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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교정에 김좌진, 이범석, 지청천, 홍범도 장군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이회영 선생 등 다섯 분의 흉상이 설치되어 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때 설치된 흉상은 육사의 뿌리가 독립군임을 나타낸다.

최근 육사가 이 흉상을 철거하기로 하자 진보·보수 할 것 없이 비판했다. 정부는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 문제를 독립군 후손들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 지난 29일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인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을 전화 인터뷰했다. 다음은 이 전 관장과 나눈 일문일답.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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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쿠데타란 다섯 글자가 떠올랐다

- 국방부가 육사에 세워진 독립군 흉상을 철거하기로 해서 논란인데 어떻게 보세요?
"일단 왜 그러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홍범도 장군을 비롯해 이번에 논란이 된 다섯 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사실 끝났거든요. 그동안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 다섯 분에 대해서 시비를 건 거예요. 더군다나 문제가 커지니까 다섯 분 가운데 네 분은 떼어내고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만 계속 문제를 제기하고 있죠.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난 인물에 대해 뒤늦게 뒤떨어진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까, 왜 그럴까 의문이 드는데 사실 어제오늘 대통령실의 대응을 보고 약간의 실마리를 찾았어요."

- 뭔데요?
"이건 단지 육군사관학교나 국방부가 한 일이 아니라 사실상 대통령실에서 주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어요. 사실 이 정도 문제가 커지면 대통령실은 '육군사관학교와 국방부가 잘못한 거다. 빨리 사태를 수습하도록 하겠다'라고 해야 하는데 거꾸로 계속 홍범도 장군의 사상 문제를 거론하고 있거든요. 이런 거로 봐서 이 사태의 배후에는 사실상 대통령실이 있다거나 대통령실에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네요. 

사실 독립운동가들을 색깔론으로 공격한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한 20년 전부터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극우 세력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집요한 인신공격성 발언을 해 왔거든요. 그런 공격의 연장선에서 이번에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다섯 분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흉상 철거에 대해 대통령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하는데.
"대통령도 홍범도 장군의 사상 문제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는 식의 반응하는 거로 봐서는 대통령실이 모를 리가 없고요. 더군다나 이번에 문제가 된 다섯 분 가운데 한 분이 이회영 선생인데요. 이회영 선생은 대통령의 절친, 죽마고우라고 하는 이철우 연세대 교수의 증조할아버지거든요. 그런 문제가 걸려 있는데 대통령실에 보고도 안 하고 이회영 선생 흉상을 철거하려고 했을까요? 저는 당연히 보고가 됐을 거라고 보고 아마 대통령실과의 긴밀한 협의 하에 일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 처음에 이 소식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역사 쿠데타란 다섯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이 다섯 분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이라고 했거든요. 처음에는 다른 분들에게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여요. 그걸 보면서 극우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밀고 있던 대한민국 역사 뒤집기가 이제 본격적인 단계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다른 분들은 공산당 이력이 아예 없는 거 아닌가요?
"나머지 네 분은 공산주의자들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반공주의에 가까웠던 분들입니다. 김좌진 장군은 공산주의자 손에 암살이 되셨고요. 이회영 선생도 공산주의와 대립하고 있던 아나키즘에 기울어져 계셨든 분이고요. 지청천 장군이나 이범석 장군도 공산주의와는 거리가 먼 분입니다. 특히 이범석 장군은 해방 이후에는 국무총리 그다음에 국방부 장관 맡으면서 반공 노선을 강력하게 표방했던 분이거든요. 공산주의와는 아무 상관 없는 분들까지도 싸잡아 공산주의자라고 매도하는 걸 보고 극우 보수 세력이 독립운동 전체를 좌익 빨갱이라 낙인 찍고 싶어 했는데 그게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 홍범도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이 건국훈장 줬죠.
"홍범도 장군도 그렇고요. 지청천 장군,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 이회영 선생 다 박정희 대통령 때 건국 훈장을 받았고요. 문제가 된 홍범도 장군도 박정희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시절에 건국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거기다가 홍범도 장군이 돌아가신 곳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인데 카자흐스탄이 원래 소련 영토였죠. 한국과 소련이 국교를 수립하기 이전에는 홍범도 장군 유해를 봉환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소련이 붕괴하고 난 다음에 카자흐스탄이 독립하면서 역대 대통령 모두 홍범도 장군을 한국으로 모셔 오려고 관심을 두고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다 실패로 끝났죠. 카자흐스탄이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고 대한민국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 때 카자흐스탄 정부가 결단을 내려서 대한민국으로 유해를 봉환하는 데 동의한 거죠. 그러니까 오랫동안 보수 정권도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인정했는데 갑자기 윤석열 정부가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열린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분향하고 있다. 2021.8.15
▲ 분향하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일제강점기 봉오동 전투 승리를 이끈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식이 열린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에 분향하고 있다. 202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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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위상 오히려 추락시켜

- 국방부는  자유민주주의와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호국 양성기관인 육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데.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만 상대하는 군대가 아니죠. 육군 사관학교의 교육 목표를 보면 국가 방위를 위한 육군의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침범할 수 있는 그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국가를 지키는 정예 장교를 양성하는 게 육군 사관학교의 목표고요. 더 나아가서는 이게 육군의 목표이고 동시에 대한민국 국군의 목표입니다. 국군은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거거든요. 그 외적 가운데 북한도 있을 수가 있고 다른 나라도 있을 수가 있죠. 이를테면 일본하고 사이가 나빠져서 일본군이 한반도에 쳐들어오면 일본군하고 싸워야 할 거 아닙니까. 북한만이 유일한 적이 아니죠.

거기다가 현실적으로 지금 중국 공산당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은 수교하고 있어요. 그래서 중국 공산당이라고 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마치 이 지구상의 모든 공산당은 다 한국의 적인 것처럼 규정을 하고 그 공산당과 싸우는 데 필요한 간부 양성하는 것이 육군 사관학교라고 말하면 이건 육군 사관학교를 굉장히 협소하게 만드는 거죠. 어떤 의미에서는 대한민국 육군의 위상을 오히려 추락시키는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육군 사관학교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군의 목표는 외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겁니다. 그 외적은 여러 나라가 될 수 있죠. 그런데 왜 공산당에 대해서만 문제를 제기하는지 모르겠어요.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 일선에서 물러나 연해주의 고려인 사회에서 민족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필요했기 때문에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겠죠. 또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로서 특별한 활동을 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사실은 다 무시한 채 소련 공산당에 입당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공산주의자니까 안 돼'라거나 '공산주의자니까 대한민국 국군의 정체성과는 맞지 않아.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받아들일 수가 없어'라고 나가는 것은 굉장히 편협한 거죠."

- 해당 독립군 후손들 반응은 어때요?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당연히 다 반발하고 있죠. 어떤 독립운동가 후손이 지금 정부의 입장에 동조하겠습니까? 문제가 된 것은 홍범도 장군 한 명이고 처음에는 흉상 철거 대상이 된 다섯 분이지만 사실은 독립운동가 전체를 지워버리려는 거예요. 모독하는 거거든요. 군에서 필요해서 흉상 만들어 놓고 어느 날 갑자기 '당신들은 군에서 인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흉상 치워버리겠어'라고 하는데 어떤 독립운동가 후손이 이걸 잘했다고 박수를 치겠습니까."

- 관장님도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알고 있어요.
"저도 할아버지가 이번에 흉상 철거의 대상이 된 지청천 장군이시고요. 이 때문에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날 밤 잠을 잘 자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변명한답시고 흉상을 철거하는 게 아니라 육군 사관학교에 있는 것이 적절치 않아서 독립기념관으로 보내겠다고 하는데 독립기념관에서는 전시할 수 없고 창고에 보관하겠다고 해요. 창고에 보관하는 흉상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독립운동가들 그다음에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저는 보는 겁니다".

- 독립운동을 지우려고 하는 걸까요?
"궁극적으로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다가 친일의 역사를 집어넣으려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독립운동가는 존경받고 친일파는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까?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에 기여한 바가 없는 미미한 존재고 오히려 친일파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주인공이라고 말하려는 거죠."

은근슬쩍 백선엽 흉상 세우려 할 것

- 흉상 치운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세운다는 말도 있는데. 
"처음에는 백선엽 장군 흉상을 설치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답변하는 거 보니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는 데 기여한 인물 흉상을 새로 만들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얘기했거든요. 이 조건에 딱 맞아떨어지는 게 백선엽 장군입니다. 지금 항간에 나도는 소문에 따르면 백선엽 장군 따님 말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백선엽 장군을 기념하겠다고 했대요. 아마 독립운동가 흉상 치운 자리에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친일 군인들 흉상을 세우겠다는 게 원래 계획이었던 것 같아요. 근데 계획이 틀어지니까 자꾸 우왕좌왕하고 있는 거죠.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은데 이 사태가 조금 지나가고 나면 은근슬쩍 백선엽 장군 흉상 세울 거라고 봅니다."

- 만약에 독립군 다섯 분 흉상을 그대로 놔두고 옆에다 백선엽 장군 흉상 세운다면 받아들이실 수 있나요?
"이종찬 광복회장의 말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부숴 없애라는 거죠. 저는 지금 할아버지가 동작동 현충원에 계신데요. 동작동 현충원에 있는 것도 못마땅합니다. 동작동 현충원에는 친일 군인들이 있기 때문에 친일파가 있는 동작동 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것도 안타까운데 저희 할아버지 흉상과 백선엽 장군 흉상이 같은 자리에 있다? 저는 차라리 철거해서 파괴해 줄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그게 이종찬 광복회장의 요구였거든요. 독립운동가 흉상과 친일 군인 흉상을 같이 놓는다는 것은 정말 독립운동가들을 죽이는 일입니다."

- 그럼 만약에 홍범도 장군 흉상만 빠진다면요?
"홍범도 장군만 빼는 것도 말이 안 되죠. 만약 그런다면 다섯 분의 형상 모두를 철거해 달라고 요구할 겁니다. 더 이상 육사 교정에 다섯 분 독립전쟁 영웅을 모셔놓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다섯 분 흉상을 모두 철거하고 파기해 줄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
ⓒ 이준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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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종섭 국방부 징관 퇴진을 주장하던데 같은 생각이신가요?
"국방부 장관도 퇴진해야 하고요.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국민 앞에 석고대죄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을 벌입니까.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라는 게 있습니다. 독립유공자는 대한민국으로부터 예우받아야 할 대상이지 모독받을 대상이 아닙니다. 이건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하는 짓이거든요."

- 이건 좀 다른 문제인데 광주에서 정율성 공원 만든다고 해서 논란인데 이건 어떻게 보세요?
"정율성이란 인물은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한 독립운동가였어요. 해방 이후 행적 때문에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되지는 못했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북한에서도 자리 못 잡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서 중국에서 삶을 마감한 분입니다. 정율성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1992년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음악가로서의 정율성을 기념하겠다고 하는데 정율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모든 걸 다 빨갱이라고 하는 건 너무 극단적인 논리인 것 같고요. 정율성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통해서 이걸 판단해야지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당원이니까 대한민국 군에서 지워버려도 되는 존재로 몰아가는 것처럼 정율성의 특정한 시기 행적을 가지고 정율성 삶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 사실 정율성 같은 독립운동가가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는 거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래서 헌법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못을 박은 거죠. 그 구절을 헌법재판소에서 뭐라고 해석했느냐 하면 '독립운동가들의 공헌과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언한 것이다'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독립운동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겁니다. 그게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기본 정신입니다. 그러니 최근 벌어지는 사태는 헌법을 부정하는 겁니다. 이게 최근 사태의 본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 게재합니다.


태그:#이준식, #독립군, #홍범도, #역사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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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와 이영광의 '온에어'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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