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30 18:32최종 업데이트 23.07.3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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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정신이자 미래의 침로인 'ESG'가 거대한 전환을 만들고 있다. ESG는 환경(E), 사회(S), 거버넌스(G)의 앞자를 딴 말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세계 시민의 분투를 대표하는 가치 담론이다. 삶에서, 현장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실천하는 사람과 조직을 만나 그들이 여는 미래를 탐방한다.[편집자말]

지난 2021년 8월 8일 그리스 에비아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을 한 주민이 망연자실한 듯 바라보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이어지고 있는 추세다. ⓒ 연합뉴스

 
누가 비건이 되었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건강, 다이어트 등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이유 중에 기후위기가 포함된다. 육식이 온실가스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면서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하자는 취지로 비건이 된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출산 파업'이라는 말이 있다. 페미니즘과 관련된 것이지만,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미래를 암담하게 바라보기에 그런 세상에 후손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역으로 자녀를 낳아서 미래를 더 암담하게 하는 데 일조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담겼다고 보기도 한다.


널리 알려진 항우울제 프로작이 상징하듯 우울증은 현대인의 대표적 질병 중 하나다. '기후우울증'이 새로 생겨나 나날이 이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을 늘려가고 있다.

불안한 미래

이러한 현상은 인류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기 때문에 빚어진다. 아예 탈출구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 또한 강력하다. 지구온난화의 빠른 진전과 이어진 기후위기의 심화는 '인류세'란 말을 등장시켰으며 이 용어에 모종의 종말론 분위기를 부여한다. 위기가 분명한데 극복이 가능한 것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관해 신뢰할 만한 혹은 권위 있는 답변이 없어 더 답답하다.
 

<성장의 한계> 표지 ⓒ 로마클럽

 

<모두를 위한 지구> 표지 ⓒ 모두를 위한 지구

   
1972년에 <성장의 한계>를 발표해 인류묵시록의 사실상 출발점이 된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 50주년을 맞아 발간한 새 보고서 <모두를 위한 지구>가 답을 내어놓았다. 50주년인 2022년에 나온 것을 협동조합 출판사 착한책가게에서 번역해 이번에 국내에 출간했다. 결론은 "활로가 있다"이다. 이 책의 부제가 '인류 생존을 위한 가이드'인 것에 주목하자.

1972년 유엔은 스톡홀름에서 인간환경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는 환경 인식에 관해 지구촌 차원에서 이루어진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이 회의에 앞서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발간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이 책은 전 세계에서 수천만 부가 팔리며 제목 자체로 인류 문명의 질주에 경고를 가한 붉은 신호등으로 기능했다. 이러한 인식이 못마땅했는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성장을 가로막는 대단한 한계는 없다. 인간의 지성과 상상력, 호기심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비난한 일화는 유명하다. 시간이 지나며 레이건이 틀렸고 <성장의 한계>가 맞는 것으로 판명났다.

<모두를 위한 지구>는 서두에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지금과 비교해 성능이 많이 떨어지는 1970년대 초반에 '월드3'라는 MIT 컴퓨터 모델이 한 예측이 얼마나 정확했을까. 결론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2년 호주 물리학자 그레이엄 터너는 1970~2000년의 실제 데이터를 수집하여 <성장의 한계>에서 제시한 여러 시나리오 중 '현상유지(BAU, Business-as-Usual)' 시나리오와 비교했다. 그 결과 <성장의 한계> 연구팀이 제시한 시나리오가 현실에 근접했음을 확인했다. 2014년 터너가 다시 한번 실제 데이터를 수집해 비교했지만, 결과가 같았다.

2021년 네덜란드 연구자 가야 헤링턴이 다시 확인에 나섰다. 이번에는 40년치 자료를 가지고 월드3가 도출한 4가지 시나리오와 비교했다. 네 시나리오 중 첫 번째는 세계가 (문명의 방식) 경로를 변경하지 않고 현상 유지 경로를 따라 경제와 정치를 수행한다는 BAU 시나리오다. 2020년 무렵에 산업생산이 정점을 찍고 하락하며 인구는 좀 더 뒤에 정점에 이른다. 자원은 계속 줄어들어 2100년이면 고갈 단계이다.
 

BAU 시나리오 ⓒ 로마클럽

 
BAU시나리오를 갱신한 BAU2 시나리오는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을 BAU보다 두 배로 늘렸다. 산업생산, 인구 등이 정점에 도달하는 시기만 뒤로 밀렸고 이후 급속하게 곡선이 하강했다. 인구 산업생산 등이 모두 2100년에 급감한다는 얘기다. 대신 오염 곡선은 BAU와 달리 꺾이지 않고 계속 올라가다가 2020년 언저리에서 급상승하는 형태를 보였다.
 

BAU2 시나리오 ⓒ 로마클럽

 

세 번째 CT시나리오는 포괄적인 기술혁신이 대규모로 이루어짐으로써 지구 한계에 접근하면서 맞닥뜨리는 일부 문제(예 식량)를 해결한다고 가정했다. 앞의 두 시나리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당할 만한 것으로 인구가 21세기 후반 이후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오염이 줄어들고 식량 문제도 해결된 상태이나 산업생산은 감소했다. 
 

CT 시나리오 ⓒ 로마클럽

 

네 번째 SW시나리오는 우선순위를 변경함으로써 세계를 안정화할 수 있는 경로를 탐구했다. 물질 소비 증가에 투자하는 대신 보건의료와 교육에 투자하고 오염을 줄이며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일을 앞세운 시나리오다.
 

SW 시나리오 ⓒ 로마클럽

   
헤밍턴은 <성장의 한계> 시나리오 중 SW를 뺀 세 가지 시나리오가 실제 데이터에 근접했음을 확인했다. 이 말은 월드3 모델, 즉 <성장의 한계>의 예측이 정확하다는 뜻이다. 헤밍턴은 모델과 현실이 근접하다면 경보를 발령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BAU와 BAU2의 두 개 시나리오에서는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인류문명의 붕괴가 일어난다는 것이어서 즉각 대처해야 한다. 특히 BAU2는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남용하는 기간만 길어질 뿐 과도한 인구를 초래해 가장 심각한 붕괴에 직면했다. <성장의 한계>에서 제시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 SW는 현실 자료와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바꿔야 하나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 50주년을 맞아 발간한 <모두를 위한 지구>는 2020년에 출범한 '모두를 위한 지구' 이니셔티브가 수행한 연구결과를 담았다. 이 연구의 지적 구심점은 세계의 저명한 경제사상가로 구성된 전환경제위원회와 '어스4올(Earth4All)'이라고 부르는 시스템 역학 모델이다.

현실은 <성장의 한계>에서 제시한 전망 중 최악의 시나리오로 수렴 중이다. 지난 50년 소비는 계속 늘었고 불평등이 증가했으며, 인간 경제는 지구의 수용 능력을 초과했다. 특히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지구에 엄청난 물질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어스4올은 두 개의 시나리오를 상정했다. '부족한 노력, 놓친 시기(Too Little Too Late)' 시나리오는 지난 50년에 진행한 방식 그대로 우리 문명을 끌고갈 때의 미래 전망이다. 다른 시나리오는 '거대한 도약(Giant Leap)' 시나리오다. 짐작하듯 전자의 시나리오는 문명의 붕괴로 간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소 자원을 두고 인류가 서로가 서로에 대해 늑대가 되는 사태를 각오해야 한다. 후자는 (그 의미를 정의하기 점점 어렵게 되어가고 있지만) 붕괴를 피할 수 있는 '인간다움'이 존중되는 안정적 경로로 누구나 희망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기에 걸어가기 쉽지 않은 시나리오다.
 

'거대한 도약' 시나리오 ⓒ 모두를위한지구

 
"이대로 가다가는 세계 질서가 무너지고 영원한 위기와 승자독식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다. 반대로 방향을 바꾸어 모두를 위해 더 환경적이고 안전한 미래로 나아가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 그대로 두 개 시나리오가 구성됐다. '거대한 도약'은 대다수 사람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탐구하고, 한 세대 안에 지구 한계 내에서 모두의 번영을 달성할 수 있도록 ▲빈곤과 결별 ▲불평등 전환 ▲여성에 권한부여(임파워먼트) ▲식량 전환 ▲에너지 전환이란 5가지 영역의 전환을 촉구한다.

'부족한 노력, 놓친 시기' 시나리오에서는 경제가 계속 성장하겠지만 사회 결속력, 복지, 안정적인 지구는 희생된다. 세계 지역 간 격차가 커져 대규모 갈등이 발생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사회붕괴를 배제할 수 없다. '거대한 도약' 시나리오에서는 절대 빈곤이 사라지고 불평등이 대폭 감소한 결과로 다져진 사회 결속력과 민주주의를 통해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줄이고, 지구가 엄청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다수를 위한 복지를 제공하고 웰빙경제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어스4올은 보다 회복력 있는 문명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추가적인 투자 규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보와 식량 안보를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전 세계 연소득의 2~4% 수준일 것으로 본다. 작은 규모임에도 당연히 시장원리에 맡겨선 이러한 투자가 가능하지 않다. 5가지 전환을 이루기 위해선 시장방식과 장기적인 사고방식 모두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 투자는 첫 10년에 가장 많은 자원이 들 것이고 이후 투자규모가 줄어든다.
  

'거대한 도약'의 총에너지비용 전망 ⓒ 모두를위한지구

  
책은 "이 특별한 전환은 2050년 전에 달성될 수 있고 달성되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지금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좌절하지 싶다. 시장원리를 탈피해서 당장 행동해야 한다는 데에 십분 동의하지만 현 국제질서와 사회체제 내에서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럼에도 좌절에서 일어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다음 세대는 영화 <매드맥스> 속에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다음의 15가지 정책제언은 붕괴를 막기 위해 양식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동의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정책이 추진될 수 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하게 하려면 먼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15가지 정책 제언

빈곤
•IMF가 녹색 일자리를 위해 저소득 국가들에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할당하도록 허용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이른바 특별인출권을 통한 투자 창출이다.
•(1인당 소득 1만 달러 미만의) 저소득 국가가 지고 있는 모든 부채를 탕감해야 한다.
•저소득 국가의 신생 산업을 보호하고 저소득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남반구-남반구 무역을 촉진해야 한다. 지식재산권 제약을 비롯하여 기술 이전에 걸림돌이 되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재생에너지와 보건의료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해야 한다.

불평등
•사회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10%에 대한 세금을 늘려서 국민소득의 40% 이상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강력한 누진세 제도가 필요하다. 불안을 일으키는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고 사치스러운 탄소 소비와 생물권 소비 문제를 처리하려면 국제 사회에 존재하는 허점을 제거해야 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 심층 전환의 시대를 맞이한 노동자에게는 경제적 보호가 필요하다.
•시민기금을 도입하여 사용료와 배당금 제도를 통해 국민소득, 부, 지구 공유지를 모든 시민에게 공정하게 분배해야 한다.

젠더 평등
•모든 소녀와 여성에게 교육 받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직업과 지도력에서 젠더 평등을 달성해야 한다.
•적절한 연금을 제공해야 한다.

식량
•관련 법을 제정하여 식량 손실과 낭비를 줄여야 한다.
•재생농업과 지속 가능한 생산력 증대에 대해 경제적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
•지구 한계를 존중하고 건강에 좋은 식단을 장려해야 한다.

에너지
•화석연료 사용을 즉시 퇴출시키는 대신 에너지 효율성을 개선하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지금 당장 3배 늘려 연간 1조 달러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전기화해야 한다.
•대규모 에너지 저장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윤진 ESG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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