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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법 책을 많이 읽는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우리 고전 작품들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야 갖게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국어 과목의 일부였던 ‘고문(古文)’ 시간은 그야말로 ‘고문(拷問)’의 시간이었기에, 우리 옛 선조들의 사상과 문장을 담고 있는 고전 작품들에 대한 관심이 자라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배운 얄팍한 지식에 기대어, 나는 우리의 고전이란 고루하고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내가 배운 조선 시대 선비들의 글이란 ‘음풍농월(吟風弄月)’ 아니면 ‘효제충신(孝悌忠信)’을 다룬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기에 거들떠볼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랬으니, 마흔이 다 되도록 내가 읽은 책 중에서 우리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 한 권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다가 우연찮게 마주치게 된 고미숙의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읽고 나서야 나는 우리 고전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되었다. 지난해 가을의 일이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는 국악뿐만 아니라 우리 고전에도 해당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나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후 <삼국유사>를 비롯해서 우리 옛 고전 작품들을 조금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3권으로 나온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올해 읽었고, 다산 정약용의 글 여러 편을 모아 묶은 책 <다산어록청상>도 얼마 전에 읽었다. 과연 연암이고 다산이로구나 하는 찬탄이 저절로 나왔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장가로 이 두 사람을 손꼽는 것이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조선 시대에는 이 두 사람 말고도 글을 정말 잘 썼던 선비들이 수두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새로운 발견의 기쁨으로 이 책을 읽는 며칠 동안이 몹시 즐거웠다.

2.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 책표지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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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의 대중화를 위해 연구∙번역∙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고전연구회 사암(俟巖)’에서 ‘조선 지식인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펴낸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은 그 제목처럼, 조선 시대 선비들의 아름다운 옛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글이 가장 많지만, 그 밖에도 강희맹, 이덕무, 박제가, 유성룡, 최익현, 허균, 이항복 등 이름이 제법 친숙한 여러 선비들의 글들이 실려 있고 요즘 ‘혁신군주’로 각광받고 있는 정조의 글도 눈에 띈다. 그들이 한문으로 지은 저술이나 문집 속에서 가려 뽑은 글들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번역해서 한 권의 책에 담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원문이 갖고 있는 한문체 문장과 표현법이 무척 난해한 경우에는 원문의 본뜻과 내용을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문장을 고치고 다듬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수록된 47편의 옛글들은 수백 년 전 옛 사람들의 글인데도 낡은 한자식 표현이나 낯선 고어투가 전혀 보이지 않아서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이 책에 실린 옛글들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술술 잘 읽히는 것은 이렇게 읽기 쉽게 공들여 번역한 번역자들의 솜씨에 크게 빚진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그 옛글들에서 우리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까지 느끼게 되는 것은 원문이 가지고 있는 바탕이 본래 그러하기 때문일 터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의 일상생활 속에 녹아 있는 다양한 면모들을 담백하면서도 빛나는 언어로 묘사하고 있는 옛글들 자체가 품고 있는 매력이 훨씬 더 큰 것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정자나 서재 등에 붙인 이름에 대한 풀이, 벗들과 함께 한 즐거운 한때의 기억, 벼룩을 통해 깨달은 삶의 자세에 대한 단상, 휴식의 찬미와 게으름에 대한 풍자,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깨우침, 유명한 산과 강을 다녀오고 쓴 기행문 등 그 내용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을 생각하면 흔히 떠올리게 되는 ‘음풍농월’과 ‘효제충신’이 전부가 아니다.

연암 박지원과 막역한 친구 사이였던 이덕무가 쓴 글에는 까치집에 부치는 상량문까지 있다. 아래 인용한 글은 그 서문에 해당되는 글인데, 이로써 조선 시대 선비들이 다룬 글의 소재가 두루 막힘이 없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우리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삼호(三湖)의 외삼촌댁에는 큰 산수유나무가 있었다. 내 나이 19살인 기묘년(1759년) 겨울 11월에 까치가 그 산수유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까치는 집을 절반가량 짓다가, 가버리고 오지 않았다. 그때 외삼촌이 “네가 집을 지을 때 적는 상량문(上樑文)을 지으면 까치가 집을 완성하지 않을까?” 하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내가 붓을 들어 상량문을 지었다. 그 글이 익살스러웠으나, 까치가 마침내 집을 완성했다. 까치가 과연 내 글을 기다렸던 것일까? 나는 이것을 기록으로 남겨 세상 살아가는 얘기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전해 주려고 한다. [원전 : 이덕무, 『청장관전서』, ‘까치집 상량문(鵲巢上樑文)’] (33-34쪽)

이렇게 눈길과 마음이 가 닿는 것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세세하게 기록해 놓은 조선 선비들의 글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벗들과 사귀며 마음을 나누는 것을 삶의 으뜸가는 기쁨으로 여기는 아름다운 우정론을 담은 글들이었다.

정약용도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로 ‘나 혼자 외롭게 찾았던 곳을 마음이 맞는 좋은 벗들과 어울려 오는 것’을 꼽고 있으며, 다른 많은 선비들도 제 나름대로 우정론을 설파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압권으로 여겨지는 것은, 역시 연암 박지원과 더불어 소위 ‘백탑파’라 불린 우정의 동아리를 이루었던 박제가의 다음 글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로는 궁핍할 때 사귄 벗을 꼽고, 친구의 가장 깊은 도리로는 가난할 때 의논하는 일을 꼽는다. …(중략)… 이른바 친구란 반드시 술잔을 주고받으며 교제에 힘을 쏟고, 손을 부여잡고 무릎을 맞대고 앉아 있는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 말을 하고 싶지만 결코 말하지 않거나 말하고 싶지 않지만 저절로 말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이 두 가지 경우에서 사귐의 깊이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의 물건을 아끼는 욕심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재물을 아끼는 욕심이 가장 심하다. 또한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한다. 그 중에서도 재물에 대한 부탁을 가장 싫어한다. 그렇다면 사사로이 자신의 재물을 의논하는 일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다른 것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원전 : 박제가, 『초정전서』, ‘기린협으로 떠나는 영숙 백동수를 전송하며(送白永叔基麟峽序)’] (156-157쪽)

역시 ‘백탑파’의 일원이었던 이덕무는 친구를 나비에 비유해서 우정론을 펼치고 있는데, 짧은 글이지만 너무나 아름다워서 마치 한 편의 현대시를 읽는 듯한 감흥을 준다. 이 글 말고도 그의 글 여러 편에서 엿보이는 서정적이고 감각적인 내용과 표현은 옛날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도저히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다.

좋은 친구가 있는데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지 못하는 심정은 꽃가루를 옮기려고 찾아드는 나비를 맞는 꽃의 심정과 같다. 찾아들면 정성스럽게 맞이했다가, 잠깐 머무르면 문득 마음 아파하고, 날아가면 못 잊어 그리워한다. [원전 : 이덕무, 『청장관전서』,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213쪽)

이처럼 조선 시대 선비들은 벗과 더불어 나누며 즐기는 삶의 기쁨이 있었기에, 책을 팔아야 겨우 한 끼를 장만할 수 있는(지독한 책벌레였던 이덕무는 실제로 그랬다고 한다)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삶의 즐거움을 노래하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인생론을 지니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러한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그들의 글 역시 소박하고 담백하다. 그 글들은 색깔로 치자면 백색인데, 아래 인용글에서 이남규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시대의 화려하고 현란한 채색의 언어가 오히려 부끄러울 정도로 아름답고 멋스럽다.

백색은 채색의 바탕이다, 처음 백색이 아니면 채색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백색은 채색을 수용한다.”고 했다. 채색이 끝난 다음에도 백색이 아니면 다시 담백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글이나 일을 꾸미는 일을 희게 하면 허물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색깔로 보자면, 채색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러나 채색으로 말하자면, 반드시 백색을 바탕 삼아 시작하고 또한 마무리한다.

그럼 백색과 채색 중 어느 것이 더 높은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가? 먼저 백색은 색깔이 담박하고 꾸밈이 없어서, 화려하고 찬란해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저들 채색과 비교하면 사실 약간 뒤떨어진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고상한 자질을 알고 받드는 군자가 아니면 백색을 선택해 취하는 사람이 드물다. [원전 : 이남규, 『수당집』, ‘백당에 관한 기(白堂記)’] (169-170쪽)

3.

그러고 보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유명한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님을 알겠다. 정말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옛날 물건이라고 하면 모두 내팽개쳐버리는 어리석은 짓은 범하지 않는다. 정말 식견이 높은 사람이라면 옛날 글이라고 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자만에 결코 빠지지 않는다.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을 읽고서 나는 그동안 내 안목과 식견이 정말 보잘 것 없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옛 선비들이 쓴 글조차도 오늘날 유명한 작가들이 쓴 산문들 못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걸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뒤늦게 깨달은 내 뒤통수에 대고 연암 박지원이 호통을 친다. 뜨끔하는 마음이 책장을 덮는 내 손을 머뭇거리게 만들지만, 그의 호통이 나를 더 넓은 우리 고전의 세계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믿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서화(書畵)나 골동품을 보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대체로 소장가와 감상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감상하는 안목과 식견은 없으면서 한낱 소장만 하는 사람은 단지 자신의 재물과 귀만 믿는 졸부이고, 감상은 잘 하지만 소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가난하지만 자신의 안목만은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우리나라에도 더러 서화나 골동품을 사랑한 소장가는 있었다. 그러나 그가 소장한 서적은 송나라 대 돈을 벌 목적으로 조잡하게 인쇄해 민간에 널리 퍼뜨린 건양 땅의 방각본에 불과하고, 서예와 그림은 소주 땅에서 나온 위조품일 뿐이다. 밤 껍질 빛이 도는 진귀한 화로를 보고 곰팡이가 피었다고 긁어대는가 하면, 값비싼 밀랍을 먹여 짙은 황색빛이 도는 최고급 종이인 장경지(藏經紙)를 보고 더럽혀졌다면서 깨끗하게 씻으려고 한다.

조잡하고 천박한 물건을 만나도 진귀한 보물로 여겨 높은 값을 쳐주고, 오히려 진귀한 물건은 내팽개치고 간직할 줄 모른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원전 : 박지원, 『연암집』, ‘붓을 씻는 그릇에 관한 이야기(筆洗設)’] (220-221쪽)

덧붙이는 글 |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ㅇ 고전연구회 사암(俟巖) 한정주∙엄윤숙 쓰고 엮음
ㅇ 포럼 펴냄
ㅇ 2007년 6월 1일 1판 1쇄
ㅇ 값 9,800원



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 2007 올해의 청소년 도서

고전연구회 사암.한정주.엄윤숙 지음, 포럼(2007)


태그:#조선 지식인의 아름다운 문장, #우리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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