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행위원장 김동원씨가 개막식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동원씨의 <철권 가족>은 국내 신작 섹션에서 보여진다.
ⓒ 강윤주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영화'라는 말은 생소하다. 대안적 삶의 양식에 관심이 많고 그런 탓에 대안적 문화에도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독자들과는 달리 평생 조중동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은, '독립영화'라고 하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독립했다는 뜻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거나 아니면 엉뚱하게도 일제 시대를 떠올리며 그렇다면 시대에 걸맞지 않게 항일 운동하는 영화란 말인가 라고 묻기까지 한다.

독립영화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일은 어느 정도 그 뜻을 짐작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간단하지 않다. 저예산 영화, 단편 영화, 정치적 영화 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와중에 본인은 독립영화를 '대안영화'라고 부르고 싶다. 반드시 수억에 이르는 자본이 있어야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이른바 스타라고 하는 인물들이 나오지 않아도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영화에 대한 고정 관념들을 이렇게 저렇게 깨나가는 작업을 하는 영화가 독립영화라고 보는 것이다.

▲ "인디 다큐페스티발" 안내석. 이곳에서 판매하는 자료집은 꽤 알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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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독립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은 우리 삶의 대안적 형태를 꿈꾸어 보는 일이기도 하다. 대안이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다면, 대안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제가 있다. 세계의 모모한 영화 제작자들이 모여 자기네들끼리 기준 정해서 A급이니 B급이니 점수 매겨놓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이는 거대 영화제들도 있는 반면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소박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꾸준히 그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작은 영화제들도 있다. 그 작은 영화제들은 운영 방식이나 영화를 들여오는 방식 등에서 큰 영화제들과 다를 수밖에 없고, 또한 그들이 지향하는 바 역시 다르다.

"일반영화-다큐 · 프로-아마 구분 없어져야"
비톰스키 감독 인터뷰

하르트무트 비톰스키는 42년생으로 독일 브레멘에서 태어났다. 작가 겸 영화감독, 영화학 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그는 40여편이 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중 대다수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93년 미국으로 건너가 칼 아츠(The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의 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그에게 궁금한 점 중 하나는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상황이었다. 독일은 국가적 차원의 영화지원 제도가 잘 되어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비톰스키는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인들 역시 한국의 다큐멘터리 영화인들 처럼 춥고 배고프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하는 젊은 학생들이 있다는 게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독일 다큐멘터리 영화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한 가지 요소가 있다면 독일 베를린 영화제의 한 섹션인 “영 포럼(INTERNATIONALES FORUM DES JUNGEN FILMS)”의 존재이다. “영 포럼”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와 다큐멘터리 영화 아닌 것이 섞여서 소개되며 그런 탓에 이 섹션은 관객들이 가진 다큐멘터리 영화에 대한 거리감을 없애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그 말 끝에 그는, 한국의 큰 영화제들에서도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객들이 생각하는 “일반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없애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확산되는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 영화인들의 경계 또한 무너져야 한다. 그는 “영화란 때로 행운을 잡는 것(Gluecksfall)” 이라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형편없어도 삶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기술적으로 매끈해도 쓰레기보다 못한 영화가 있다는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행운은 반드시 프로 영화인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 끝에 그는 마치 비밀을 털어놓듯이 한 가지 자랑거리를 말했다. 한국에는 지금 그에게서 영화를 배웠던 학생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그들 중에는 독립 영화계에서 꽤 이름난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한국에서 자리잡아나가는 것을 보며 자부심을 느끼고, 그들에게서 한국 영화의 미래를 본다고 말했다.

비록 그들이 한국에서의 삶의 지난함을 자기 스승에게 때때로 불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그들을 보면 왠지 아슬아슬해 보이는 한국영화 시장에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 강윤주

이런 면에서 나는 이런 작은 영화제들을 일컬어 모두 '독립영화제'라고 부르고 싶다. 평소에 부산영화제니 전주영화제를 즐겨 가셨던 분들, 이런 독립영화제에도 가 보시라! 큰 영화제에서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매력이냐고? 그 매력들을 소개해 드리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첫 번째로 소개하는 작은 영화제는 '인디 다큐페스티발'이다.

독립영화 중에서도 가장 찬밥 대우를 받는 것같이 보이는 분야가 바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흔히들 '동물의 왕국'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일 먼저 떠올리기 쉬운데, 앙증맞은 동물을 보며 그 연약함에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맹수들의 힘에 매혹되며 보게 되는 자연 다큐멘터리와 달리, 독립 다큐멘터리는 골치아프고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인디 다큐페스티발'에 와서 다큐멘터리들을 보면 그 선입견은 금방 깨진다.

▲ 국내 신작 섹션에서 소개될 <발 만져주는 여자>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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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두번째를 맞는 인디 다큐페스티발은 굳이 “일상의 정치학”이라는 “올해의 초점” 섹션의 테마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그 실험성과 정치성 때문에 따분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영화의 장면들은 우리를 웃게 만들고 분노하게 만들며 또한 적절한 여백을 만들어 놓음으로 사색할 여유를 준다. 킬링 타임용 영화들이 아니므로 시간을 잊을 수는 없다. 오히려 영화들은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영화제의 섹션은 세개로 나뉘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올해의 초점”에서는 “일상의 정치학”에 걸맞는 영화 여섯편이 소개된다.

'전쟁과 평화', '푸른색 비닐', '국경 저 편에서', 'SOS 테헤란', '니키타 명화 극장', '낙원을 찾아서' 중 본인이 보았던 '전쟁과 평화'를 박스 기사로 소개한다.

▲ KBS는 영화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에서 박정희 생가 장면을 삭제하고 "찢어라"는 말을 빼야 '열린 채널'에 방영이 가능하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영화제 기간 내내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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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섹션은 “회고전”으로, 여기에서는 독일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하르트무트 비톰스키(Hartmut Bitomsky)의 영화 세편 '아우토반', '폭스바겐의 제국', 'B-52'가 소개되며 비톰스키의 강연에 이어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신작전”에서는 열 한 편의 국내 다큐멘터리가 소개되는데, 노동조합 문제부터 장애인, 도시 빈민 문제까지 다루는 이 영화들은 월드컵 열기에 묻혀, 아시안게임의 소란스러움에 묻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던 그러나 엄연히 우리 현실의 중요한 한 단면이기에 균형있는 현실 감각을 위해서라도 보아야 하는 장면장면들을 선사해 준다.

10월 2일부터 10월 7일까지 서울 안국동 정독도서관 앞 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계속되는 국내 유일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축제 '인디 다큐페스티발'. 영화 1편당 입장료는 5천원이며 전회 관람권은 4만원으로 입장권은 맥스 무비(www.maxmovie.com)에서 예매할 수 있다. 영화제 프로그램과 상영시간 등은 www.sidof.org 에 가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가증스런 핵개발 논리가 한눈에
개막작 <전쟁과 평화>

개막작으로 상영된 이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인디 다큐 페스티발” 프로그래머 중 한 사람인 남인영씨(사진)는 상영 시간 150분인 이 영화를 개막작으로 선정하기까지 꽤 오랜 논의가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보통 개막일에는 영화제 시작을 기념하기 위한 리셉션도 있으니 개막작 상영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다소 문제가 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반드시 개막작으로 보여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말로 영화 소개를 마치며 감독인 인도 사람 아난드 팟와르드한(Anad Patwardhan)의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었다.

“오늘 10월 2일은 세계적으로 상서로운 날입니다. 바로 간디의 생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영화가 간디의 생일날 한국의 ‘인디 다큐페스티발’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다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 너무나 영광이고 의미있는 일입니다. “

질문이 있으면 이메일로 보내달라는 말까지 덧붙인 이 감독은 현재 이 영화와 관련된 법정 투쟁 때문에 한국에 오질 못했다. 인도의 영화심의기관이(세계의 영화인들이여, 단결하라! 끔찍한 영화심의기관은 한국뿐 아니라 온 세계에 산재해 있다!) 그의 영화에 나온 정치인들을 모두 빼라고 검열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탓에 그는 부득이하게 법적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가 관객들에게 전한 메시지에 간디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이른바 수미쌍관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간디의 메시지로 시작해서 간디의 메시지로 끝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간디의 “비폭력주의”다. 감독은 이 단어 하나를 관객들에게 분명히 전달하려는 목적 하에 인도와 파키스탄,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가서 피폭자들과 호전주의자들, 우라늄 광산에서 일하다 암에 걸린 자들과 핵의 위험을 필사적으로 은닉하려는 학자들을 보여준다.

잭 런던의 “강철 군화”라는 책을 읽어 보셨는가? 아직 의식이 여물지 않았을 때 그 책을 보았던 기자는 “강철 군화”의 충격을 오랫동안 잊지 못해 몇 달을 앓았었다. 평화롭고 안전해 보이던 세상 속에 숨은 모순과 위험의 철근을, 그 책은 내게 분명히 보여주었드랬다.

이 영화 “전쟁과 평화” 또한 이 끔찍한 철근 구조물을 분명히 보여준다. 가증스럽다는 것 말고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 핵 개발 과학자들과 종교인들, 정치인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지, 정부 차원의 프로파간다에 기만당한 국민들이 핵 개발 논리의 민족주의적 차원에 어떻게 놀아나고 있는지를 감독은 극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준다.

극명한 대비는 건조한 인터뷰만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 아니다. 중간중간 삽입된 인도의 대중 문화, 곧 록그룹이나 뮤직 비디오들은, 제3자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어처구니없이 들리는 노래 가사와 공연장 분위기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인도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가를 보여주며, 동시에 우리 근현대사에서는 또 얼마나 그런 일들이 많았던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어처구니없는 장면들은 한편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해주기도 한다. 마치 채플린 영화가 주는 웃음처럼, 한참 웃고나서는 씁쓸하거나 슬픔의 정서가 찾아오는 그런 웃음 말이다.

압권이었던 장면 하나를 예로 들자면, 핵 개발의 대부라는 어떤 인도인이 집에서 “월광”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장면은 핵 실험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마을 주민들 장면 바로 다음에 이어져서 나오는데, 이 우아한 핵의 대부는 물론 “핵은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보인다. “국군의 날” 행사와 군사 박물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핵 위험에 둔감한지, 미국식 사고가 낳은, ‘우리 아이 미국 보내서 훌륭한 사람 만들기’ 운동이 어떤 논리하에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 등이 그렇게 선명하게 보일 수가 없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본인은 혼잣말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런 영화를 5천원만 내고 볼 수 있다니!” 미국 군수 산업과 전쟁의 관계, 핵 개발과 세계 정치의 논리, 비폭력주의의 중요성 들을 어슴프레 알고는 있지만 한가닥에 꿰어서 생각할 수 없었던 분들, 모두 가서 이 영화를 보시길 권한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좋겠다.

영화의 한 장면, 파키스탄 여학생들이 핵 개발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이 나왔다. 우리나라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많이들 보시고 멀고 어렵게 느껴지는 “전쟁과 평화”라는 테마를 가깝게 끌여들여서 토론의 장을 벌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해본다. <전쟁과 평화>는 10월 4일, 금요일 저녁 일곱시반에 재상영된다. 장소는 서울 안국동 정독도서관 앞 아트선재센터 지하 1층이다. / 강윤주
2002-10-03 16:2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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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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