전히 공공연한 비밀이다. 뚜렷한 윤곽과 함께 귀여움과 섹시함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는, 나이에 비해 성숙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대단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원초적 본능2>보다 더 '원초적 본능'답다 <스위트 룸>에서는 알리슨 로먼이 2명의 콤비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녀의 과감한 노출을 앞세워 연출한 정사 장면도 대단히 아름답게 보이는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한편의 잘 만들어진 에로틱 영화로도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요즘 영화광들을 피곤하게 하고 있는 할리우드산 깜짝 반전 영화에서 한발짝 비켜섰다는 것. 일부 영화광들은 최근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깜짝 반전 영화를 기피할 정도로 피곤해 하고 있다. 침착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정신없는 소동 속에 갑작스레 반전 한번 보여주고는 무책임하게 크레디트를 올리는 영화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는 이제 식상하다 못해 피곤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고급스러운 화면과 물 흐르듯 침착한 이야기의 흐름은 <스위트 룸>의 진정한 장점이다. 영화광들이 정말 너무도 애타게 찾던 영화적 매력이다. 그런 매력 덕분에 <스위트 룸>은 역시 최근에 개봉한 <원초적 본능2>와도 비교할 만하다. 샤론 스톤에만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녀의 열정어린 노력이 빛을 잃게 만드는 역효과를 낸 <원초적 본능2>의 안일함에 실망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통해 매력을 느낄 만 하다. <원초적 본능>도 그랬다. 특별한 반전은 없었지만, 매끄러운 이야기 전개와 샤론 스톤의 섹시한 매력 속에서 '에로틱 스릴러'로서의 명성은 유감없이 누릴 수 있었다.
 정사 장면에서도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준다.
ⓒ 미디어 소소

한편의 영화에서 이렇듯 다양한 장르의 색깔을 동시에 추구하기란 쉽지 않은 일. 아르메니아인으로서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능란한 연출력과 개방성이 이끌어낸 결과다.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스위트 룸>은 정말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한 영화다. 3개국에 걸쳐 있는 삶에서 비롯됐을 법한 감독의 시각이 느껴질 것이다. 덕분에 <스위트 룸>은 <원초적 본능2>보다 '원초적 본능다운' 맛을 보여준다. 늘 징그럽게만 보이던 케빈 베이컨도 이번에는 다르게 보이는 것도 그렇지만, 영국 신사다운 매너와 적당한 유머로 사랑받던 콜린 퍼스가 날카로우면서도 어딘가 음흉한 캐릭터로서 관객을 찾아왔다는 점도 꼭 기억해야 할 사실. 연출과 각본, 그리고 연기라는 3박자, 이 이상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포스터 속의 알리슨 로먼의 허리 곡선이 결코 과장으로 보이지 않는 영화, <스위트 룸>은 섹시한 매력이 상영시간 내내 철철 넘쳤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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