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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1987).
▲ 전정호·이상호 화백의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1987)
▲ 홍성담 화백 등 80여명이 공동제작한 <민족해방운동사> 중 '광주민중항쟁' 부분.(1989)
▲ 안성금 화백의 설치미술 예정작이었던 <아, 한반도>(2001)
ⓒ <노컷전>도록 스캔


위의 그림은 그간 검찰이 이적표현물로 기소했거나 우리 법원이 이적표현물로 판결한 작품들이다(마지막 작품은 제외).

첫 번째 작품은 신학철 화백의 <모내기>로 지난 1987년 전시 '통일전'에 출품됐다. 당시 검찰은 <모내기>가 "북한을 이상향으로 표현한 이적표현물"이라며 신씨를 구속 기소했다(자세한 내용은 관련기사 참조).

두 번째 작품은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로 87년 전정호·이상호 화백의 작품이다(아래 박스기사 참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작품을 두고 "진달래꽃이 만발한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노동자와 농민이 성조기를 찢고 불태우는 모습을 민중 봉기에 의한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을 묘사했다"며 두 화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세 번째 작품은 홍성담 화백 등 80여명의 화가들이 공동 제작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중 '광주민중항쟁' 부분이다. 홍씨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는데 당시 안기부와 검찰은 공소장을 통해 "5월 광주민중항쟁이 반미, 반파쇼, 반봉건 투쟁의 시각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내용으로 형상화하여 제작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인 북한공산집단의 주장과 활동에 동조하여 이를 이롭게할 목적으로 (그림을) 제작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작품은 경찰이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며 전시를 열지 말도록 협박한 사례다. 이는 안성금씨의 <아! 한반도>라는 작품으로 지난 2001년 전시 '노컷(무삭제)전'에 출품될 작품이었으나 경찰은 작품이 전시되기도 전에 시안을 보고 "작품이 전시되면 국보법 위반혐의로 체포하겠다"고 작가를 협박했다.

이들 작품은 현재 원본이 없는 상태다. 일부는 검찰의 압수물보관창고에 훼손된 채로 보관돼 있거나(<모내기>), 집회 도중 경찰에 의해 태워졌고(<민족해방운동사>), 일부는 검찰에 의해 몰수됐으나 존재여부조차 알수 없다(<백두의 산자락>).

<오마이뉴스>는 사진 파일이나 도록으로 전해지는 이들 작품을 모아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물론 감상평과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그림이 이적표현물로 기소된 첫 사례는?
검경, 80년대 후반 '민족미술계' 집중 탄압

"화가의 작품도 이적표현물로 기소될 수 있다니…"

지난 1987년 그림 <백두의 산자락 아래, 밝아오는 통일의 새날이여(이하 '백두의 산자락')>의 작가인 전정호·이상호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적표현물 제작·반포)로 구속되자 당시 미술계는 동요했다. 이 그림은 당시 민족미술협의회(민미협) 회원이었던 두 작가가 보름에 걸쳐 완성한 너비 7m, 높이 2.5m의 작품으로 1987년 민미협 회원전인 '통일전'에 출품됐다.

그보다 앞선 85년에는 아랍미술관에서 열렸던 <20대의 힘>전에 종로 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난입해 작품 36점을 강제 철거, 전시를 중단시킨 사건이 발생했으나 그림을 이적표현물로 기소하기는 '백두의 산자락' 건이 처음으로 꼽힌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은 이 그림이 "북괴의 통일주장을 그림으로 표현했다"며 전씨와 이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이적표현물 제작·반포)로 구속했다.

결국 이씨는 경찰의 수사를 받던 중 고문 수사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서울시립병원으로 옮겨졌고 전씨는 최종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작품도 몰수됐다.

이후로도 89년에 화가 홍성담씨가 <민족해방운동사> 걸개그림 사건으로, 화가 신학철씨는 그림 '모내기' 사건으로 구속되는 등 화가들의 구속 사례가 이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경찰의 협박으로 전시가 불발된 사건도 벌어졌다. 화가 안성금씨의 설치미술 작품 <아! 한반도>가 그것이다. 안씨는 지난 2001년 2월 28일부터 인사동 '갤러리 사비나'에서 전시 '노컷(무삭제)전'에 깃발 설치작품 <아! 한반도>를 출품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종로경찰서는 전시 개막에 앞서 한 일간지에 안씨의 작품 시안과 함께 전시 소개기사가 실린 뒤 안씨에게 노골적인 협박 전화를 걸어왔다.

안씨는 인사동 거리를 따라 한쪽에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담긴 인공기를, 다른 한쪽에는 성조기 안에 태극기가 자리한 깃발을 설치할 예정이었다. 안씨에 따르면 하나의 깃발은 북한의 세습체제를, 다른 하나의 깃발은 남한이 미 자본주의의 속국이 됐다는 현실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종로서는 안씨에게 "전시를 하면 이적표현물 제작·반포 혐의로 체포하겠다"며 약 4시간에 걸쳐 전화로 으름장을 놨다. 결국 전시는 불발됐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미술저술가이자 평론가인 최석태씨는 "그림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인데 가치 판단을 할 새도 없이 검·경은 국보법이라는 잣대로 무조건 탄압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씨는 "이런 탓에 전시가 불발되거나 검찰에 의해 몰수된 작품들은 평단의 비평이나 관객의 가치 판단을 받아보지도 못하는 불운을 안게 됐다"며 "국보법이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관객의 감상까지 제한했다"고 비판했다.

그간 작품이 몰수된 작가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보상조치가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배인석 민족미술인협회 사무처장은 "가장 급한 것은 국보법의 폐지이겠으나 이후에는 각계의 피해자들을 위한 보상특별법을 제정해 화가들의 경우에는 작품 훼손이나 고문 후유증 등 피해 사례에 대한 보상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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