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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편집자말]
한 달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전체적으로 결과는 나쁘지 않았지만 늘 깨끗했던 대장 내시경에서 폴립을 처음으로 떼었다. 위에는 헬리코박터균이 있어 일주일간 독한 약을 먹어야 했다. 이제 나도 나이 들었구나 싶어 마음 한편이 쓸쓸하던 차에 배우 강수연의 부고를 들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놀랐지만, 그의 나이에 또 한 번 놀랐다. 올해 55세. 아역배우 출신으로 오랜 세월 연기를 하고, 21살부터 월드 스타라고 불린 그는 꽤 나이가 많으리라 짐작했었다. 그는 생각보다 젊었고 심지어 내 또래였다.

그래서인지 강수연의 죽음은 다른 연예인의 부고와는 달리 나에게 삶의 유한성을 떠올리게 했다. 무한히 사는 사람은 없다. 가족이나 가까운 타인의 죽음을 접할 때도 나의 죽음은 애써 무시하거나 막연히 먼 일로만 치부한다.

누구나 죽음이 두렵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50세가 넘으면 이전 연령대에 비해 돌연사 가능성이 급증한다고 한다. 완연한 중년에 들어선 지금, '나의 죽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장례식 때 쓸 영정사진부터 미리 골라보았다.
 장례식 때 쓸 영정사진부터 미리 골라보았다.
ⓒ envato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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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로라 프리챗은 저서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에서 죽음은 실패가 아니고, 형편없이 사는 것이 실패라며 죽음을 '삶의 조언자'로 삼으라고 말한다. 평소에 죽음을 상상하고 연습하면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젊고 건강하더라고 자기 삶에 편지를 써보아라. 금전 문제에 관한 유언장도 중요하지만, 당신의 진심을 닮은 윤리 유언장 역시 마찬가지다. (중략) 우리는 단지 돈과 물건뿐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남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을, 업적을, 당신에게 중요했던 무언가를 남기고 떠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면 죽음은 한결 쉬워진다." - 63~64쪽
 
작가는 당신이 웃고 울었던 일을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살면서 좋았던 기억 다섯 가지, 살면서 힘들었던 일 다섯 가지를 적어보는 것이다. 좋았던 기억을 적고 보니 대단한 인생의 이벤트가 아닌 가족 여행, 아이들의 성장, 반려견 입양 등 소소한 행복이었다. 좋았던 일은 많은데, 막상 힘들었던 일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평탄하게 살아서라기보다 평소에 불평불만이었던 일도 '죽음'을 앞에 두고 다시 생각해 보니 참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식스 센스>로 유명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올드>(OLD) 한 장면이 생각났다. 암벽의 기이한 성분으로 인간의 생체활동이 빨라져 30분이 1년과 같은 속도로 흐르는 해변에서 일어나는 스릴러 영화이다.

이혼을 결정하고 여행 온 중년 부부는 밤이 되자 노인이 되어 버린다. 죽음을 앞둔 두 사람은 서로 나란히 앉아 "우리가 싸웠던가? 이유가 뭐였든 간에 화가 풀렸어"라며 화해한다. 인생에서 힘들었던 일도 세월이 지나면 희석된다. 하물며 죽음 앞에서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

책 속에 제시된 질문 중 내가 당황했던 것은 "끝까지 함께할 수 있는 친구 다섯 명을 떠올려 보라"였다. 평소에 인맥이 넓고 친구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끝까지 함께'라는 말에서 걸렸다.

앞에 3명을 쓰고 2명의 이름을 계속 썼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내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었는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생일에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으로 우정의 의무를 이어가는 관계도 많았다. 그동안 코로나(를 핑계)로 소원했던 친구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 웃고 이야기하고 싶다.

장례식에서도 나를 기분 좋게 추억했으면

'당신이 사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당신이 사과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그렇다.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죽기 전까지 미루지 말고 당장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반대로 내가 사과받고 싶은 사람에게는 지금 서운했던 점을 솔직히 말하고 하루라도 빨리 묵은 감정을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어지는 질문에 답을 할수록, 자신을 되돌아보고 내 삶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게 아직 시간이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가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라고 한 뜻을 이제야 알겠다. 상상일 뿐인데도 삶의 끝에 서서 현재의 내 삶을 들여다보며,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했다. 삶을 잘 사는 것이 곧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과 통하기 때문이다.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나를 추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함께 웃으며 나를 추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 전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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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죽음의 순간과 멋진 장례식에 대한 계획서도 미리 작성해 보라고 권한다. 나는 장례식 때 쓸 영정사진부터 미리 골라보았다. 갑자기 죽는 경우, 내가 사진을 선택할 수 없다. 목을 팔로 감싼 독특한 자세로 화제가 된 강수연씨 영정사진 역시 패션 잡지 화보로 찍은 사진이었지만 잡지에 실리지 않은, 강수연 본인도 살아생전 보지 못한 B컷이었다고 한다.

나는 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날 위해 울어주는 것도 고맙지만, 함께 웃으며 나를 추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기분 좋게 날 기억하는 사진을 고르고 싶었다. 컴퓨터에서 사진 파일을 열심히 찾다가 '바로 이 사진이다!' 했다. 태국 여행 갔을 때 호텔 안에서 보호받는 코끼리와 키스하는 사진이다. 코끼리의 장례식이라고 오해받을까 살짝 걱정 되지만!

시민기자 글쓰기 모임 '두번째독립50대'는 20대의 독립과는 다른 의미에서, 새롭게 나를 찾아가는 50대 전후의 고민을 씁니다.
태그:#중년, #죽음, #강수연, #영정사진,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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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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