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김제중앙초등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 이 학교는 일제시대인 1941년부터 중앙국민학교란 이름이었다가 96년 '국민학교'란 말만 '초등학교'로 바꿨다. 이 같은 역사성을 띤 학교들은 금산중앙초, 강경중앙초, 구좌중앙초, 서울중앙고, 서울중앙여고 등 수두룩하다.
ⓒ 김제중앙초 사이트

가장 건성건성 학교이름 짓는 방법(작명법)은 무엇일까? 땅이름 학자들은 바로 방위작명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른바 '동서남북', '중앙'과 같이 방위명을 따온 학교명이 가장 '막 되먹은 이름'이라는 얘기다. "이런 방위작명법을 널리 퍼뜨린 장본인은 바로 일제"라고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은 지적했다.

일제시대 중앙국민(중고)학교, ○○동국민(중고)학교처럼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중앙'이나 '동'이란 방위명이 있는 학교는 일본인이 많은 명문학교였다. 반면 '서', '남', '북'과 같은 방위명이 들어간 학교엔 조선인들이 많이 다녔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센징 핫바리 학교'였다는 소리다.

일제식 방위작명법 줄줄이 발맞춘 학교이름들

그런데 해방 60돌이 지난 오늘날까지 일제의 작명법을 이어받은 학교이름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제시대 방위작명법에 따라 탄생된 학교이름 말고도 해방 이후 똑같은 작명법으로 이름붙인 학교들이 줄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9월 20일 현재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5541개 가운데 7.6%나 되는 421개가 학교이름에 방위명이 들어가 있다. 중고등학교도 사정은 같다. 전체 중학교 2888개 가운데 172개(5.9%), 고등학교 2080개 가운데 77개(3.7%)가 그랬다.

이처럼 무작위로 방위명을 따오다보니 전국에 걸쳐 '중앙초등학교'란 똑같은 이름의 학교가 84개나 되었다. 물론 학교에 따라 앞에 지역 명을 붙이긴 했지만 중앙중학교와 중앙고등학교도 각각 34개, 36개였다.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같은 이름 딴 학교'가 전국에 걸쳐 154개에 이르는 셈이다. 전국 1만509개 초중등학교 이름 전체를 분석한 결과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모 연예인의 이름과 같은 '김제동' 초등학교가 생기기도 했다. 전북 김제에는 이 학교 말고도 김제북초등학교와 김제중앙초등학교가 더 있다.

인구 15만 중소형도시인 전북 정읍만 해도 동서남북 초등학교가 모두 있다. 정읍남, 정읍동, 정읍북, 정읍서초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동서남북 네쌍둥이 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인천부평과 제주도를 비롯해 전남 광양, 전북 익산(옛 지명 이리 포함), 경기 광명 등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북 익산지역 초등학교 이름은 눈길을 끌었다. 이 지역 전체 63개 초등학교 가운데 '이리'란 옛 지역명이 들어간 학교는 모두 25개. 이 가운데 방위명을 따온 것으로 보이는 학교가 자그마치 8개나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 동, 서, 남, 북, 중앙 초 등 '다섯 쌍둥이' 학교에 더해 이리동남초, 이리동북초가 있었다.

이에 대해 익산교육청 관계자는 "동남초와 동북초는 기존에 남초등학교와 북초등학교가 있으니 또 다른 방위를 갖다가 붙인 것으로 보인다"면서 "학교이름에 대해 지역민들의 항의도 없고 학교이름이 고유명사이고 해서 문제점은 별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섯 쌍둥이' 개명 성공했다

하지만 이같은 교육당국의 태도와 달리 일제잔재교명변경전국운동본부를 만든 오병선 전남 여수시의회 의원은 "일제잔재인 동서남북 초등학교를 부르기 좋은 아름다운 학교명으로 바꾸도록 하는 일은 기성세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 일제잔재를 없애기 위해 여천동초등학교를 시전초등학교로 97년 개명했다고 한다.
ⓒ 시전초 사이트
여수와 통합되기 전 옛 지명인 여천지역은 오 의원과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97년 방위명이 들어간 5개 초등학교의 이름을 새로 바꿨다. 여천동초를 시전초로, 여천남초를 소호초로, 여천북초를 무선초로, 여천서초를 도원초로, 여천중앙초를 쌍봉초로 개명한 것이다.

오 의원은 "지역민들이 방위표시가 들어간 학교이름이 일제잔재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학교동문이든 주민이든 너나없이 학교이름을 바꾸려고 나서게 되더라"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배우리 한국땅이름학회장도 "광복을 맞은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일본인들이 제멋대로 써먹은 방위학교명을 그대로 두거나, 이를 본 따 학교이름을 짓는 일은 겨레의 수치"라면서 "지금부터라도 지역의 역사와 우리말을 잘 살린 학교이름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이처럼 학교이름 작명을 놓고 일제잔재 논란과 함께 야동초, 대변초, 대마초 등 무성의하게 이름을 지은 사례가 많다는 지적에 따라 열린우리당 구논회 의원(교육상임위)은 오는 22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이에 대해 강력하게 따질 예정이라고 지난 20일 밝혔다.

덧붙이는 글 | 학교이름 관련 기사는 한 번 더 이어집니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