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성 장례지도사 1호로 불리는 심은이씨를 지난 21일 오후 동탄 자택에서 만났다.
 여성 장례지도사 1호로 불리는 심은이씨를 지난 21일 오후 동탄 자택에서 만났다.
ⓒ 유지영

관련사진보기

   
"19년 동안 장례지도사 일을 하면서 후회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심은이(42)씨는 "후회한 적이 없다"는 말에 힘을 꾹 주었다.

19년차 장례지도사로 일하는 그를 21일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만났다. 심씨는 중환자실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던 1997년 그의 나이 21살일 때 사람이 죽는 걸 처음 보았다. 생전에 자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할머니였다. 장례식장 직원들이 '짐짝 다루듯' 고인을 둘둘 말아 카트에 쿵하고 옮겨서 가져갔다. 그 광경을 보고 심은이씨는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도 충격인데 하물며 가족이었다면? 심씨는 장례식장 직원들의 행동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장례 문화'라는 것이 보편적이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 충격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있을 무렵 그는 우연히 신문에서 최초로 장례지도학과가 생긴다는 소식을 접하고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다. 심씨의 아빠와 오빠는 '여자가 그런 걸 하느냐'며 반대했다. 반면 엄마는 반색했다. 심씨의 세례명인 '데레사'를 부르면서 "너에게 잘 맞을 거야"라고 응원해주었다. 엄마의 응원 덕에 심씨는 장례지도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장례지도학과에서는 장례풍습, 시신 위생처리, 풍수지리, 공중보건 위생 등을 배웠다. 처음 접하는 공부인데 재미있었다. '왜 이걸 시작했지'와 같은 회의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힘든 건 남들의 시선이었다. 무슨 과에 다니냐는 물음에 '장례지도학과에 다닌다'고 답하면 사람들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시집 가면 (시신 만지던) 그 손으로 시어머니 밥을 해줄 수 있겠느냐'라는 한 아주머니의 말에 울기도 했다. 하지만 훗날 심씨는 그 손을 어딜 가든 꼭 잡아주는 신랑을 만났다.
 
장례지도사 심은이씨
 장례지도사 심은이씨
ⓒ 빈센트병원 제공

관련사진보기


가족의 장례를 직접 치르다

처음 일을 부산에서 시작했을 때는 공공연히 '남자 직원은 없느냐'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했다. '젊은 아가씨가 어떻게 이런 걸 알아?'라고 무시했지만 심씨는 굴하지 않고 아는 대로 설명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염습부터 관을 드는 일까지 장례의 모든 과정을 남자 직원들과 똑같이 했다.

지금은 여성 장례지도사 후배들이 많지만 '여성 장례지도사'라는 것이 드물던 시절이었다. 심은이씨가 파악하기로는 을지대학교(구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학과 1기로 함께 입학했던 10명의 여성들 중 현직에 있는 사람은 없다.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시절 주검을 함부로 대하는 광경을 잊지 못한 그는 비록 죽은 사람을 다루지만 산 사람처럼 대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20대에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상주들과 같이 울었다. 고인만 보이던 시절이었다. 30대가 되자 고인 옆에 있는 유가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40대에 심씨는 가족을 떠나보면서 비로소 유가족들의 마음을 알게 됐다. 직접 겪어보니 또 달랐던 것이다. 심씨는 이제 장례지도사로서 유가족들의 마음을 치유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 일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느님에게 말씀드려요."

심씨는 자기 손으로 직접 가족의 장례를 치렀다. 목욕을 직접 시키고 수의 대신 평소 즐겨 입던 개량 한복을 입혔다. 남은 가족과 상의해서 부조금도 화환도 받지 않았다. 심씨도 평소에 원하던 장례방식이었다.

심씨는 사후세계가 있다는 걸 믿는다고 했다. 그는 영혼이 살아 있고 귀신도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얼마 전 하늘로 간 가족을 위해 아침마다 연도(영혼을 위해 드리는 천주교식 기도)를 한다.

그는 지금 수원에 있는 빈센트병원의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에서 일한다. 장례 상담을 하고, 고인을 안치하고, 염습(고인을 깨끗하게 씻겨 수의를 입히는 것)과 입관, 발인까지 한다. 그렇게 하루에 평균 두 분 정도를 모신다.

고인에게 수의를 입히길 원하지 않으면 수의를 입히지 않고 평소 입히던 옷을 입힌다. 수의를 입히고도 입관을 하고 난 뒤에는 고인이 좀 더 편했으면 해서 유가족에게 '수의를 좀 더 편하게 풀어드릴까요'라고 묻는다.

"장례 문화도 변화에 맞춰서 가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꼭 삼일장을 고집할 필요 없이 이틀만 해도 되고 가족들끼리만 치러도 되지 않을까요. 어떤 장례를 하고 싶으냐고요? 저는 장기 기증을 다 해놨어요.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주기 위해 건강하게 살려고요. 그때가 되면 또 장례 문화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모르겠네요." (웃음)
 
근무하고 있는 심은이씨의 모습
 근무하고 있는 심은이씨의 모습
ⓒ 빈센트병원 제공

관련사진보기

 
그는 특히 기억에 남는 유가족 이야기를 했다. 2014년 세월호에서 나온 학생의 아빠부터 목을 맨 엄마를 처음으로 발견한 다섯살 아이,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살다가 배우자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할아버지, 부모님을 떠나 보내고 "이제 나는 고아가 됐다"고 울던 쉰살의 남성.

"나이가 적든 많든 가족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똑같은 것 같아요."

최근 그는 무연고사와 고독사에 마음이 가 있다. 현장에서 본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탓이다. 한동안 시골에 가서 집배원 생활을 하면서 홀로 사는 노인들의 장례를 본인 손으로 하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심씨는 한 대학에서 2년동안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작년에 졸업했다. 그는 사회복지를 공부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들을 돌봐주다가 장례지도사로서 배웅해주는 모델을 꿈꾼다. 가시는 분이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태그:#장례지도사 심은이, #아름다운 배웅, #여성 장례지도사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