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절한 금자씨'의 포스터
ⓒ CJ엔터테인먼트
<친절한 금자씨> 만큼 개봉하기 훨씬 전부터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가 또 있을까. 이미 그 미모로 다른 배우들보다 몇 점은 더 얻고 들어가는 배우 이영애와 <올드보이>로 칸느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거듭난 박찬욱 감독과의 만남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심지어 개봉도 하기 전 TV시트콤 패러디까지 생겨난 <친절한 금자씨>니, 이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만하다. 거기다가 '복수 3부작'이라는 왠지 거창해 보이는 타이틀까지. <친절한 금자씨>는 그런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 지난 28일 화려하게 개봉했다.

<친절한 금자씨>는 단적으로 말해 <올드보이>보다 <복수는 나의 것>에 가까운 영화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올드보이>의 재미를 이끌었던 넘치는 에너지는 보이지 않는다. 어린이 유괴 사건의 범인이라는 쉽게 접근하기 힘든 과거를 가진 치명적인 미모의 소유자, 이금자는 염세적인 눈빛 속에 자신에게 그런 누명을 씌운 백 선생에 대한 강렬한 복수의 열망을 숨겨놓았다.

박 감독은 그런 이금자의 교도소 생활부터 자신의 전매특허인 '관객 불편하게 만들기'를 시작한다. <친절한 금자씨>는 지금까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여자 교도소의 일상을 생생하게 드러내면서 그녀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관객에게 묘한 불편함을 선사하는 박 감독, 그 특유의 연출기법은 여전하다. 물론 <올드보이>와 유사하지만, 이번의 불편함은 그 반응이 어떨지 쉽게 예측이 되지 않는다. 정곡을 찌르는 불편함과, 불편함을 넘은 불쾌함은 분명히 정체가 다른 느낌이기 때문이다(필자가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은 물론 불쾌함에 가까웠다).

한편으로 <친절한 금자씨>는 '나도 때로는 친절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친절하게' 내러이터를 동원해 이금자의 과거와 일거수 일투족을 설명한다. 물론 친절하지 않게. 오히려 내레이터의 등장은 관객에게 영화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빼앗을 소지가 있어 보였고, 촌스러운 다큐멘터리 분위기가 느껴진다.

▲ 개인적으로는 '여고생' 이영애가 가장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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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영애의 외모부터가 촌스럽지 않고, '복수'라는 테마도 촌스러움과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데 박 감독은 왜 그런 연출을 시도했을까? 게다가 신선한 재미를 줄 것만 같았던 '박찬욱 패밀리'의 깜짝 출연마저 오히려 <복수혈전>과 같은 묘한 어색함을 준다. 영화 곳곳에서 등장하는 키치적 의미를 담은 사물은 그 촌스러움을 가중시킨다.

그런 상황에서 관객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시공간의 뒤섞임이다. 이렇듯 뒤섞인 시공간은 가뜩이나 어렵게 느껴지던 <친절한 금자씨>와의 소통을 더욱 어렵게 하며, 산만하기까지 하다. <친절한 금자씨>를 볼 관객이라면 대부분 <올드보이>의 명쾌한 스토리 라인과 에너지 넘치던 화면을 기억하는 관객일텐데, <복수는 나의 것>에서의 냉랭한 분위기와 함께 이렇듯 뒤섞인 시공간의 역행, 그리고 논란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이는 클라이맥스는 그런 기대감을 품고 있던 관객들을 극도로 당황시킨다.

같은 분위기라도 <복수는 나의 것>은 일관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고, 시간 설정 역시 뚜렷했던 만큼 지루할 여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당황스러움은 감독의 전작을 기억하는 관객일수록 더욱 심할 것이다.

왜일까?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을 박 감독이 폼나게 과대 포장한 것일까? 아니면 필자를 포함한 그런 반응을 보인 관객들이 영화를 볼 줄 모르기 때문인 것일까? 이미 많은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느낀 것일 테지만, 필자는 개인적으로 영화는 일단 재미있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아무리 세상의 모든 철학을 얘기하고, 메시아처럼 아무도 얘기하지 않은 것을 얘기한다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사람들은 일단 외면하게 마련이다.

소위 말하는 평론가와 대중 사이의 괴리는 '재미'에 대한 그런 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눈여겨 볼 만한 것은 <친절한 금자씨>의 대중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데 반해, 평론가들은 만장일치의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기로 뚜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 인상적인 것을 발견했다면, 조연이고, 악역임에도 몸을 아끼지 않은 '백 선생' 역의 최민식일 것이다. 최민식은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할 정도로 광기 서린 연기를 보여줬다. 어느덧 그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현실에서 '백 선생' 역은 그의 은근한 연기 변신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열정적인 연기에서 알 파치노를 떠올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파치노처럼 연기변신이 쉽지 않은 한 가지 연기의 소유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던 것이 사실. 필자는 그가 알 파치노의 전철을 밟지 않는 전환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활발한 활동이 돋보이는, 왕년의 그녀 김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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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물량공세를 동원하는 대작들의 틈 속에서 통속적인 재미는 덜한 작가주의 영화는 그래도 지속적으로 개봉되어 왔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대부분 재미가 있건 없건 간에 일단 2주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간판을 내리는 것이 현실이 되었다.

점점 사는 것이 힘든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사람들은 영화에서까지 현실의 부조리를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며, 작가주의 영화라면 일단 재미는 떨어질 것이라는 선입견도 한몫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의 미국에서 <록키>가 대대적인 흥행에 성공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대체로 베트남 전쟁 등의 사회 고발에 치중하던 당시의 할리우드의 풍토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화끈하게 날려주며, 거기다가 덤으로 아메리칸 드림까지 잊지 않은 <록키>에서 신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흔히 '80억대 작가주의 영화'라는 이야기까지 듣는 <남극일기>가 흥행에서 참패한 이유 역시 그 영화를 통해 초여름의 더위를 날리는 통쾌함을 맛보고 싶었던 대부분의 관객 앞에서 진부한 메시지를 통해 관객을 훈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훈계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런 훈계가 통할 수 있는 영화감독이라면 필자는 사회와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며, 조용히 현실을 비추는 임순례 감독 정도라고 생각된다.

그런 현실에서 많은 홍보물량과 배우들의 유명세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친절한 금자씨>의 진부하지는 않지만, 어려운 소통방법은 절반의 관객에게는 충분히 실망을 안겨줄 듯하다. 필자가 누누히 강조하는 것이지만, 관객들의 수준은 감독이나 평론가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높다. 그만큼 영화감독이 쉽게 영화를 연출해서는 안 되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재미와 메시지를 동시에 갖춘다는 것,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충무로에서도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영화감독들이 정말 '감독 노릇' 하기 힘든 현실이 된 것이다. 그것은 이제 대한민국 대표감독으로 상징된다는 박 감독에게도 엄연한 현실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브레이크뉴스에도 송고합니다.

2005-07-29 11:39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브레이크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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