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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학문의 주체성은 가능한가? 이런 물음에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것이다.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토론회에 말이다. 1월 29일,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와 참여사회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 장장 5시간에 걸친 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장은주 영산대 교수와 철학자 김상봉(민예총 문예아카데이 교장) 간의 그간 논쟁을 좀 더 깊이 들어가 보고자 마련된 것이다.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의 <나르시스의 꿈 :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한 연습>(한길사, 2002)에 대한 서평(교수신문328호)을 썼고, 김상봉 교장은 반론(교수신문329호)을 제기했다. 이후 논쟁은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 진행됐다.

논쟁의 핵심은 이렇다. 김상봉 교장은 <나르시스의 꿈>에서 서양정신이 나르시시즘적이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고 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상실의 경험을 한 슬픔의 해석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우리’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은주 교수는 그러한 ‘우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히려 김상봉 교장의 시도는 이미 서양철학에 있었다고 비판한다.(교수신문에서 진행된 논쟁에 대해서는 이 글의 맨 아래 정리된 것을 참조하시길.)

▲ 토론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고 있는 김상봉 교장(왼쪽)
ⓒ 김재호
김상봉 교장은 이번 토론회를 위해서 62쪽 분량의 새로운 글을 선보였다. 제1부-서양적 주체성의 탐구, 제2부-서로주체성의 이념으로 구성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론을 좀 더 발전시켰다. 제1부에서 김상봉 교장은 나르시시즘의 역사에 대해서 꼼꼼히 정리한다. 제2부에서는 서양정신 극복을 위해서 다른 주체성, 다른 보편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서양에서 자행된 자기 복제로서의 타자인식과 만남이 아니라, 다른 정신세계의 주체와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 제3세계의 만남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영어의 ‘meeting'이나 독일어의 ‘Begegnung’은 말자체가 건조하지만, 우리말의 ‘만남’은 풍부한 울림이 있다는 것이다.

김상봉 교장의 시도에 대해 여러 논평이 오고 갔다. 충북대 정세근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지적은 한국철학에 대한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은주 교수는 철학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한다. 탈오리엔탈리즘도 극복하는 ‘우리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김상봉 교장의 서양정신 분석은 오히려 서양적이라고 일갈한다.

성균관대학교 김세서리아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이 대안으로 내놓은 서로주체성을 이루기 위한 전제로서 먼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자고 한다. 그녀는 차이와 차이-사이의 철학을 강조하면서 한국사회의 여성에 대해서 주목한다. 유교적 여성주의가 아닌, “유교적” 여성주의를 내세우면서 우리를 먼저 확실히 알자고 했다. 전남대학교 박구용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시도는 ‘우리의 철학’이고, 장은주 교수의 지향점은 ‘모두의 철학자’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 둘의 화해가능성으로서 ‘우리 안의 타자’철학을 제시한다. ‘우리 밖의 타자’는 투쟁의 상대로 인정되기 때문에 타자로서의 존재 자체를 의심받지 못한다. 따라서 타자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진정한 타자를 주목하기 위해서 ‘우리 안의 타자’를 내세우고 있다.

마지막으로 숭실대 김선욱 논평자는 김상봉 교장의 작업이 “주체성과 자유의 개념에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열어 놓았다.”면서 앞으로 더 정밀한 작업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서로주체성이라는 발견이 과연 한국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고, 타자가 진정으로 타자성을 발현한다면, 즉 낯선 타자가 식인종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적절한 대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회자인 홍윤기 교수(동국대 철학과)는 자칫 어려울 수 있었던 토론회를 잘 정리해주었고 특유의 입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하지만 너무 많은 논평자들로 인해서 김상봉 교장과 장은주 교수의 논쟁이 더욱 진전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청중들의 생각을 들어볼 여유가 없었던 점도 옥의 티였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학문을 해야 할 것인가? 나아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서양정신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들을 현시점에서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김상봉 교장의 노력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고 있는 ‘서로주체성’이라는 개념이 서양철학의 개념들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 지는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가 서양정신의 극복을 위해서 제시한 제3세계의 ‘만남’이라는 것은 오히려 서양으로부터 가능한지도 모른다. 김상봉 교장이 교수신문 333호에서 지적했듯이. “타자와의 만남에 서툰 것은 서양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이기 때문이다. 상실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지금은 서툴지만 앞으로 진정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가? 그가 경도되었던 것처럼 서양정신의 숭고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좇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본다.

서양정신은 과연 나르시시즘에 빠졌는가?
교수신문에서 진행된 장은주 교수와 김상봉 교수간의 논쟁

장은주 교수 : ‘우리’도 ‘서양’도 초월해야

장은주 교수는 서평에서 <나르시스의 꿈>에 대해 세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첫째, <나르시스의 꿈>이 서양 철학의 근본을 통쾌하게 비판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열광을 볼 때 김상봉 교장이 제시하는 ‘우리’ 철학의 가능성이 도리어 우리를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니냐는 문제를 던진다. 둘째, 김상봉 교장의 서양 주체 철학 비판이 “나름의 탁월한 통찰”이긴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헤겔이나 칸트 또한 김상봉 교장이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을 각각 ‘총체적 인륜성’과 ‘도덕적 보편주의’에 담아내려 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셋째, 중요한 문제는 “서로주체성의 올바른 방식”과 “자유의 올바른 실현”인데, 그것이 “왜 꼭 서양이 아닌 ‘우리’의 성취로만 완수될 수 있느냐”며 “그 과제의 완수를 위해서는 우리는 ‘서양’도 ‘우리’도 진정으로 초월할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한다.

김상봉 교장 : 우리는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없어

장은주 교수의 물음에 대해 김상봉 교장이 답하면서 본격적으로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김상봉 교장은 반론을 통해 우선 장은주 교수가 “우리의 나르시시즘”이라고 지적한 것에 동의하긴 하지만, 자신의 저서에서 쓰인 ‘나르시시즘’은 “오직 서양 정신에게만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라며 개념 정립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어서 김상봉 교장은, 자기 상실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는 서양인처럼 자신을 비추어 볼 ‘거울’이 없으며 따라서 “나르시스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또한 김상봉 교장은 장은주 교수가 제기한 두 번째 문제에 대해 “헤겔에겐 그가 사유했던 고유한 역사가 있었다.”며 자신의 서로주체성은 헤겔이 말하고자 했던 것과 같을 수 없다고 반론한다.

그러나 김상봉 교장은 이번 반론을 통해 장은주 교수의 세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교수신문 330호)을 통해 세 번째 물음을 더욱 구체적으로 묻는다.

장은주 교수 : 우리는 미래를 위한 설계이자 세계 시민이어야

장은주 교수의 물음은 김상봉 교장이 이야기하는 ‘우리’란 무엇이며, 그 ‘우리’가 서양 정신에서의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로 압축된다. 장은주 교수는 여기에서 김상봉 교장의 ‘우리’는 자기 상실의 역사를 경험한 ‘우리’로 제한되면서, “그 자체로 역동화되고 주체화될 수 있는 실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이 이야기하고 있는 ‘우리’가 ‘우리 민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냐고 간접적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장은주 교수는 “우리는 어떤 규정된 과거의 산물이거나 현재의 진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설계”이며 “세계 시민”이어야 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김상봉 교장 : 서양 정신은 정신의 타자는 알아도 타자적 정신은 몰라

이어진 반론(교수신문 331호)에서 김상봉 교장은 새로운 논쟁점을 던진다. 김상봉 교장은 “민족이 서로주체성의 최종적 완성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민족 역시 “타민족과의 만남 속에서 편협한 자기동일성을 지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다. 김상봉 교장은 곧이어 서양 정신이 “정신의 타자는 알아도 타자적 정신은 알지 못한다”며 서양 정신의 한계를 다시금 지적한다.

즉, 헤겔에서 레비나스까지 서양철학자들이 서양 정신 또는 서구 사회 내에 존재하는 타자의 문제는 고민했지만, 서양 정신 밖에 존재하는 다른 정신세계와 충돌해 빚어지는 문제에는 아무런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은주 교수 : 서양 정신도 편협함을 인정하고 반성과 성찰의 노력 기울이고 있어

장은주 교수는 다시 반론(교수신문 332호)을 펼친다. 장은주 교수는 ‘우리’에 대한 김상봉 교장의 주장에 상당한 공감을 표현하면서, 또한 동시에 ‘우리’만 ‘우리의 사유’를 할 수 있다는 김상봉 교장의 주장에는 다시금 물음표를 던진다. 이어서 장은주 교수는 김상봉 교장이 주장하는, 우리가 자기 상실의 역사를 경험한 덕택(?)에 “세계사적 물음에 대해 진지하게 대면하고 먼저 사유할 수 있는 인식론적 특권을 누린 위치에 있다”는 문제 설정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또한 장은주 교수는 하버마스와 데리다를 예로 들며, 서양 정신의 편협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반성적으로 성찰하려는 노력들이 “‘새로운 유럽’에 대한 철저히 서양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신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장은주 교수는 중요한 것은 “서양이냐 우리냐”가 아니라 우리가 동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지, 또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김상봉 교장 : 서양 철학은 주체성의 역설을 감당할 수 없어

이에 대해 김상봉 교장은 논쟁의 계기가 된 자신의 저서 <나르시스의 꿈>에서 “서양 철학의 유산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며, 자신은 “서양적 주체성과 자유의 이념을 원칙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김상봉 교장은, 데리다 역시 열린 유럽을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 방법은 다시 서양 정신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고 강조한다.

덧붙여, “진정한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의 주체성을 타자에게 양도할 수 있어야”하는데 “주체성을 보존하면서도 동시에 주체성을 지양해야”하는 역설을 서양 철학은 스스로 풀어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역설을 몸으로 살아온” 우리야말로 타자와의 진정한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긍정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김상봉 교장은 주장한다.(교수신문 333호)

장은주 교수 : '문제 해결적 합리성' 필요해

두 철학자의 논쟁은 교수신문 334호까지도 계속된다. 장은주 교수는 앞서의 반론으로 김상봉 교장이 지나친 방식으로 데리다를 비판하고 있다며, “기대하지도 초대하지도 않은 완전히 낯선 방문자에게도 스스로를 열어젖히자는 데리다의 ‘환대’ 개념”은 “적어도 규범적으로는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장은주 교수는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에 대한 철학적 통찰”이 “‘우리’에게만 유보되어 있는 것”인지 다시 묻는다.

그리고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철학의 출발점을 새로 설정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한다. 더 나아가 장은주 교수는, ‘우리’라는 것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체’인 만큼 우리와 서양을 구별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 해결에 제대로 기여하는 학문만이 좋은 학문이고 진짜 가치 있는 ‘우리’의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문제 해결적 합리성”이란 개념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이로써 신문 지면을 빌린 두 철학자의 대화는 끝이 났다. 서평을 통한 문제 제기에서 마지막 반론까지 일곱 편의 글이 교수 신문에 게재됐다. 일곱 편의 글 속에서 ‘우리’와 ‘서양 정신의 극복’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엔 무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두 철학자의 대화는 주위의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지면 바깥으로까지 이야기를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 결과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기획됐고, 두 철학자는 이 자리를 통해 지면으로 미처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를 얻었다. / 이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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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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