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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폭포를 구경하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상팔담입니다. 하지만 상팔담은 눈이 많이 쌓여 등산이 통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상팔담이 무대가 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떠올리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 구룡폭포에서 내려오다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올라가면 구룡대에 이르고, 구룡대에서 상팔담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 백유선

'금강산 전설'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생각할 것입니다. 금강산의 많은 설화 가운데에서 가장 국민적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첫날 차를 타고 오면서 학생들에게 금강산에 대해 말하면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요즈음 학생들은 '나무꾼과 선녀'라고 하지 않고, '선녀와 나무꾼'이라며 선녀를 먼저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노래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레이디 퍼스트'처럼 여성에 대한 배려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 표현법에서 세월의 변화를 읽을 수 있습니다.

또 학생들에게 나무꾼의 정확한 표기법에 대해 물어 보았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은 '나뭇군'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제넘은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우리말 표기법에서 '사이시옷'의 활용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워드프로세서가 맞춤법의 오류를 잡아주는 기능이 있어서 고쳐주고 있다는 것이겠죠.

▲ 상팔담 가는 방향의 계곡
ⓒ 백유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줄거리를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나무꾼이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숨겨 주었더니, 사슴은 은혜의 보답으로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목욕하는 곳을 일러 주며,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고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 보여 주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사슴이 일러 준 대로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었더니, 목욕이 끝난 다른 선녀들은 모두 하늘로 날아 돌아갔으나 날개옷을 잃은 한 선녀만은 가지 못하게 되어, 나무꾼은 그 선녀를 데려다 아내로 삼게 됩니다.

아이를 둘까지 낳고 살던 어느 날, 나무꾼이 선녀에게 날개옷을 보이자 선녀는 입어 보는 체하다가 그대로 아이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 버립니다.

어느 날 사슴이 다시 나타나 나무꾼에게 하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릴 터이니 그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일러 줍니다.

사슴이 일러준 대로 두레박을 타고 하늘에 올라간 나무꾼은 아내와 자식을 만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대체로 이 부분까지가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의 결말입니다. 예전에 초등학교에서 이렇게 배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네요.

그러나 이 설화는 마지막 부분이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두레박줄을 선녀 아내가 끊어 버렸다고도 하고, 하늘나라에서 여러 시험을 거쳐 잘 살았다고도 하며, 또는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견우와 직녀가 되었다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금강산온천 앞에 있는 나무꾼과 선녀를 그린 사진 촬영용 기념물. 선녀가 나이 지긋한 아저씨처럼 목에 수건을 감고 목욕하는 모습입니다.
ⓒ 백유선

결말이 다른 두 가지 '나무꾼과 선녀'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두 가지만 살펴보도록 합니다. 모두 위의 내용에서 이야기가 마무리 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하늘나라에서 나무꾼은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으나 지상의 어머니가 그리워져서 아내의 주선으로 용마를 타고 내려오는데, 이 때 아내는 남편에게 절대로 용마에서 내리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지상의 어머니가 아들이 좋아하는 호박죽(또는 팥죽)을 쑤어 먹입니다. 그러나 뜨거운 죽을 말 등에 흘리는 바람에 용마는 놀라서 나무꾼을 땅에 떨어뜨린 채 그대로 하늘로 올라갑니다.

지상에 떨어져 홀로 남은 나무꾼은 날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슬퍼하다가 죽었습니다. 그리고는 수탉이 되어 지금도 새벽이면 지붕 위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며 운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좀 슬픈 결론입니다. 매일 새벽 지붕에 올라 하늘을 보며 우는 수탉이 되었으니까요.

또 하나, 주로 금강산에 전해지는 설화의 결말은 이 이야기와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하는 일 없이 행복하게 살던 나무꾼은 시간 가는 줄 몰랐으나, 부지런히 일하며 살던 때가 생각나 이내 싫증이 납니다.

하늘나라가 아름답다고는 하나 구름이나 별의 변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금강산처럼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신록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고, 백설이 덮이는 아름다움은 없었던 것이죠. 더구나 산과 계곡, 구름과 안개, 바람이 일으키는 조화로 인한 아름다움은 없었습니다.

자기가 살던 금강산을 그리워하게 되죠. 아내 역시 몇 년 동안 살던 금강산이 그리워집니다. 결국은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온 가족이 금강산으로 내려옵니다. 그 후 그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부지런히 일하면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행복하게 살았다'로 결말지어지네요. 아무래도 비극적인 결말보다는 듣고 나면 훨씬 편안한 느낌이 듭니다.

▲ 겨울 금강산
ⓒ 백유선

금강산은 하늘나라보다도 아름답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또 이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답변은 "여자는 로또복권이다"라고 하는 해석이었습니다. 무지렁이 나무꾼이 아름다운 선녀를 아내로 맞이했으니 이는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결말에 수탉이 되어 울게 되는 것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석했습니다. "로또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해서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럴 듯한 비유가 아닌가 합니다. 어쨌든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기묘한 결론을 내는 것을 보고 한동안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설화에서 사슴이 나무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흥부와 놀부 이야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비가 흥부에게 보답한 것은 박씨에 불과했지만 사실은 금은보화를 주었지요. 직접 물질로 보답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 설화에서 사슴은 나무꾼에게 다름 아닌 '정보'를 줍니다. '선녀가 목욕하는 장소', '아내로 맞이하는 방법' 등 나무꾼에게는 모두 중요한 정보입니다. 나중에 '두레박'에 대한 정보도 마찬가지이고요.

▲ 겨울 금강산
ⓒ 백유선
금강산에 살면서도 나무꾼은 선녀의 목욕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아마 평생을 혼자 살았을 것입니다. 나무꾼은 그 정보를 얻었기에 인생 역전을 겪게 되는 것이죠.

요즈음 같은 정보화 시대에 어떤 분야에서든 정보의 중요성은 거듭 강조하지 않아도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는 바로 정보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설화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요즘 같으면 사슴은 개인정보 유출로 처벌을 받겠지요.

두 번째로는 약속의 중요성을 생각해 봅니다. 사슴이 아이 셋 낳을 때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건만 안일해진 나무꾼은 그걸 지키지 못했고, 결국 선녀가 떠나가게 되죠. 물론 약속이라기보다는 여느 설화에서나 보이는 금기 사항입니다.

단군신화에서도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견뎌야 한다'는 금기 사항이 있었죠. 이를 지킨 곰만이 사람이 되잖아요? 요즈음에는 금기라 할 만한 것이 따로 없으니 약속으로 해석해 봅니다. 물론 이런 설화적 교훈이 아니더라도 약속은 잘 지켜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선녀의 매몰찬 성격을 봅니다. 비록 하늘나라의 부모 형제가 그리웠다고는 하나, 남편을 버리고 떠나는 대목에서는 비정함을 느낍니다. 두 자식을 아버지와 떼어놓는다고 생각하면 그 비정함은 더합니다. 이 대목에서 처음에 로또복권으로 풀이했던 분은 한마디 더 덧붙였습니다. '여자를 믿지 마라'.

나무꾼이 어머니를 그리워하여 다시 내려오는 대목에서는 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사상을 봅니다. 여기에서 설화 속 남자와 여자의 다른 점이 보입니다. 여자는 남편을 버리고 떠나갔지만, 남자는 잠깐 내려와 어머니를 만나보려고 했던 점이죠. 설화 속 나무꾼은 가족을 버릴 만큼 매몰차지 못합니다.

▲ 겨울 금강산
ⓒ 백유선

그러나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의 핵심은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선녀가 내려와 목욕할 정도로, 또 하늘나라에서 살다가 다시 내려올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 금강산이라는 결론입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이야기가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짜임새도 있어 보이고요.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어떤 다른 비유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하늘나라보다도 경치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으니, 금강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설화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 겨울 금강산
ⓒ 백유선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 초 2박 3일 금강산 기행기 열한 번째입니다.

이 내용은 글쓴이의 홈페이지('백유선의 고구려 유적답사기', http://noza.pe.k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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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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