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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리왕산 자락, 평화롭기 그지없다.
ⓒ 강기희

가리왕산 자락에 빛이 스민다. 간밤엔 별도 많았다. 마당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밖으로 나가니 낑낑이가 마당을 겅중겅중 뛰며 아침 인사를 한다. 어제의 공포를 벌써 잊었나보다. 낑낑이는 나와 함께 사는 친구다.

주인도 분간 못하는 '덫의 공포'

먹이를 주고 올무에 걸렸던 자리를 확인해본다. 다행히 큰 상처는 없다. 상처가 있다한들 동물병원에 데려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난번에는 수의사의 손에 상처를 냈던 낑낑이다.

"수의사 생활 30년이 넘었는데 개한테 물리긴 처음이네."

수의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덫에 걸린 이후 낑낑이는 인간에 대한 적개심이 대단했다. 주사를 맞는 대신 알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왔다. 덫은 멧돼지를 잡기 위해 수수밭에 놓았는데 사람도 다칠 만큼 위력이 대단했다.

그날 낑낑이는 자신의 발목을 조이는 덫을 이빨로 물어뜯었다. 쇳덩어리는 강력한 이빨로도 어쩔 수 없었다. 낑낑이의 입에 피가 흥건했다. 덫을 푸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공포감에 휩싸인 낑낑이에게 그 순간은 주인인 나도 적이었다.

▲ 나무에 묶인 올무. 몇 톤의 무게에도 끊어지지 않는 와이어 줄로 만들었다.
ⓒ 강기희
어설프게 다가갔다가는 물릴 판이었다. 집에 가서 쇠파이프 두 개를 가지고 왔다. 파이프로 발목을 옥죄는 조임새를 눌렀다. 스프링처럼 만들어진 조임새에 힘을 주자 틈이 생겼다. 나머지 파이프로 덫을 벌려 낑낑이의 다리를 꺼냈다.

올무에 세 번, 덫에 한 번

그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다. 그랬는데 어제 오후 낑낑이는 또 올무에 걸렸다.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마당으로 나갔는데 뒷산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몇 번의 경험으로 올무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카메라를 챙겼다. 등산화로 갈아 신고 전지가위와 장갑을 챙겼다. 그리곤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뛰었다. 올무에 걸린 낑낑이는 주인이 오자 살았다는 듯 꼬리를 흔들었다.

올무는 와이어 줄로 만든 것이었다. 올무는 산짐승들이 다닐만한 길목에 놓여져 있었다. 와이어 줄로 만든 올무는 전지가위로도 끊어지지 않았다. 우선은 나무에 묶인 올무부터 풀어야 했다. 올무는 낑낑이의 허리를 감고 있었다. 시간이 오래되지 않아 큰 상처는 없는 듯했다. 낑낑이를 진정시키며 올무를 조심스럽게 풀었다.

▲ 올무에 걸린 낑낑이. 빨리 풀지 않고 사진만 찍고 있냐?
ⓒ 강기희
낑낑이는 충격을 받았던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다친 곳을 확인하려 하자 만지지 못하게 으르렁거렸다. 올무가 목에 걸리지 않은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었다. 낑낑이를 안고 집으로 왔다.

낑낑이가 올무에 걸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봄 가리왕산 자락으로 이사온 후 올무에만 세 번 걸렸고 덫에 한 번 걸렸다. 두 번은 와이어 줄로 만든 올무에 걸렸고 한 번은 철사 줄로 만든 올무에 걸렸다.

강철로 만들어진 와이어 줄은 멧돼지나 노루, 사슴 등의 산짐승을 잡기 위해 놓는다. 반면에 가는 철사로 만든 올무는 토끼나 너구리 등을 잡는 데 사용된다. 낑낑이에게는 와이어 줄보다 철사로 만든 올무가 더 치명적이다.

몸부림칠수록 깊게 파고드는 올무

지난 4월 집수리를 한창 하고 있는데 한 스님이 찾아왔다. 개가 올무에 걸렸는데 이 집 개가 아니냐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낑낑이가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마침 찾아온 후배의 차를 타고 낑낑이가 있는 곳으로 갔다.

▲ 올무가 허리를 죄었다. 빨리 발견되어 큰 상처는 없었다.
ⓒ 강기희

낑낑이는 집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있었다. 산 아래 집의 나이든 며느리가 올무를 벗겨주려 갔다가 어찌나 날뛰는지 그냥 내려왔다고 아흔이 된 그 집 할머니가 그동안의 사연을 전했다.

"걸린 지는 얼마나 됐어요?"
"두 시간은 되었을 거래요."

진작 알려주지 않은 게 야속했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뿐이었다. 나는 진달래가 곱게 핀 산자락을 뛰어 올라갔다. 가파른 산을 그것도 직선으로 뛰어 올라가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다리에 힘이 빠지며 걸음을 옮기기도 힘들었지만 낑낑이의 비명소리를 들은 이상 멈출 수가 없었다.

올무에 걸린 낑낑이는 피투성이가 된 채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올무는 왼쪽 앞발에 걸려 있었다. 그동안 철사를 끊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올무는 낑낑이를 풀어주기 위해 올라왔던 나이든 며느리의 남편이 놓은 게 분명했다. 해마다 몇 마리씩 그렇게 잡아먹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던 사람이다. 분노가 치밀었다.

▲ 와이어로 만든 올무, 살상용이다.
ⓒ 강기희
올무에 걸린 다리를 만져보려 했지만 낑낑이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주인인 나조차 믿지 못하는 듯 내게도 적개심을 드러냈다. 낑낑이는 올무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그럴수록 올무는 살점을 깊게 파고들었다.

덫의 위력 앞엔 사람도 안심 못해

나를 쳐다보는 낑낑이의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올무를 놓은 자의 턱을 한 대 올려붙이고 싶었다. 가지고 간 전지가위로 철사를 끊었다. 발목 깊숙하게 파고든 철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

나무에 묶인 철사가 끊어지자 낑낑이의 몸부림이 잦아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낑낑이를 안심시켰다. 머리를 쓰다듬자 안정이 되는 듯 흐르는 피를 핥기 시작했다.

낑낑이를 안는 일도 힘들었다. 다리가 다친 터라 상처를 건들지 말아야 했다. 조심스럽게 낑낑이를 안았다. 산 아래가 까마득하게 보였다. 이렇게 높은 곳을 단숨에 올라왔다는 게 놀라웠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급경사의 산을 그것도 낑낑이를 안고 내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나는 물론이고 낑낑이도 아래로 구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올무를 팔목에 걸어 보았다. 누군가 풀어주지 않으면 곧 죽음이다.
ⓒ 강기희
산엔 길조차 없었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산을 내려오자 땀이 비오듯 했다. 긴장이 풀리며 나도 모르게 길게 숨을 토했다. 집에 도착하자 낑낑이는 흐르는 피를 핥았다. 장갑을 끼고 묶인 철사를 끊으려 했지만 아픈지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밤이 되자 낑낑이의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피가 통하지 않은 게 원인이었다. 동물구조대에 전화를 하니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했다. 곧 바로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 게 잘못이었다.

다음 날 일찍 동물병원에 갔다. 상처를 본 수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마취를 했다. 낑낑이는 곧 널브러졌다. 발목은 벌써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살점을 파고든 철사를 제거한 수의사는 상처난 부위를 치료하고 바늘로 꿰맸다.

낑낑이의 발목엔 아직 그때의 상처 자국이 남아 있다. 낑낑이를 위협하는 건 올무뿐 아니다. 지난 여름엔 덫에 걸렸는데 톱니 같은 덫이 낑낑이의 오른쪽 앞발을 '철꺽' 조였다. 만약 사람이 밟았다면 발목에 큰 상처를 입을 정도로 가공할 힘이었다.

지금까지 낑낑이가 걸린 올무나 덫은 짐작컨데 한 사람이 놓은 것이다. 대체적으로 올무나 덫을 놓는 사람은 마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다. 올무나 덫을 외부인이 놓는 경우는 드물다.

올무에 걸려 다리가 잘린 노루

▲ 올무에 걸린 노루. 뒷다리가 잘렸다.
ⓒ 강기희
정선군청은 불법으로 놓는 올무에 대해 대책조차 없었다. 신고를 해도 현장을 적발하기 전엔 별다른 방법이 없단다. 그저 알아서 올무를 놓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이다. 단속의 사각지대에 있는 올무꾼들이 활개치는 이유가 그러한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지.

지난 6월 초엔 뒷다리 한 쪽이 잘린 노루가 개울로 내려왔다. 올무에 걸린 다리가 썩자 저절로 잘린 것이었다. 발목 정도가 아니라 다리 전체가 없는 노루는 혼자 걷지도 못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잘린 부위는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 몸으로 개울까지 내려온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서둘러 정선군청에 전화를 걸자 군청에서는 동물병원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한참만에 도착한 수의사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수의사는 주사 두 방을 놓고는 돌아갔다. 아무래도 노루가 걱정되어 동물구조대에 전화를 걸었더니 노루는 뒷다리가 없으면 균형을 잡지 못해 죽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사람이 그런 일로 신고까지 하냐고 내게 핀잔을 주었다. 세상 물정 모른다는 거였다. 다음날 아침 노루가 어찌 되었는지 보러 갔더니 노루는 없었다. 저 혼자의 힘으로 걷지도 못하는 노루였다. 누군가 보신용으로 가지고 간 모양이었다. 씁쓸했다.

우리 산야가 올무로 가득 찰 날이 머지않았다

▲ 응급처치를 하기 위해 온 수의사. 인간이 싫은지 노루가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린다.
ⓒ 강기희
자연은 언제나 겸허하다. 빠르지도 급하지도 않다. 모든 건 때가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인다. 자연이 재앙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극도로 표현 될 때만이다. 우주만물 중에서 인간만큼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존재도 없다.

산짐승이 인간을 공격했다는 가끔 듣는다. 얼마 전엔 멧돼지의 공격을 받은 시골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를 봤다. 이번 달 초엔 지리산 반달곰이 올무에 걸려 숨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시골에 살다보면 인간이 산짐승의 영역을 얼마나 침범하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은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또는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을 파괴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수렵의 역사와 함께 하는 올무는 다른 말로 올가미다. 오랜 세월 놓기만 했지 거두어들인 적은 없다. 나무하러 산에 가면 올무를 쉽게 발견한다. 요즘엔 철사뿐 아니라 굵은 낚싯줄도 보인다. 산을 내려올 때 발목에 걸려 넘어진 적도 있다. 그럴 땐 인간인 나도 인간이 싫어진다.

바람소리가 크다. 가리왕산 자락에 있는 산짐승들의 울부짖음이 들린다. 죽어간 산짐승이 인간을 향해 소리친다.

"인간들은 정말 잔인하고 비겁해!"

자연과 인간은 공생할 수 없는 것일까. 자연 앞에 겸손할 줄 모르는 인간이 있는 한 낑낑이는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올무가 또 놓여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이번 겨울이 고비다. 우리의 산야가 올무로 가득 찰 날이 머지않았다.

▲ 응급처치를 한 후 숲에 옮겨 놓았으나 다음 날 누군가 가지고 갔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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