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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 성(聖)과 속(俗)의 경계 지점에 서다

월초에 샀던 <만인보> 24, 25, 26권을 여태 읽고 있다. 물론 독서에 집중하지 못하는 내 진득하지 못한 성격 탓이 크다. 그러나 이번에 출간된 세 권 속에는 신라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불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승들의 삶과 행적이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시집에 나오는 스님들 중엔 내가 익히 아는 스님도 있지만, 전혀 모르는 스님들도 있다. 그런 생면부지의 스님을 만날 적엔 그 스님에 대한 최소한의 자료라도 섭렵한 다음 다시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 표지.
 책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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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보> 26권 속에는 125편의 시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24, 25권과 마찬가지로 26권 역시 불교사 전반을 넘나들며 고승들의 삶과 행적을 좇고 있다.

이 세 권의 <만인보> 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님을 꼽으라면 자장 율사와 고암 스님(1899년∼1988년)일 것이다. 고암 스님이 두타행의 화신이라면 자장은 사대주의에 쩔은 스님의 표상이다. '자장'이라는 시를 통해서 시인은 자장을 이렇게 비판하고 있다.

신라 복식을 당 복식으로 바꿨다
신라 지명을 당 지명으로 바꿨다
그리하여
당 오대산은
신라 오대산이 되었다
당 강릉은
신라 강릉이 되었다
신라 것이 당 것으로 다 바뀌어버렸다
- 시 '자장' 일부

<만인보> 24권에서 이회광을 비롯해 친일 승려들의 행적을 준엄하게 비판했던 시인은 26권에서도 그 비판의 끈을 놓지 않는다. '변설호'라는 시가 그런 시다. 변설호는 아주 먼 옛날에 살았던 스님이 아니라, 1940년대 초 해인사에 주석했던 승려였다.

뛰어난 학승이었던 변설호는 일경과 짜고 사명대사의 영정을 떼어내고 주지들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해방 후에도 어찌어찌 살아남아 4·19 혁명 뒤 해인사에 잠시 있던 시인에게 '해인사 인수서'를 쓰라고 협박하기도 한다.

세속적인 욕망과 권력욕에 눈이 먼 승려들의 잘못된 삶에 절망하는 우리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게 하는 것은 벽암 각성 같은 스님이다. 벽암 각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사명대사를 도왔던 스님이다.

고은 시인은 고승들의 삶을 마냥 경외의 대상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그의 시 속에서 스님들은 성(聖)과 속(俗)의 경계 지점에 선다. 그들에게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순식간에 잡아내 성과 속이 결코 둘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남색 사자'라는 시와 '몽설당'이란 시가 대표적이다.

시 '남색 사자'는 남색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42년, 해인사에 주석하던 통현화상이라는 늙은 스님이 벌이는 남색 이야기다.

그날 밤
화촉동방 꾸며
노승 신랑과 동승 신부의 헛날밤을 이루었으니


그 다음날 논 절반을
신부 명의로 이전 수속하고 나서
노승 싱글벙글
동승 신부 한낮에도 부리나케 불러들였으니

- 시 '남색사자' 일부

한편 '몽설당'이란 시는 스님들의 몽정에 대해 쓰고 있다. 시기적으로 봐서 1957년이면 한창 정화불사가 진행되던 때라고 할 수 있다. 조계사는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절집이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도시는 색계(色界)의 으뜸가는 곳이리라.

1957년 서울 수송동 조계사
산중 비구들
무슨 일로 모였다
모였다 흩어지지 않고
서울살이 한철이었다

전차도 타고
드문드문 지나가는 택시도 탔다

그런데 산중 비구들이
서울에 살며 생긴 병 있다


한밤중 꿈속에서
색정에 빠지는 병
꿈속에서
색정의 절정
정액을 혼전만전 쏟아버리는 병

어느날 허물없이 실토하였다

교무부장 경산도
월정사 탄허도
범어사 대월도
팔달암 범향도
선학원 일초도 실토하였다


1달에 한번
1주일에 한번
3일에 한번


3일에 한번인 병자가 당수렷다

몽설당(夢泄黨) 당수 경산
대월이 부당수
1년 뒤 탄허가 제안했다
우리 몽설당 해체하고
각자 산중으로 돌아가자고


각자 산중으로 돌아간즉
몽설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시원섭섭이렷다

- 시 '몽설당' 전문


시에 나오는 "선학원 일초"는 고은 시인 자신이다. 세속에서 오랫동안
시달렸기 때문일까. 당대의 내로라 하는 고승들이 차례로 몽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탄허 스님 같은 고승도 이 대열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 병 아닌 병은 "각자 산중으로 돌아간" 후에야 비로소 깨끗이 낫는다. 시속 해학적인 장면을 상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성철 스님의 속가 딸인 불필 스님에 대한 시도 있다. 다 아시다시피 성철 스님이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선승이다.

오호라 필요없는 것이 태어났도다
그리하여 필요없는 년이라는 이름
불필(不必)이라는 이름으로
어영부영 자라나
그 이름값 다하느라
청량산 기슭 옴팡벌
그 불필암 이승(尼僧)이 되어

- 시 '불필' 일부

성철 스님이 아무리 당대의 고승이라지만, 출가 전에 낳은 딸의 이름을 '불필(不必)'이라 지은 것은 아무래도 이기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필요한 것을 낳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 아닌가.

시인은 이렇게 종횡무진 한국불교사를 누비지만, 이 시집 속 시들이 모두 불교와 관련 있는 인물만을 다룬 것은 아니다. 시인이 지난 1986년부터 죽 해오던 만인보 작업의 연장선에 서 있는 시들도 여럿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당대 인물에 대한 시들이 그것이다. '어린 수일이'라는 시가 그렇고, 얼마 전에 고인이 되신 조선의용군 출신 소설가 김학철과 중국인 처녀 친의 사랑을 노래한 '친(금)'이라는 시가 그렇다.

정수일은 우리에게 '무하마드 깐수'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단국대 사학과 교수로 있던 그는 어느날 갑자기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체포되어 5년간 복역하고 출소해서 지금은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아마도 그는 아주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였던 모양이다. 시에는 계모의 모진 회초리를 피해 생모의 무덤으로 도망간 어린 수일의 가련한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뒷산 생모 무덤에 왔다
무덤이 포근했다
울음 끝
스르르 잠이 왔다

아직 모기 없는 밤
어느새 먼동 텄다
온 세상은
어제 그대로였다
눈뜨자
배가 고파 내려가야 한다
- 시 '어린 수일' 일부

부지불식 간에 간첩이 되어 수갑을 찬 채 언론의 표적이 돼 있던 그의 모습보다 어린 수일의 모습이 훨씬 더 비극적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이 시는 뒤에 다가올 파란만장한 삶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으로 읽힌다.

'중목사' 김현동 목사 같은 청빈한 성직자를 고대하며

아마도 이 시집 속에서 가장 이색적인 존재를 꼽으라면 '중목사'라는 시에 등장하는 김현동 목사에 대한 시가 아닐는지.

머리 빡빡 깎은 목사라
중목사
중목사였다


서울 아현동 아현교회
판잣집 다닥다닥 다닥한
아현 예배당

중목사 김현봉 목사
혼자서는 영 기도뿐이었다
밤 12시에 깨어나
기도했고
통금 싸이렌 불면
뒷산 기도실에 올라가
기도였다

밤도 기도이고
낮도 기도였다
그 중목사 따라
남녀노소가
다 기도였다

교회 짓지 않았다
판잣집 늘어나면
그 집을 나눠주어
거기 살라 하였다
소금장사
신발장사
생선장사 시켜주었다


정작 그 자신은
판잣집 에배당 지하방 한칸에서 살았다
고기반찬 없었다
김치
된장 그뿐이었다
중목사
김현동 목사였다


그 중목사 따라
여자들 벨벳치마 입지 않았다
파마도 하지 않았다
남자들 덩달아
다 중머리 까까머리였다

신자가 숨지면
손수 시신 끌고 가 화장했다
어린 신자가 숨지면
손수 시신 지게에 지고 가
뒷산에 묻었다
1965년
1천 2백여 신도들
그의 화장장례에서 한나절 넘게 통곡했다

부디 울지 말라 그 말씀 남기셨건만
어디 가서 목사님 찾겠느냐고
해설피 통곡했다
해 지고 통곡했다

- 시 '중목사' 전문

시가 조금 길지만, 너무나 감동적인 삶을 사신 분이라 자르지 않고 시 전문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 주기철 목사의 전기를 읽은 이래 처음 느껴보는 감동이다. 오늘날,  이런 목사 한 분 모시지 못한 것은 한국 기독교 신자들의 커다란 불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아니다. 이것이 어찌 기독교인들만의 불행이겠는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시대의 비극의 원인은 정신적 사표로 모실만한 분이 너무 적다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비로소 '민중'의 범주에 편입된 우리나라 스님들

<만인보> 26권 속엔 승려를 비롯한 수 많은 군상들이 등장한다. 시인의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설령 불교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 있다고 할지라도 고은 시인이 가진 직관의 힘이 없다면 어떻게 한 인간의 방대한 생에서 한 부분만을 마치 크로키하듯 특징을 잡아내 시로 쓸 수 있겠는가.

이번 <만인보> 24, 25, 26권은 버겁다. 모두 395편에 달하는 시들을 읽는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게다가 모두에서 언급한 대로 불교와 승려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는 더욱 힘겨운 일이라 하겠다. 얼른 <만인보>에 대한 인물사전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정리하자면, <만인보> 26권은 시로 쓴 고승전이다. 이렇게 고승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시인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시인은 그렇게 적절한 지점에서 성과 속의 경계를 허물어뜨림으로써 스님들이 신격화, 관념화 되는 것을 막고 성(聖)이라는 껍질을 둘러쓴 갑각류 같은 스님들을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서게 하고자 하는 것 아닐까.

<만인보> 24, 25, 26권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나라 스님들은 '민중'의 범주에 편입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만인보 26/ 고은/ 창비/ 9,000원/ 200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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