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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드디어 본격적인 금강산 구경이 시작되었습니다. 금강산의 관광은 숙소에 관계없이 매일 아침 온정각 앞에 모여 출발합니다. 현재 허용된 금강산 관광코스는 크게 셋으로, 구룡연코스, 만물상 코스, 해금강코스로 나뉩니다.

아침 8시 온정각에 모여 코스별로 차량에 승차한 후, 각 코스의 출발점까지 차로 이동하여 개인 관광에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각 차별로 현대 측 조장이 승차하여 가는 도중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안내를 해주지만, 일단 주차장에 내리고 나면 각자 알아서 구경하는 형식이었습니다.

▲ 금강산 관광코스. 빨간색은 구룡연코스, 파란색은 만물상코스, 보라색은 해금강코스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코스를 개발하기위해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 백유선
이 날의 일정은 오전에 구룡연 코스를 등산하고, 오후에는 교예 관람과 통일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구룡연 코스는 주차장을 출발, 앙지대, 금강문, 옥류동, 비봉폭포, 구룡폭포, 그리고 구룡대에 올라 상팔담을 구경하고 내려와서, 다시 차를 타고 신계사를 구경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개인적인 산행이기 때문에 등산 중에 물어서 살펴보지 않으면 여러 사연이 깃든 곳을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물론 아주 유명한 곳에는 북한 안내원이 배치되어 설명을 해주고 있으나, 계속되는 관광객을 맞이하다 보니 그들의 설명도 간단할 수밖에 없어 다소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눈 덮인 겨울 금강산

구룡연 코스는 외금강의 계곡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기에 큰 기대와 함께 산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겨울산을 그다지 접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금강산의 겨울 풍경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눈에 덮인 계곡도 그렇고, 온통 하얀색의 세상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바위들, 여전히 푸름을 잃지 않은 소나무들이 만들어낸 조화는 '이곳이 바로 금강산이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였습니다.

옛 유람객들은 아마 이런 겨울 풍경을 거의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가마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 눈이 쌓인 겨울에는 가보기도 어렵고, 산에 오르기도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띄는 풍경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 두기 위해 셔터를 누르다 보니 아무래도 등산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을 들여 렌즈에 담기는 했으나, 그 느낌을 그대로 담기가 어렵다는 것을 나중에 사진을 보고나서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라 하는데 눈에 덮인 흑백 세상을 담기에는 제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죠.

아프리카에서 금강산 구경 온 동물

출발지를 지나 조금가면 북한 측 식당인 목란관에 도착을 합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이곳의 경치를 담은 아름다운 사진을 보아왔던 터라, 멀리 보이는 봉우리를 담아 사진을 찍는 것으로 본격적인 구경을 시작했습니다.

▲ 북한 식당인 목란관. 등산 시작 후 처음 만나는 경치 좋은 곳입니다. 이 식당은 온정각에서 식권을 구입해 오면 내려오는 길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 백유선
눈 덮인 계곡 길을 따라 한참 가다보면 첫 명승지인 앙지대가 나타납니다. 북측 남성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방이 모두 봉우리에 둘러싸여 있어 이곳에서는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다 하여, '우러를 앙(仰)'자를 써서 앙지대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멀리 봉우리들이 보이는 탁 트인 계곡을 걷다 이곳에 오면 꽉 막힌 느낌이 듭니다.

▲ 사방이 막혀 하늘만 보인다는 앙지대. 북측 안내원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 백유선
앙지대는 이곳의 넓은 바위를 가리키는 말인데 흰 눈에 덮여 있어 그 모습을 가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또 '앙지대'라는 글씨가 있다고 하나 그 역시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 표지판에는 회상대라고도 쓰여 있었는데, 1973년 이곳에 온 김일성 주석이, 1947년 첫 부인이자 동지였던 김정숙과 함께 왔던 것을 회상했다고 하여 그렇게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북한 안내원은 앙지대 앞의 바위는 멀리에서 금강산을 찾아 구경 온 동물들의 모양을 하고 있다며, 코끼리, 거북이, 도마뱀 등의 동물들을 찾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들은 금강산의 절경을 구경하기 위해 비로봉을 향하다가, 모두 앙지대에서 만나 이곳의 경치에 취해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 앙지대 앞 절벽의 도마뱀. 맨 위쪽에 작은 도마뱀이 보입니다. 입을 벌린 악어로 보기도 합니다.
ⓒ 백유선

▲ 앙지대 앞 절벽의 거북이. 가운데 부분에 거북이 한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 백유선
"얼마나 아름다우면 아프리카 동물인 코끼리까지 구경을 왔겠느냐"며 "여기 온 사람들은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는 북한 안내원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들렸습니다. '아프리카 동물'을 강조하는 그의 표정은 다소 딱딱해 보이지만 말투나 내용은 재미있었습니다. 어느 곳에나 그렇듯 아마 설명이 없었다면 동물들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설명을 듣고 바위를 보면 정말 비슷해서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 앙지대앞 절벽의 코끼리바위. 계곡의 물을 마시기 위해 코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 백유선
그러나 그는 매우 바빴습니다. 한꺼번에 수많은 관광객이 동시에 등산을 시작하기 때문에 계속 밀려오는 관광객들에게 계속 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짧은 내용만을 반복하고 있었고 자기가 이미 말한 내용을 질문을 할 때에는 귀찮은 듯 답을 회피하기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계속되는 등산 길 주변 봉우리는 온통 바위뿐이어서 개골산의 진가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바위틈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푸른 소나무는 꿋꿋한 절개와 지조를 보여줍니다.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 우리 민족의 표상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떤 역경도 헤쳐 가며 수천 년의 역사를 유지해온 우리 민족의 기상을 이곳 금강산의 소나무에서 느꼈습니다.

▲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에서는 우리 민족의 기상이 느껴집니다.
ⓒ 백유선


산삼 녹용이 흐르는 물

앙지대를 지나 조금 가다보면 개구리바위가 있다는 내용을 책에서 보았기 때문에, 찾아보려 하였으나 어느 것인지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 한 마리가 금강산이 아름답다는 까마귀의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와 구경하다 그 아름다움에 취해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고 합니다. 앙지대에서 본 동물바위들도 그랬던 것처럼 이름을 가진 금강산의 바위는,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그대로 굳어 바위가 되었다는 비슷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우연히 '삼록수'라고 쓰여 있는 바위를 발견했습니다. 내용에는 그 골짜기의 물이 '산삼과 녹용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라고 하여 김일성 주석이 삼록수라 이름 붙였다고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한번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모두 얼어 있었기 때문에 구경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렸을 때 산골의 맑은 물을 보면 '산삼이 녹아 있는 물'이라며 그냥 마시곤 했던 생각이 났습니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요즈음에는 그런 계곡 물을 보기가 쉽지 않지만, 이곳 금강산의 물은 맑고 깨끗함을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왼쪽 바위에 김일성 주석이 삼록수라 이름 붙였다고 하는 내용의 빨간 글씨가 보입니다.
ⓒ 백유선

▲ 삼록수는 모두 얼어있어서 맑은 물을 볼 수 없었습니다.
ⓒ 백유선
삼록수 바로 위에는 만경다리라는 철제 다리가 있습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바위 위에 걸쳐 있는 이 다리는 자세히 살펴보니 만경다리라고 쓰여 있었고 그것을 만든 제련소의 이름도 새겨져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인 구룡폭포까지는 여러 개의 다리를 지났는데 모두 이와 비슷한 철제 다리 아니면 흔들다리였습니다.

▲ 만경다리. 이곳에 서면 탁 트인 계곡의 경치를 볼 수 있습니다.
ⓒ 백유선
이 다리를 지나서도 전설이 서려 있는 토끼바위, 옥황상제 바위, 자라바위 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갔으나 모두 찾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눈에 들어오는 기암괴석들을 볼 때마다 "저건 무슨 바위지, 또 저거는"하고 생각해 보지만 이름이 알려진 바위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나치고 말게 됩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여러 사연 있는 이야기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더구나 장소에 따라 변하는 경치에 취해있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절경이다 보니 일일이 찾아 살펴보기가 어려운 것이죠. 잘 아는 안내원과 동행해야 제대로 된 금강산 구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유적지에는 대부분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배치되어 안내를 해줍니다. 미리 준비를 해서 답사를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재미있고 새로운 사실을 많이 듣게 됩니다. 이곳에 와서 새삼 그분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2월초 2박 3일 동안의 금강산 기행기의 여덟 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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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콘서트>, <청소년을 위한 한국사>(공저), <우리 불교 문화유산 읽기>, <한번만 읽으면 확 잡히는 국사>(상,하)의 저자로 중학교 국사 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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