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절이 다가오면 음식 준비하고 만드는 게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우리 집은 별 스트레스는 없는 듯합니다. 명절 음식 준비는 제가 도맡아 합니다. 사실 굳이 명절뿐만 아니라 음식 만들기는, 간헐적으로 각시가 만들 때도 있지만 결혼 초기부터 거의 제 담당입니다. 그래서 명절 음식이라고 특별하게 각시가 두 팔을 걷어붙이는 일은 없습니다. 각시는 충실한 제 보조 역할이지요.

아버지 추석 상에 올릴 전복적갈 만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 제주에서는 제사, 명절 차례상에 올리는 산적을 '적갈'이라고 합니다. 제주도 차례상에는 돼지고기, 소고기로 만든 두 가지 적갈은 꼭 올라갑니다. 보통 홀수로 일곱 개 혹은 아홉 개를 꼬지에 꽂아 만듭니다.

이 두 가지 적갈 외에 집집마다 다른 적갈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보통 수산물로 만듭니다. 방어를 포로 떠서 일정하게 썰어 꼬지에 꽂기도 하고, 문어나 오징어로도 적갈을 만듭니다. 조금 더 정성을 더 한다면 제주어로 구쟁기라 부르는 소라나, 전복으로도 적갈을 만듭니다.

저는 이번 추석에 전복으로 적갈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전복이야 예전부터 워낙에 귀한 식재료였지만, 요즘은 양식으로 많이들 나와 부담은 덜 했습니다. 사실 이 양식전복도 일본 오염수 방류로 언제까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요. 또한 요즘 부쩍 입맛이 없는 엄마가 전복을 드실 수 있게 하려는 생각이 컸습니다.
 
전복은 살과 내장을 분리합니다. 내장은 바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전복죽 끓일 때나 리조토를 만듭니다.
▲ 전복살과 내장 분리 전복은 살과 내장을 분리합니다. 내장은 바로 냉동실에 넣어두었다가 전복죽 끓일 때나 리조토를 만듭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적갈을 만들 전복은 그리 크지 않은 걸로 준비합니다. 1kg에 30마리 정도 되는 것으로 만들면 한입에 먹기 좋습니다. 이런 크기를 제주어로 "좀지롱헌거"라고 합니다. 큰 전복은 값도 만만치 않고 2등분, 3등분으로 잘라서 만들어야 하는 불편도 있습니다.
  
전복적갈 만들기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과한 양념도 들어가지 않고 전복과 간장, 참기름이 주재료입니다. 레시피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우선 전복은 껍데기와 살을 분리하고 솔로 전복에 붙은 이물질을 깨끗하게 씻어냅니다. 그러면 전복 살의 윗부분에 있는 거무스름한 부분이 없어집니다. 떼어낸 전복 살에서 뒷부분에 있는 게웃이라고 부르는 내장을 떼어냅니다. 전복죽을 끓일 때는 이 게웃을 꼭 넣어야 맛이 나는데, 적갈을 할 때는 따로 분리합니다.

넣어도 큰 상관은 없는데 자칫 게웃이 터져버려 모양이 안 날 수도 있고, 아직 낮 기온이 높은 터라 상할 염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떼낸 게웃은 당연히 버리지 않고 바로 냉동시켰다가 전복죽 끓일 때 다져 넣기도 하고, 리조토를 만들 때 써도 좋습니다.
  
전복은 팔팔 끓는 물에 5초만 데칩니다. 양념장을 만들어 재어둡니다.
▲ 데친 전복과 양념장 전복은 팔팔 끓는 물에 5초만 데칩니다. 양념장을 만들어 재어둡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손질한 전복은 팔팔 끓는 물에 5초 정도 넣고 살짝 익혀줍니다. 이 과정을 생략해도 되는데, 살짝 익혀줘야 전복 만질 때 미끄덩거리지 않고, 전복이 오그라지지도 않습니다.

전복적갈에 스며들 양념은 정말 간단합니다. 진간장과 물, 참기름의 비율을 1 : 0.5 : 0.3으로 합니다. 단맛이 조금 들어가게 설탕이나 매실액, 물엿 등을 넣습니다. 맛술은 간장의 1/5 정도 넣습니다. 참기름은 과하다 싶을 수 있는데, 취향껏 조절하시면 됩니다. 저는 엄마가 늘 하던 말 그대로 충실히 따릅니다. 엄마의 참기름 사랑은 유별납니다.

"무신거에라도 ᄎᆞᆷ지름은 하영 들어가사 맛존다. (어떤 음식에도 참기름은 많이 들어가야 맛이 있다.)"

손질한 전복에 양념이 배일 수 있게 냉장고에 반나절 이상 둡니다. 저는 그래서 적갈은 명절 음식 만드는 전날 저녁에 미리 재어둡니다. 혹여 전복적갈에 양념이 채 배이지 않으면 적갈을 프라이팬에 지져낼 때 조금씩 덧발라도 됩니다. 철칙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요령껏 하는 것이 음식 만들 때, 편하고 질리지도 않습니다.
 
기름두른 프라이팬에 적갈을 약한 불로 지집니다. 전복은 뒤부터 익혀줘야 오그라 들지 않습니다.
▲ 전복적갈만들기 기름두른 프라이팬에 적갈을 약한 불로 지집니다. 전복은 뒤부터 익혀줘야 오그라 들지 않습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양념이 배인 전복은 꼬지에 홀수로 7개 혹은 9개 꽂습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불로 전복꼬지를 넣고 지져냅니다. 미리 살짝 익혀둔 거라 오래 지지지 않아도 됩니다. 한 면이 다 익으면 뒤집고 익힌 후 꺼냅니다. 양념이 더 잘 배이게 하려면 익힌 전복적갈 위에 프라이팬에 졸아진 양념을 부어도 좋습니다.
 
전복적갈을 다 구워내고 팬에 남은 양념을 위에 부어주면 간이 더 잘 배입니다. 쪽파와 통깨를 위에 뿌려줍니다.
▲ 완성된 전복적갈 전복적갈을 다 구워내고 팬에 남은 양념을 위에 부어주면 간이 더 잘 배입니다. 쪽파와 통깨를 위에 뿌려줍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익힌 전복적갈을 내어, 바로 아주 잘게 썰어둔 쪽파와 참깨를 뿌립니다. 바로 내어낸 적갈의 잔열로 쪽파가 알맞게 익습니다. 이렇게 전복적갈이 완성됩니다.

전복적갈보다 호박잎국이 더 좋은 엄마

전복적갈이 다 만들어질 즈음, 앞이 안 보이시는 어머니가 주방에 나오셨습니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하니 궁금할 터였습니다. 마침 점심 때가 되어 전복적갈로 어머니 식사를 챙겨드릴 요량이었습니다. 전복적갈 만들었고, 점심으로 챙겨드리겠다고 하니, 별 감흥도 없이 불쑥 한마디 하십니다.

"에에 전복적갈 난 못 먹나. 난 니 어성 졸바로 씹토 못 허는 거... 호박잎국이나 먹어시민 좋으키여. (에이 전복적갈 난 먹을 수 없어. 나는 이가 없어서 제대로 씹지도 못하는 걸... 호박잎국이나 먹었으면 좋겠어)"

엄마의 말에 각시와 나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잠시 난감했습니다. 잠시 후 각시가 제게 눈짓합니다. 호박잎국 만들라는 무언의 지시입니다. 뭐 만들어야지 별 수 있습니까. 지난번에도 어머니는 고도리젓갈 드시고 싶대서 만들었는데 요즘 옛날 음식을 자주 찾습니다(관련 기사 : 이 젓갈 담그는 일이 마지막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https://omn.kr/25dh9). 전복적갈 만들기 마무리는 각시에게 맡기고 호박잎을 사러 나갔습니다.
 
호박잎이 끝물이라 억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린 잎이라 괜찮았습니다. 까슬한 부분은 떼어내서 버려야 합니다.
▲ 호박잎 호박잎이 끝물이라 억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린 잎이라 괜찮았습니다. 까슬한 부분은 떼어내서 버려야 합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계절이 가을로 접어든 때라, 자칫 호박잎이 억세져서 있을까 우려했는데 근처 아파트 지하에서 야채를 조금씩 파는 가게에 가니 다행히 있었습니다.

호박잎국 역시 전복적갈처럼 정말 간단합니다. 제주음식은 과한 양념을 하지 않고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박잎국의 재료는 호박잎, 밀가루, 국간장, 된장, 다진마늘이 전부입니다. 아 멸치육수가 있어야겠군요.

졸지에 추석 음식을 하다 말고 후다닥 호박잎국을 끓였습니다.

호박잎을 다듬을 시간에 냄비에 국물용 멸치를 듬뿍 넣고 푹 끓입니다. 호박잎은 여러 번 잘 씻고, 뒷 표면에 까슬한 부분을 벗겨냅니다. 다행히 끝물이지만 어린잎들이라 그리 억세지 않아 수고로움이 덜 했습니다.
 
호박잎은 손으로 잘게 찢어야 합니다. 칼로 썰면 안 됩니다.
▲ 잘게 손으로 찢은 호박잎 호박잎은 손으로 잘게 찢어야 합니다. 칼로 썰면 안 됩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물을 넣지 않고 빨래하듯 주무르면 진녹색의 물이 나오는데 이것을 버립니다. 두 차례 반복합니다.
▲ 호박잎은 빨래하듯 주무릅니다. 물을 넣지 않고 빨래하듯 주무르면 진녹색의 물이 나오는데 이것을 버립니다. 두 차례 반복합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호박잎을 다듬은 뒤부터가 중요합니다. 호박잎을 칼로 썰지 않고 꼭 손으로 잘게 찢어 줍니다. 찢은 호박잎을 두 손으로 빨래하듯이 주물러줍니다. 물은 절대 넣지 않습니다. 몇 번 주무르다 보면 호박잎에서 진녹색 물이 나옵니다. 이렇게 나온 물은 버립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호박잎이 뭉개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이 과정은 꼭 해야 합니다. 하지 않으면 호박잎이 너무 억세고, 호박잎의 비릿한 냄새가 납니다. 이렇게 뭉개진 호박잎은 손으로 꼭 짜는데 물로 절대 헹구지 않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호박잎국 끓이기는 거의 끝이 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끓는 멸치 육수에 호박잎을 넣고 푸욱 끓입니다.
▲ 호박잎을 넣고 푸욱 끓입니다. 끓는 멸치 육수에 호박잎을 넣고 푸욱 끓입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국물용 멸치를 건져내고 준비한 호박잎을 넣고 끓입니다. 냄비뚜껑을 덮고 푸욱 끓입니다. 끓이다 보면 호박잎이 국물에 우러나 색깔이 녹색으로 변합니다. 중불로 끓이다 약불로 뭉근하게 끓이다가, 호박잎이 살캉 씹히지 않을 정도가 되면 간을 합니다. 간은 국간장과 된장을 섞어서 하면 좋습니다. 된장은 체에 걸러 넣습니다. 다진 마늘도 한 숟갈 넣습니다.

호박잎국에 꼭 빼놓을 수 없는 '이것'
 
물가루를 물에 개어 넣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제비처럼 되게 반죽해서 넣으면 수제비처럼 씹히는 식감이 좋습니다.
▲ 물에 갠 밀가루 물가루를 물에 개어 넣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제비처럼 되게 반죽해서 넣으면 수제비처럼 씹히는 식감이 좋습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간을 맞추고 물에 갠 밀가루를 넣습니다. 밀가루를 넣으면 국물이 걸쭉하고 한결 부드럽습니다. 꼭 넣어야 합니다. 핵심입니다. 걸쭉해지는 용도의 물에 갠 밀가루와, 조금 되직하게 만든 밀가루를 따로 준비하면 더 좋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제비처럼 떼서 넣으면 식감이 좋습니다. 제주에서는 수제비를 "조배기"라고 하는데 엄마는 이 호박잎국에 조배기처럼 떼어 넣으면 맛있어라 합니다.
 
호박잎국이 완성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먹으면 더 맛있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차갑게 먹어도 좋습니다.
▲ 완성된 호박잎국 호박잎국이 완성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먹으면 더 맛있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차갑게 먹어도 좋습니다.
ⓒ 강충민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제주도 호박잎국을 완성했습니다. 이 호박잎국은 식혀 냉장고에 두었다가 차갑게 먹어도 별미입니다. 숙취에도 좋습니다.

추석음식으로 전복적갈 준비하다가 호박잎국까지 만들었습니다. 엄마의 오래된 입맛이 가끔 귀찮을 때도 솔직히 있습니다. 허나 잠시만 생각하면 어릴 적 엄마가 제게 들인 정성은, 기껏 음식 하나 만드는 거에 비할 수 있을까요. 또한 돌아가신 아버지 차례상에 올릴 전복적갈이나, 살아계신 엄마를 위한 호박잎국이나 어차피 우리가 먹을 음식이니 다 같은 거 아닐까요. 

태그:#전복적갈, #호박잎국, #강충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살고 있습니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대학원에서 제주설문대설화를 공부했습니다. 호텔리어, 입시학원 강사, 여행사 팀장, 제주향토음식점대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교사 등 하고 싶은일, 재미있는 일을 다양하게 했으며 지금은 서귀포에서 감귤농사를 짓고 문화관광해설사로 즐거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