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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일일수록 여유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이름 얘기에 앞서 '학교 우스개'를 하나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가난한 초등학교가 어디인 줄 아는가. '일원'초등학교다. 그런데, 이 학교보다 더 가난한 초등학교가 있다. 바로 '삼전'초등학교다. 이를 어쩌랴. 이 학교보다 더 쪼들린 학교가 있다고 한다. 그 학교 이름은 바로 '영원'초등학교다. 소리로만 따지면 '땡전 한 푼 없는 학교'란 얘기다. 이 세 학교 모두 서울에 실제로 존재한다.

춘삼월 입학생들 첫 선물은 바로 '학교이름'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받는 선물이 바로 자기의 이름이듯, 춘삼월 입학생들이 받는 최초의 선물은 바로 그 학교의 이름이다. 이 학교이름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교육관계법에 따라 학교이름이 적힌 학생생활기록부를 법정장부로 보관해야 하는 기간이 무려 50년이란 점만 봐도 그렇다.

이래서 뭇사람들은 이름 짓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소중하게 이름 붙여야 할 것은 학교이름도 마찬가지다.

▲ 야동초등학교 공식 홈페이지 첫 화면. '야동소개', '야동교육목표'란 메뉴가 보인다.
ⓒ 야동초사이트

그런데 학교이름이 정말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야동초, 대변초, 기계초, 백수중, 정자초, 고아초…. 전국 1만여 개 초중고 이름을 무작위로 분석해본 결과다. 현재 이들 학교 이름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 누리꾼 사이에서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는 상태다.

이보다는 덜하지만 이름이 이상한 학교는 이뿐만이 아니다. 오류초, 방화초, 정관초, 좌천초, 물건중, 반송중, 성명초, 이북초, 장마초, 가수초, 김제동초…. 손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사정이 이쯤 되면 학교 이름 때문에 여덟 살 어린 아이들이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때에 따라선 평생을 따라 다니는 상처로 남는 셈이다.

성인인증 받고 학교사이트 검색해야 하는 초등학생들

충북 충주에 있는 야동초 학생과 교직원 53명은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서 성인인증을 받은 뒤라야 자기 학교이름을 검색할 수 있다. '야동초등학교' 또는 '야동'이란 단어 자체가 20세 이하 검색 금지어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이트 주소도 'yadong'이란 영단어가 들어 있는 이 학교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야동소개', '야동교육목표', '야동교육자료실'이란 메뉴가 보인다. 이 학교 교가 또한 눈에 거슬린다. 가사 내용 중에 '우리들은 즐거운 야동어린이, 어디서나 떳떳한 야동어린이'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학교 류아무개 교장은 4일 전화통화에서 "인터넷에서 학교이름이 알려져서 사람들이 학교 사이트에 이상한 글을 올리곤 하는 것을 빼면 학교 이름 때문에 어려움은 없다"면서 "시류에 흔들리면서 학교명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없다"고 말했다.

야동초는 물론, 부산시에 있는 대변초와 정관초도 놀림거리가 되기는 마찬가지. 정관초 공식 사이트에 들어가면 '정관앨범'이란 메뉴가 첫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세 학교 모두 지역이름(야동리, 대변리, 정관면)을 그대로 학교명으로 차용해서 벌어진 일이다. 이 가운데 야동초와 정관초는 일제시대에 지금과 같은 이름으로 개교한 학교다. 일제가 붙인 지역 이름을 특별한 고려 없이 그대로 이어받아온 결과인 것이다.

고민 없이 일제시대 지역명 따온 학교이름 그대로

경북 포항에 있는 기계초도 일제시대에 이름 붙여진 학교다.

▲ 기계초등학교 공식 홈페이지 화면.
ⓒ 기계초사이트
위에 언급된 대부분 이상한 학교이름은 지역명이나 '동서남북' 등 방위표시를 특별한 고민 없이 갖다 붙인 결과다. 이 가운데 김제동초는 김제 동쪽에 자리 잡은 학교라서 이렇게 이름 붙였다는 소식이다.

97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일제시대엔 일본을 연상시키는 '중앙'이나 '동'자가 들어간 학교는 일본학생이 주로 다니던 학교였다고 한다. 한국학생이 다니던 2, 3류급 학교는 '서', '남', '북'이란 지역명이 들어갔다. 이러던 것이 해방 이후 특별한 고민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아름답지 못한 학교이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현재 학교이름을 개명하거나 작명하는 곳은 지역 교육청이다. 학교를 세울 때는 주로 교육장(고교의 경우 교육감)이 교명선정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교육청 관리과장, 인근학교 교장, 지역의회 의원 등이 위원을 맡고 있다는 게 교육부의 설명이다.

지난해 11월엔 이렇게 만든 경기도 의정부교육청의 교명선정위원회가 학교 이름을 '신장암초등학교'라고 결정했다가 '병명을 떠올리게 한다'는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취재 결과 문제의 가칭 '신장암초'란 교명은 '동막리'와 '교암리'란 지역명에서 한 글자씩 따온 '동암초등학교'로 바뀐 상태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다.

이에 앞서 지난 해 10월엔 울산지역에서도 이상한 학교이름을 고쳐달라는 민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굴화초, 남창중, 야음중, 농소고 등이 부정적인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면서 주민들의 원성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학교이름은 위에 언급된 것에 견주면 약과라고 할 수 있다.

"둔감한 교육행정... 빨리 바꿔줘라"

이상한 학교이름에 대해 황호영 서울 상계중 교사는 "교육행정이 세상변화에 얼마나 둔감해 있는지는 학교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면서 "야동초나 대변초와 같이 시대에 맞지 않는 학교명이라도 빨리 바꿔줘야 하는 게 교육당국이 해야 할 몫"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지난해 학교이름 때문에 한두 차례 논란이 있었는데도 이에 대한 실태파악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복지, 학교이름 등을 관장하는 교육부의 한 서기관은 "여태껏 학교이름에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학교이름은 지역교육청 소관이기 때문에 특별히 할 말도 없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 솔직히 고민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학교이름을 만드는 곳은 지역교육청이지만 교육청을 지도 감독해야 할 곳은 바로 교육부다. 둔감한 교육부가 있는 한, 당분간 아이들의 상처는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앞으로 학교이름 관련 기사는 두 차례 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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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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