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눈덮인 가리왕산, 동물들의 먹이가 없다.
ⓒ 강기희
자연이 병들고 있다. 굳이 먼 곳을 찾지 않아도 병든 자연은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야생동물에 대한 밀렵은 오늘도 당국의 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기승을 부린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산에 오른 밀렵꾼들 '운 좋으면' 몇 마리, '운 나쁘면' 빈손

@BRI@불법으로 잡은 야생동물은 언제나 그렇듯 높은 가격을 형성한다. 딱히 몸에 좋아서가 아니라 단속에 걸렸을 때를 대비해 위험부담금이 따로 붙기에 가격이 비싸진다.

굳이 보신문화를 거론하지 않는다 해도 야생동물의 밀렵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많아졌다고 하는 주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히려 예전에 비해 개체 수는 물론이고 멸종되는 동물이 늘어가는 실정이다.

실제 <세계자원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과 2001년 한국은 국토 ㎢당 야생동물 수가 95종으로 155개국 중 131위에 그쳐 야생동물빈국으로 판명되었다. 이런 보고서를 보고도 동물이 많다고 주장할 수 있는 건지.

무분별한 개발로 동물의 이동통로가 막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지 않으니 근친교배로 인한 개체수 감소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산촌의 밀렵은 판매용과 보신용을 겸하기에 문제가 더 심각하다. 농한기를 맞은 사람들이 소일거리 삼아 하기에 근절도 어렵다. 단속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른다. 정선군청 환경담당의 말이다.

"단속에 한계가 있습니다. 3명의 인원으로 그 많은 산을 감시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단속을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큽니다. 예산 확보가 가장 어렵습니다."

단속을 한다 해도 밀렵 현장을 적발하지 않으면 근거를 찾기도 어렵다. 요즘엔 밀렵한 야생동물을 냉장고에 넣어두는 어리숙한 사람도 없다. 현행범이 아니고서는 고발조치하기도 힘들다.

올무나 덫 등의 밀렵도구는 제작비도 적게 든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밀렵인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노린 밀렵은 그 끝이 없다. 한번 설치하면 불변이다. 누군가 수거하지 않으면 언젠가 무슨 동물이든 걸리게 되어있다. 그게 더 무섭다.

밀렵꾼들은 하루 한 번씩 순찰 돌 듯 산자락을 올라 '운 좋으면' 몇 마리고 '운 나쁘면' 빈손으로 내려온단다. 이들은 운동하는 기분으로 밀렵을 즐긴다. 어쩌다 멧돼지라도 걸리면 한달 생활비가 해결된다니 그 유혹도 만만치 않다.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밀렵...'인식전환' 반드시 필요

▲ 먹을 것을 찾기 위해 땅을 파헤친 모습, 겨울은 동물들에게 가혹한 계절이다.
ⓒ 강기희
현행법엔 불법 포획 또는 반입된 야생동물과 이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물 및 추출가공품을 알면서 취득, 먹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

그러나 이 같은 법조항 정도는 밀렵꾼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것 같다. 실형을 선고받기보다는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기 때문이다. 벌금형도 밀렵한 야생동물을 근거로 산출하다 보니 벌금 액수가 크지 않다. 결국 단속에 적발된다 해도 큰 부담으로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기사를 쓰면 농민들은 농작물을 훼손하는 야생동물도 보호해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 농민들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문제는 농산물이 재배되는 시기에 국한되는 '따짐'이어야 한다.

지금은 겨울철이고 농작물도 없는 시기이다. 눈이 덮인 산은 먹을 것이 없다. 밭으로 내려온다 해서 먹을 것이 있는 시기도 아니다. 겨울철 올무나 덫을 놓는 행위는 농사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야말로 불법 밀렵일 뿐이다.

"산촌에 사는 주민들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밀렵을 근절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동물과 인간이 상생할 수 있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 겁니다."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의 박정운(자연생태국장)씨는 야생밀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단속도 중요하지만 밀렵에 대한 죄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산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도록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산촌 사람들이 밀렵을 선택하기보다 동물을 보호하는데 앞장선다면 밀렵은 저절로 근절될 것이고, 자연 생태계의 복원도 그만큼 빨라질 수 있을 거란 희망이다. 환경단체의 이러한 희망에 대해 산촌 사람들의 반응을 여전히 싸늘하다.

정부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 내놓아야

▲ 올무에 걸린 천연기념물 산양, 올무는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 녹색연합
농사가 진행 중인 4월에서 10월 수확기까지는 동물로 인한 농작물의 피해에 대해 지자체에서 보상하고 있다. 정선군의 경우 지난 한 해 119가구에서 피해신청을 했고, 그 중에서 피해가 입증된 90가구에 9천여만원을 보상했다.

농사철엔 농작물을 훼손하는 야생동물을 퇴치하기 위해 허가를 받은 단속반이 출동도 한다. 농민이 원하면 밭 근처에 올무를 놓을 수 있도록 지원도 해준다. 물론 농사가 끝나면 반납해야 하는 조건이다.

농사철 야생동물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환경부와 지자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단순히 피해 보상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선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전기 목책기 같은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농민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전기 목책기의 설치 비용을 80%나 지원하는 정선군의 경우에도 사용하겠다는 농가가 없는 실정이다. 물론 전기 목책기의 안전성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태양열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감전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이 아니기에 안전사고도 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 올무에 걸린 산양 뼈만 남았다. 이런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 녹색연합
정선군청에 근무하는 환경 담당의 경우 농민의 말도 들어줘야 하고, 환경단체의 의견도 들어줘야 하는 실정에서 업무를 제대로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우리는 중립을 지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엔 서로의 입장 차이가 너무 크거든요."

담당자의 말이 이해는 간다. 그러나 야생동물 보호와 농민들의 피해에 대한 대책은 반드시 나와야 한다. 농사철 야생동물을 쫓기 위해 밤새 보초를 서는 일이 비일비재한 산촌에서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근본 대책은 없는 걸까.

동물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의 욕심이 '문제'

▲ 환경단체에서 수거한 올무, 살인 무기들이다.
ⓒ 녹색연합
있다. 농민이 욕심을 줄이면 간단하게 해결된다. 예전 우리네 조상들은 추수를 할 때 동물의 먹이 정도는 남겨두는 미덕이 있었다. 까치밥이라는 것도 동물과 공생하자는 뜻이 담겨있다. 절반은 동물이 먹고 절반은 인간이 먹는 것이라는 인식 또한 보편적이었다.

요즘은 어떤가. 동물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이 되려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이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 동물의 영역에 침범하고서도 음식을 나눠 먹을 줄 모른다면 인간의 욕심이 너무 크다. 후안무치가 따로 없는 일이다.

자연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만이 자연의 혜택을 누려서도 안 되는 일이다. 동물과 인간이 공생, 상생할 때만이 자연은 평화를 찾는다.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다. 야생동물이 농작물을 훼손했다고 화낼 일이 아니라 나눠 먹었다고 생각하면 근심이 없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일이 생기면 현장 사진을 찍는 것과 동시에 군청에 즉각 전화를 한다. 포수를 보내달라는 것이다. 다 삶의 여유가 없는 탓이다. 자기 것은 하나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삶의 표현이다.

동물들의 영역에 침범한 인간의 주인 행세는 눈뜨고 지켜보기 힘들 정도다. 함께 사는 법을 모르기에 그렇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가 있는가. 이 겨울 먹을 것을 찾아 마당가까지 내려오는 노루와 멧돼지를 품어 줄 수 있는 여유는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 가리왕산에 설치된 올무, 이런 올무를 놓은 자는 3대가 망한다, 라고 어느 네티즌이 말했다.
ⓒ 강기희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