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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무를 설치하고 있는 올무꾼. 그는 올무를 걷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강기희

@BRI@"산정 높이 올라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은 찾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가수 조용필의 이 노래가사는 적어도 가리왕산 자락에서 이렇게 불리워져야 한다.

"가리왕산 자락에 올라가 올무에 걸린 짐승만을 찾는 올무꾼을 본 일이 있는가"라고.

어제 늦은 오후 개짖는 소리가 골짜기에 크게 울렸다. 마당을 내다봐도 방문객은 없었다. 지나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개가 지나가는 바람을 보고 짖었겠지 생각했다. 그런 경우 한참 짖다가 제풀에 지치는 게 보통인데, 개는 지치지도 않고 계속 짖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으로 나갔다. 개들이 짖는 방향은 산이었다. 먹이를 찾아나선 동물이라도 있나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잠시 후 개 한 마리가 산으로 뛰어갔다. 주인이 나타났으니 짖는 소리도 더 의기양양했다.

그 때까지만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개가 뛰어가는 방향의 산 중턱에서 작은 움직임이 시야에 잡혔다. 뭔가 싶어 자세히 살폈다. 처음 보는 사내였다.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줌을 당겨보았다. 사내는 산기슭에 쭈그리고 앉아 뭔가를 설치하고 있었다.

산 중턱의 작은 움직임 포착, 올무꾼 만나다

▲ 올무에 동물이 걸렸는지 확인하러 온 올무꾼.
ⓒ 강기희
좀더 지켜보기로 했다. 개짖는 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사내는 몸을 더욱 낮추었다. 그는 한 곳에만 머물지 않고 조금씩 산자락을 타고 이동했다.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는 것이 보통의 산꾼들과는 달라 보였다.

순간 '올무를 놓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순간 오리발을 내밀 수 있으니 일단 사진을 찍어야 했다.

사내는 산등성이를 타고 넘는 동안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올무를 놓았다. 산을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사법권이 없으니 사내를 다그쳐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가 "너가 뭔데?"라고 반발하면 상황은 우스워진다. 좋은 말로 사내를 설득해야 했다.

사내는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내가 산을 내려오는 사이 큰 기침을 하며 다가갔다. 그는 순간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짓더니 신발과 옷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그런 사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의식했던지 고개를 외로 꼬며 걸어왔다.

"처음 보는 분인데 어디서 왔어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부드럽게 물었다.

"읍에서 왔어요."

여기서 읍이란 정선읍을 말한다. 읍내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켜보니 올무를 놓는 것 같던데, 그런 거 놓으면 안 되지요. 안 그런가요?"

내 말에 사내가 움찔하더니 말을 더듬는다.

"아, 예, 뭐…. 몇 개 안 놓았어요."
"몇 개가 아니라 하나라도 놓으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
"겨울철 일은 없고…. 하도 심심해서 와본 거래요. 이 마을 사는 친구가 여기에 놓으면 된다 그래서…."

사내가 마을에 사는 친구를 들먹였다. 첫날엔 친구와 함께 왔단다.

"지난 번 눈오기 전에도 놓았죠?"
"예, 한 나흘 됐어요."
"그래, 걸린 게 있던가요?"
"그렇게 빨리 걸리진 않애요."
"그럼 올무를 봄까지 그냥 두는 거네요?"
"아니래요, 지켜봐서 걸리지 않으면 다 걷어요."
"그걸 어떻게 믿죠?"

올무가 죄라는 걸 모르는 사내

사내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더니 대뜸 "○○ 아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더니 '처남'이란다. 또 "△△ 아냐"고 물었다. 물어보는 이가 '친구'라고 하니 '사돈'이란다. 이래저래 따지고 보니 학교 후배다. 시골이란 게 이래서 큰 일 하기가 쉽지않다.

"이제보니 알 만한 친구로구먼."

그 말에 사내의 얼굴이 펴진다.

"내가 요즘 올무에 관해 얼마나 신경쓰는지 모르는가 본데, 좋은 말 할 때 올무 다 걷어라. 응?"
"아예, 걷어야죠. 걷을게요."
"근데 올무 놓다 걸리면 어떤 죄를 받는지는 아냐?"
"벌금 좀 내면 된다는 얘긴 들었어요"
"얘기만 들었어?"

▲ 산기슭 곳곳에 올무가 설치되어 있다.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하나.
ⓒ 강기희
내 말에 사내가 "예" 하고 대답한다. 올무를 놓는 게 막연히 죄가 된다는 인식뿐이다. 올무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큰 지에 대해선 생각도 않고 산다. 불법 밀렵이라는 인식도 낮다. 자연에 대한 이해가 먼저 선행되어야 할 대목이다.

동물과 인간이 함께 공생하는 이유를 알려주어야 할 것 같았다. 동물이 살지 못하는 자연은 인간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교육해야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가 곧 범죄를 낳는 법 아니던가.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 꼭 걷어야 해."
"예, 일찍 와서 다 걷을 테니 걱정마세요."
"앞으로 올무같은 거 놓지마라. 그런 건 야비한 일이잖어. 올무 자꾸만 놓다보면 사람 목에 올무가 걸릴 날이 온단 말여.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그냥…. 하도 심심해서 한 번 해본 거래요."

사내는 그렇게 말했지만 심심풀이로 하는 건 아닌 듯 싶었다.

"내가 부탁한다. 내일 꼭 올무걷고 그런 일 두번 다시 하지 말아라. 서로 얼굴 붉힐 일 하지 말자. 알았지?"
"예, 알았어요."

무지는 범죄를 낳고...

그렇게 사내와 헤어졌다. 이런 일로 고발을 하는 것도 멋쩍은 일이라 설득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사내는 신문이나 뉴스도 보지 않고 사는 듯 했다. 밀렵을 그저 '겨울이 오면 당연히 할 일'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단속만이 능사가 아니다. 물론 전문 야생밀렵꾼은 현재의 법만으로도 부족하다. 법조항을 더 강화시켜 가혹하리만치 엄벌해야 한다. 동물들에게 현재의 법 조항에 대해 물어본다면 하나 같이 "법이 너무 가볍다"고 할 것이다. 무거운 처벌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생계형이 아닌 생활형 불법 밀렵꾼들은 단속보다 올무를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교육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다. 그들 대다수는 산촌을 근거로 살고 있기에 교육만 제대로 이루어지면 밀렵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생계형 밀렵꾼보다 무서운 게 생활형 밀렵꾼이다. 그들이 놓은 불법 밀렵도구가 더 많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교육시스템을 갖춰 범법자를 줄이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오늘 어제 만난 올무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은 깨어지고 말았다. 끝내 오지 않는다면 내 손으로 걷을 수 밖에 없다. 같은 지역에 사니 언젠가 만날 것이다. 날 보고 피한다면 그는 이미 범죄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럴 땐 말없는 자연이 차라리 부럽다. 인간이 어떤 짓을 해도 포근하게 품어주는 자연에게는 미안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없다. 미안하다. 인간들의 죄가 너무 크다.

▲ 눈 덮인 가리왕산. 평화로워 보이지만 동물들의 치열한 삶이 진행되는 곳이다.
ⓒ 강기희

태그:#올무꾼, #올무, #가리왕산, #밀렵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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