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영화팬들은 11일 유명을 달리한 신상옥 감독을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합니다. 저는 전쟁영화의 재미를 알려준 감독으로 기억합니다.

강원도 신철원군 갈말면 지포리에 있는 신철원국민(초등)학교를 다닐 때 본 신 감독의 <빨간 마후라>는 그 전에 본 <돌아오지 않는 해병> <5인의 해병> 등 전쟁 영화와는 다른 정말 재미있고 신나는 영화였습니다.

 적진에 비상낙하한 최무룡을 구출하기 위해 수송기를 이용한 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2, 3년 전 EBS에서 우연히 <빨간 마후라>를 다시 봤는데 40여 년 전에 본 영화의 몇 장면이 기억이 났습니다. 특히 다리를 폭격하는 장면은 그때 그 느낌 그대로였습니다.

언제 그 영화를 처음 봤는지 궁금해 제작연도를 확인해 보니 1964년 작품이더군요. 그때 어느 관공서 강당에 광목으로 된 스크린을 걸어 놓고 덜덜거리는 영사기로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EBS에서 본 <빨간 마후라>에는 40여 년 전에 볼 때는 그냥 지나친 장면도 꽤 있었습니다. 특히 남궁원, 최무룡 두 배우가 시차를 두고 극 중 황해도 사리원 출신 처녀 최은희의 입술을 빼앗고(최무룡은 선배 장교인 남궁원이 전사한 뒤 그의 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역시 공군 장교인 신영균은 윤인자와 격정적인 키스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이들 외에 이대엽, 박암, 김희갑 등의 얼굴도 보였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분도 계시지만 그 영화에 나온 모든 분들은 한국영화 발전에 든든한 받침돌을 놓은 분들입니다.

그 시절 영화니 과장된 억양의 대사가 웃음 짓게 하고, 신세대들에게는 낯선 '괴뢰군'이라는 용어도 나오지만 최무룡이 자신의 고향(함경남도 안변)을 폭격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북한 출신인 신 감독의 의식세계가 언뜻 비치기도 합니다.

 영화속 전투기 조종사들이 즐겨 찾던 '바'의 여인들.

또 당시로는 획기적인 F-86 등 제트기의 공중전 장면, 미니어처를 이용한 다리 폭격 장면 등은 신 감독의 영화 재능을 보여줍니다. 적진에 비상낙하한 최무룡을 수송기로 구출해 내는 장면은 극적입니다.

신영균은 이 영화로 아시아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이 영화는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기도 했습니다. 신 감독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당시 일반적으로 소요되는 3∼4만 자[尺]가 아닌 10만 자의 필름을 썼다고 합니다. 영화를 찍는 동안 필름이 떨어져 암시장에서 사오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서울 명보극장에서만 20여만 관객을 동원했는데 당시 서울특별시 인구가 250여 만 명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전국 200여 개 극장에 동시에 거는 방식이라면 수백만 명은 쉽게 동원했을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신파조'의 대사를 부드럽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기를 최신형으로 바꾸고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공중전을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등 개작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출격에 앞서 작전내용과 정신훈화를 듣고 있는 조종사들. 자료사진은 흑백입니다만 '빨간 마후라'는 컬러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지 못한 신세대 독자들은 <빨간 마후라>라는 영화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알려진 대로 '빨간 마후라'는 전투기 조종사의 상징이고 이 영화에서는 사랑, 충성, 우정을 아우르는 상징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의 주제곡은 지금처럼 축구국가대표팀을 위한 특별한 응원가가 없던 1960, 70년대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올림픽, 월드컵 지역예선 같은 큰 경기에서 응원가로도 불렸습니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르고,구름따라 흐른다 나도 흐른다
아가씨야 내마음 믿지 말아라, 번개처럼 지나갈 청춘이란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빨간 마후라
석양을 등에 지고 하늘 끝까지,폭음이 흐른다 나도 흐른다
그까짓 부귀영화 무엇에 쓰랴, 사나이 일생을 하늘에 건다

저는 초등학교 때, 그리고 나이가 꽤 들어서도 재미있게 본 <빨간 마후라>로 신 감독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될 겁니다. <만추>의 이만희 감독을 기억하듯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