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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저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그 불만사항들을 보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것도 많습니다. 저는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인데두요.

세탁기를 자주 돌리지 않기 위해 속옷을 적어도 이틀은 입는 것도 불만이고, 감정표현이 너무 솔직한 것도 불만이고, 그 중에서 가장 불만인 것은 제가 술을 자주 먹고 너무 많이 마신다는 겁니다.

저의 유별난 술 버릇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구요. 저의 이런 많은 불만을 그래도 조금 만회하는 것이 있다면 집에서 음식만들기는 전적으로 제가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와 저는 연애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제 나이 서른셋에 결혼을 했습니다. 제가 친구들에 비해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해서 친구들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 제가 만든 파전입니다.(이하 제가 만든이라는 문구 생략...) 가끔 아내가 입맛 없다고 할 때 만듭니다.
ⓒ 강충민
그 중에서 압도적인 조언이 결혼 선배로서 절대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패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라는 말로 시작되는 여러 가지 조언 중에서 특히 음식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여자 몫이라고 각인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참 많았습니다. 그리고 항상 그 조언의 끝은 "부디 이 형님의 전철을 밟지 마라"였구요.

그런데 저는 음식만들기가 취미입니다. 아내와 연애할 때는 대학 때부터 지낸 셋째 누님집에서 독립해 자취를 하고 있었지요. 마침 아내도 혼자 자취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취를 할 때도 사먹는 경우는 거의 없고 직장에 나갈 때도 도시락을 챙겨서 다녔구요. 아내에게 가끔 제가 부추 김치나 무채 김치를 담가서 라면 먹을 때 같이 먹으라고 몇 번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 말처럼 결혼 초기에는 아내가 음식을 담당하고 저는 집안 청소 하는 것으로 가사 노동을 분담했습니다. 맞벌이 부부로서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구요.

일주일도 안돼 아내는 제게 '커밍아웃'을 하더군요.

"자기야 나 고백할 게 있는데…. 나, 정말 음식 만드는 거 자신없어. 또 솔직히 취미도 없고…."

그래서 저희는 바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저도 솔직히 청소는 정말 취미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장모님에게 결혼하면 밥짓고 반찬하는 것은 제가 한다고 말한 것도 있었구요.

바로 그렇게 할 일을 바꾸고 보니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 싶더군요. 진작 우리 방식대로 할 걸하고 느꼈구요. 아내의 회사직원들 집들이나 아내의 친구모임을 집에서 할 때도 제가 조금 일찍 퇴근해 시장을 봐서 음식장만을 했구요. 아마 그 때 닭개장과 파전, 한치회 무침을 한 것 같습니다(아내는 처음에는 마치 음식을 자기가 한 것처럼 자랑하다가 불시에 놀러온 친구에게 들키고 난 후에는 그냥 제가 한 것이라고 솔직히 말합디다).

이렇게 결혼 후 저의 음식만들기는 계속되었고 더불어 나날이 음식솜씨도 좋아지고 있었구요. 그런데 음식을 만들 때마다 저를 괴롭히는 고민이 있었으니 바로 화학조미료입니다. 저는 좀 색다른 메뉴를 만들 때마다 꼭 아내에게 물어봅니다.

▲ 두부조림입니다. 조금 비싸지만 국산 두부로 만들었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서 지금 반 정도 남았습니다. 나중에 조미료 넣었습니다.
ⓒ 강충민
"맛있어?"하고 물으면 아내는 준엄한 맛의 감별사처럼 먹어보고 한 번 생각하는 척하다가 "응, 먹을만 해"하고 답합니다. 그럴 땐 맛이 있다는 겁니다. 아내는 아직까지 호들갑스럽게 "응, 너무너무 맛있어"하고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게 좀 서운하구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아내와 서점을 들려도 저는 요리코너를 보게 되고 하다 못해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정기 검진으로 들르는 산부인과에서도 여성지에 나오는 요리부분을 몰래 찢어서 가져 오기도 했으니까요.

조림은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맛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침이나 국을 할 때는 참으로 고민에 빠집니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은 뒤 집으로 돌아왔을 때부터 끓인 미역국의 종류만 해도 아마 열 가지는 넘을 겁니다. 미역이라는 주재료에 쇠고기·버섯·조개·굴·가쓰오부시·옥돔·멸치·기타 등등.

아무리 맞벌이지만 빠듯한 살림에 지출에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이런 국 종류를 끓일 때 미역을 물에 불리고 다른 부재료를 같이 넣고 참기름에 달달 볶다 물을 부은 다음 차 숟갈 하나 분량 화학조미료를 넣으면 금세 맛이 달라집니다.

정말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구요. 몇 번인가는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아내의 반응을 살폈습니다. "맛있어?"하고 물으니까 돌아온 답은 "별로네"라는 싸늘한 답이었습니다.

▲ 어제 마트에서 행사한다고 해서 산 시금치 무침입니다. 살 땐 엄청 많았습니다. 다듬어 있지 않은 게 더 싸서 집에서 다듬었는데 아들이 좀 거들었습니다. 930원 했습니다.
ⓒ 강충민
버섯으로 음식을 할 때는 밑둥을 버리지 않고 비닐팩에 모아두었다가 국물을 낼 때 사용합니다. 멸치 국물은 왕멸치 몇 마리에 풍성하게 맛이 나서 그건 별반 염려가 되지 않는데요. 어차피 가쓰오부시 국물은 당연히 가쓰오부시 부스러기를 넣어야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이놈의 쇠고기미역국이나 조개미역국은 무슨무슨 다시다, 맛나 같은 조미료를 넣지 않으면 도무지 맛이 안 납니다. 그렇다고 그 맛을 내려고 무지막지한 내용물을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시금치나 가지 파래 같은 무침을 할 때도 그 미량의 하얀 가루의 유혹에 빠집니다. 원조라고 하는 한식집에서 내세우는 것이 거의 모두 "저희 집에서는 일체의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습니다"하고 큼지막하게 써붙이는데 저는 그게 사실일까 의심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아무리 맛을 봐도 분명 조미료를 첨가한 맛인데 그렇다고 불시에 주방점검을 할 수도 없고 다들 마지막 비법만큼은 "며느리도 몰라"하면서 공개를 꺼리니까 말이죠.

아내가 산후조리를 하면서 먹는 음식은 참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그 음식을 먹고 젖이 나올테고 고스란히 젖을 먹는 우리 딸에게도 전달이 될 거니까요. 그리고 저희 큰 애인 아들 녀석도 제가 만든 음식을 먹고 앞으로도 커나갈테구요. 그리고 저는 아내의 "응, 먹을만 해"하는 말에 힘을 얻는 남편이구요.

전엔 제가 좋아하는 남자 연예인이 광고에 나와 조미료를 선전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무엇인가를 넣지 않았다고 하던데 차라리 저만 먹는다면 전 딱 눈감고 그냥 넣고 먹겠는데 말이죠.

아, 제 음식의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누가 알려주세요. 좋은 의견 있으면.

▲ 요즘 아들이 동생 잘 돌봅니다. 아빠 일도 잘 거들구요. 나중에 아빠의 음식 비법을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 강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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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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