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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들이 <전태일신문> 배포 전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활동가들이 <전태일신문> 배포 전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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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전태일 평전>

어린 시다들의 비참한 삶을 구하고자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어느덧 50년을 맞았다. 그러나 OECD 산재 사망률 1위, 노조 조직률 11.8%, 노동시간 2위 등 '노동 지옥'이라는 굴레에서 여전히 삶이 찢겨 나가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직도 수백만 명에 이른다.

50년 전 전태일과 동료들은 이런 비참한 현실을 알리고자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신문을 노동자들에게 나눠줬다. 열악한 처지에 대한 부당성과 연대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여기 이 방식을 다시 끄집어낸 사람들이 있다.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비정규직노동자의 집 꿀잠'과 '비정규직이제그만'의 공동제안으로 전태일신문 발행위원회가 <전태일신문>을 발행했다.

지난 12일 꿀잠 회원들과 활동가들은 점심시간에 맞춰 구로디지털단지 코오롱싸이언스밸리1차 건물 앞에서 신문 배포 활동을 벌였다. 꿀잠은 지난 2016년에 창립해 비정규직 노동자, 사회 활동가 등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며 각종 비정규직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해왔다.

"43년 일했는데 하루 일당 8만원, 말이 되냐?"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이 사회를 두고 뭐라 말할 것 같느냐의 질문에 강명자씨는 “여전히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답했다.
 전태일이 살아있다면 이 사회를 두고 뭐라 말할 것 같느냐의 질문에 강명자씨는 “여전히 ‘인간답게 살고 싶다’라고 말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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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잠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는 김경동씨(63)는 전태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기자의 말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는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영원히 잊지 못할 사람"이라며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전태일을 단지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그가 외쳤던 구호와 정신을 계승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태일신문> 메인 표지사진을 장식한 43년째 봉제노동자 강명자씨(56)는 "공장에서 미싱으로 43년을 일했는데 하루 일당 8만원을 받는게 말이 되냐"며 "여전히 최저생계비도 못 받고 하루에 10~12시간씩 일하고 산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임금이 삭감됐고 지금은 일을 쉬고 있다며 열악한 처지를 토로했다.

그는 또 "딸이 독일에 유학 갔다 와 지금은 계약직으로 일하는데 올해 계약이 끝난다"면서 "고용불안으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서 "우리 딸이 살고 있는 세상과 50년 전 세상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냐"며 물었다.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정명재 조사부장이 <전태일신문>을 들고 있다.
  코레일네트웍스지부 정명재 조사부장이 <전태일신문>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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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임금인상과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코레일네트웍스의 정명재(44) 조사부장도 신문 배포에 함께했다. 그는 "코레일네트웍스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과 열악한 조건에 놓여있다"며 "이 시대의 전태일들이 나서서 지금의 잘못된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연대하게 됐다"고 밝혔다.

꿀잠 이사이자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문재훈씨는 "현장의 비정규직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자 신문을 발행하게 되었다"며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위해 전태일 3법의 조속한 통과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권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에게 헌법이 정한 기본권을 보장하라는 법이 바로 전태일 3법"이라며 그런 내용이 담긴 신문에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전태일신문을 읽고 있는 시민
  전태일신문을 읽고 있는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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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가판대가 설치되자마자 신문을 집어간 직장인 박승현씨(45)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강조했다. 그는 "오너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산재 발생시 원청에게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하는 법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며 처벌수위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에 지지를 보냈다.

장시간 노동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안양의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는 박찬재씨(47)는 "여전히 내 의사와 상관없이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결국 비정규직을 폐지하는 것이 이 시대의 과제"라고 말했다.
 
저임금 장시간 구로공단 노동자가 많은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이 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저임금 장시간 구로공단 노동자가 많은 구로디지털단지에서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이 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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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은 이날 오전 11시 30분부터 낮 12시 30분까지 1시간동안 총 700여부의 신문이 배포됐다고 말했다. 그는 "전국 78개 배포처에서 신문을 받아볼 수 있고 몇 곳은 우리처럼 가판대 활동도 진행했다"며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추도식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태일신문> 배달부, 국회에 가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년을 맞아 전태일 3법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년을 맞아 전태일 3법이 조속히 통과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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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배포 활동 취재 후, <전태일신문> 배포에 동참하고자 국회를 찾았다. 학교현장에서 차별받는 기간제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 토론회에 참석한 강은미 정의당 의원을 만나기 위해서다.

토론회 참석 후 신문을 받은 강 의원은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처지"에 있으며 "위험의 외주화로 비정규직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 의원은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첫 관문이 바로 전태일 3법 통과라 생각한다"며 "법안이 제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전태일 3법은 '모든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모든 노동자 노조 권리 보장', '산재가 발생한 기업에 강력히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포함하는 법안으로 현재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에 있다.
 
 연은정씨는 “정치인들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은정씨는 “정치인들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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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기간제교사 정규직화를 지지하는 공동대책위원회'소속 연은정씨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기간제 교사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며 "이들의 목소리가 더 널리 퍼지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가 불꽃이 된 지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어디에 위치해 있을까. 공순이, 비정규직으로 불리며 40년째 미싱사로 일한 강명자씨는 "나도 취미생활 하며 즐겁게 인생을 살고 싶다"며 자신의 소박한 소망을 말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모든 노동자들의 꿈은 이뤄질 수 있을까.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이번 신문 발행이 그런 소박한 소망을 향한 첫 걸음이 될 수 있기를.

<전태일50> 신문 제작에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전태일'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 사진가, 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 구독신청

태그:#전태일, #신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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