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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봉 교수의 문제적 저서 <나르시스의 꿈>을 두고 교수신문에서 벌어진 김상봉 교수와 장은주 교수의 '1차전' 논쟁에 이어 '2차전'이 벌어졌다.
ⓒ 서상일
수준 높은 토론이 벌어졌다. 민예총 문예아카데미와 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의 공동기획으로 지난 1월 29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 '나르시스의 꿈을 넘어서 - 탈식민주의와 시민적 주체성의 진보(이하 나르시스의 꿈)' 토론회가 그것이다.

'나르시스의 꿈' 토론회는 학문의 주체성과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을 모색하는 의미 있는 토론회였다. 그 의미만큼이나 이날 토론자들은 서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그럼에도 겸손함을 잃지 않은 자세로 수준 있는 토론회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수준과 의미만큼이나 이날 토론회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청중들이 몰려 주최측을 당황케 했다. 120여명의 청중이 몰리는 바람에 좁은 장소에 급하게 의자를 마련하느라 진땀을 뺐기 때문이다. 결국 토론회는 예정 시각인 3시를 10분 넘겨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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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진검승부 벌인다

홀로주체성의 정신적 지향은 제국주의라는 현실적 결과 낳아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나르시스의 꿈>의 저자 김상봉 교수는 이날의 토론을 위해 원고지 600매 정도 분량의 발제를 새로 준비했다. 이전의 <나르시스의 꿈>에서 미처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이 꽤 있었으며, 더 진전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김상봉 교수는 "서양철학은 아직도 서양철학의 지역성을 명확히 자각하지 못한 철학"이라고 비판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서양철학은 "철학이 시대의 아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기는 했으나, 자기들의 철학이 어쩔 수 없이 자기들의 역사와 언어에 의해 제약된 철학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였다"는 비판이었다.

이어서 김 교수는 서양정신 전체를 "이제나 저제나 자기만을 욕구하는 아집, 아무리 형태가 바뀌어도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는 집요한 홀로주체성, 그것이 서양 정신의 본질"이라고 규정한다.

김 교수는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서양정신의 본질이 그런 한 타자를 배제할 수밖에 없고, 타자를 노예화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정신적 지향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적 결과를 낳게" 되는 바, 그 '현실태'가 바로 북미대륙에서의 원주민 집단 학살과 제국주의라고 말한다.

바로 "그리스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반복되어 온 제국주의의 역사는 그리스에서 태동한 서구적 자유의 이념의 현실태"로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서양정신의 '홀로주체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비판이다.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은 서양정신의 역사적 발전 단계에 대한 은유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그 정당성은 인정하더라도 서양정신에 대한 '무모한 일반화'라는 비판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김 교수는 서구 철학 전체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일관되게 꿰뚫는 통찰'(一以貫之)을 바탕으로 발제문 속에 '나르시즘의 역사'라는 원고를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서양정신에 대한 은유인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은 네가지 단계로 구분된다. 첫째, 나르시스가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대상(세계) 인식에 탐닉하는 단계. 둘째,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자신의 모습에 매혹되는 단계, 즉 나르시즘의 내면화 단계. 셋째,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단계, 즉 나르시즘의 완성과 죽음 단계. 넷째, 지하 세계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강물 위에 비추어 보는 단계이다.

김 교수는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의 네 단계에 대해 "서양 정신이 거쳐 온 역사적 발전 단계에 대한 은유"라고 말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구체적으로 그리스 철학과 중세 철학, 근대 철학, 현대 철학에 대해 분석하며 나르시스의 삶과 죽음의 네 단계와 결부시킨 해석을 보여주었다.

▲ (좌)김상봉 교수가 발제를 하는 동안, (우)한 청중이 열심히 메모를 하고 있다.
ⓒ 서상일
몇몇 서양철학자들의 초보적인 시도가 서양철학의 물길 바꾸지 않아

김 교수가 '타자와 만날 수 없는 정신'이라고 규정한 서양이 최근 타자와의 만남을 위한 철학적 시도를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철학자 레비나스와 데리다를 들 수 있다. 그래서 그간 논쟁에서 이 두 서양 철학자는 서양정신이 김 교수가 지적한 것만큼 '지독하게' 자기동일성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비판의 사례로 거론되곤 했다.

김 교수도 이 두 철학자의 사례에 대해 "오늘날 서양 철학은 아주 조금씩 만남에 대해 말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고 그 의미를 평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만남에 관해서 볼 때 서양철학은 이제 걸음마를 시작했을 뿐"이라며, "몇몇 철학자들의 초보적인 시도가 서양철학의 물길을 하루 아침에 만남의 철학으로 바꿀 수 있다는 듯이 과장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철학이 역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며 "서양 철학이 만남에 대해 사유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서양 철학이 타자적 정신과 실제로 만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서로주체성의 변증법은 자기의 확대가 아닌 만남의 확장

김 교수는 이렇게 서양정신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을 제시했다.

그것이 바로 김 교수가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인데, 이는 자기동일성을 고집하며 끊임없는 자기확대의 과정을 밟는 '홀로주체성'과 달리, 자기 상실로 인한 아픔과 부끄러움으로 타자를 '잉태'할 수 있는 주체성이다. 이러한 서로주체성이야말로 진정한 '타자와의 만남'이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서로주체성의 변증법'은 서양정신처럼 자기의 확대가 아닌 만남의 확장을 지향하며, 이때 주체성은 만남을 통해 자기를 버릴 줄 알고 더 넓은 주체성으로 발돔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로서 우리는 새로운 시민적 주체성으로 새로운 개념의 자유로 진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선욱, 박구용, 김상봉, 장은주, 정세근, 김세서리아 교수.
ⓒ 서상일
토론자들, 김 교수의 성과 인정하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해

김상봉 교수의 1시간에 가까운 발제가 끝나고, 토론자로 참석한 정세근(충북대) 교수는 "그리스 정신이 유일신을 받아들이는 데, 단절감이 없었다는 (김상봉 교수의) 해석에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며 서양 중세철학에 대한 해석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우리가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출발점이 아니라 충분하지 않은 성과"라며 '우리의 철학'을 하자는 형식은 마련한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했으나 아직 구체적 내용은 부족하다며 더 분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1차전의 주인공'인 장은주(영산대) 교수는 김상봉 교수의 작업에 대해 우리가 역사를 통해 시도해 왔던 '동도서기'와 달리 "서도(西道, 서양정신)를 통한 서도의 극복"으로 볼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조심스런 평가를 시도했다.

즉 "서도 그 자체의 관점에서 서도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서도의 내재적 초월을 위한 시도", 또는 "서도의 가장 훌륭한 아우라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아니 그 아우라의 광채에 감탄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한계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으로 평가를 시도했다.

그러나 김 교수의 서양정신에 대한 통렬한 비판에 대해서는 "사회가 변했다"며 다른 견해를 보여주었다. 즉, 김 교수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서양정신은 "서양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버린 낡은 유산"이라는 것이다. 이날 사회자인 홍윤기(동국대) 교수의 말대로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를 범했다는 지적이었다.

적절한 첫걸음 딛었으나, 개념을 가다듬고 그 안의 인식 더 치밀히 해야

이어 "유교적" 여성주의를 말하는 김세서리아(성균관대) 교수는 김 교수가 제시한 서로주체성에 알찬 내용을 채우기 위해 '차이-사이의 철학'을 검토해 볼 것을 제안했다. 즉,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면서 동시에 '나'가 아닌 '너' 또는 '그들'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면서 너와 또는 그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라며, "이것을 터득하는 것이 나르시스의 꿈을 넘는 요령"이 될 것이라고 발전적인 제안을 했다.

다음으로 "대한민국에서 김상봉 교수의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으로 자부한다"는 박구용(전남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박 교수는 김 교수가 제시하는 서로주체성이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 "'우리'라는 이름으로 동화되기를 강요하는 억압에 부단히 저항하고 '우리'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사회적 연대성의 원천인 '우리 안에서 타자'의 자리를 지키는 철학이 되어야 한다"고 발전적인 제안을 했다.

박 교수는 이미 <우리 안의 타자>(철학과 현실사, 2003년 12월 출간)라는 책에서 김 교수의 작업에 관심을 갖고 비판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김선욱(숭실대) 교수는 김상봉 교수의 작업에 대해 "자유와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억압적 구조의 본질을 정확하게 드러낸다"며 그 중요성을 평가했다. 나아가 "여기에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부버의 사상을 더하고 또 한국인으로서의 경험이 융해되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놓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체성과 자유의 개념에 새로운 이념적 지평을 열어 놓은데, 이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적절한 첫걸음을 옮겨 놓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김상봉 교수의 서양정신에 대한 비판이 매력적인 설명 방식이기는 하지만 다소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즉 "김상봉 교수가 수행하는 반성은 서양의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라며, "김상봉 교수의 작업은 서양 대 한국의 지역적 구도가 아니라, 근대성 대 근대성의 반성의 구도"라고 김상봉 교수가 비판하는 서구가 과연 서구 전체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서 김선욱 교수는 만남의 논리, 서로주체성의 논리, 다른 자유의 논리를 말할 때 "논의가 더욱 정치하게 전개되지 않으면 정치철학적 입장에서는 계속 의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더 분발할 것을 요구했다.

열정 어린 청중들과 함께 5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회는 사회자인 홍윤기 교수가 "우리를 이렇게 장시간 앉아 있게 할 만큼 문제 자체를 만드는 데 굉장히 성공적이었다"면서도 "그럼에도 개념을 가다듬고 그 안의 인식을 더 치밀히 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토론회의 전체적인 평가를 하며 마무리되었다.

이날 토론회는 '한참 물오른' 소장학자들의 열정와 패기, 자신감을 읽을 수 있는 토론회였으며, 자생철학에 목마른 청중들의 열기와 '우리의 철학'에 대한 소중한 첫걸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사회자의 수준높은 유머와 청중의 폭소가 함께한 이례적인 토론회

▲ 통로까지 의자를 놓았고 최대한 밀착해서 앉았음에도 자리가 모자라 끝까지 서서 자리를 지킨 청중들도 있었다.

이번 토론회는 기존 학술토론회의 다양한 관례를 깬 이례적인 토론회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철학자들이 항상 우려먹었던 하이데거나 하버마스가 아닌 이례적으로 한국의 철학자를 대상으로 토론회를 열었다는 점이다(이 점에서 발제자 김상봉 교수는 대단히 행복한 철학자라 할 수 있겠다).

둘째, 학술토론회에 이례적으로 많은 청중이 몰려 열의를 보여준 점이다. 많은 학술토론회가 한 10명, 많아야 20명의 청중을 앞에 놓고 진행한다. 더구나 쉬는 시간이 지나면, 벌써 그 중 몇 명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토론회는 120여명이 넘는 청중이 몰렸다. 더구나 앉을 자리가 부족해 많은 이들이 불편한 자세로 있거나 또는 서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지한 눈빛으로 끝까지 함께 했다.

셋째, 톡톡 '튀는' 사회자의 진행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회자는 논점을 정확하게 집어 주며 토론자의 문제제기의 핵심을 명확하게 요약하고 정리해주어 청중의 이해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뿐 아니라 시종 재치 있는 진행과 청중의 폭소를 끌어내는 유머로 '철학토크게임'을 이끌었다. 사회자의 이러한 여유는 논점의 핵심을 꿰뚫는 혜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서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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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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