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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선욱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연속기고글을 싣습니다.[편집자말]
지난 3월 6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산재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지난 3월 6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앞에서 열린 고 박선욱 간호사 산재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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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①] 우리는 왜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나
[연속기고②] 입사 3개월차 간호사의 죽음, 우연한 일이었나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정확히 1년하고 19일이 지난 후에 그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았다. 산재 판정서 결론에는 과도한 업무와 부족한 교육이라는 병원의 시스템 때문에 박선욱 간호사가 자살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은 살인을 저지르면 경찰에 체포되고 감옥에 가는데, 기업과 시스템이 사람을 죽이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다. 병원 시스템으로 인해 죽은 것이라고 산재 판정서의 결론에 버젓이 나와 있지만 아산병원은 유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변한 건 없다.

박선욱 간호사를 자살로 몰아간 아산병원은 정부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여전히 잘 굴러가고 있다. '박선욱 간호사 자살사건 공동대책위'에서 산재 사망이 발생한 아산병원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자,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한 자율개선점검사업에서 아산병원은 단 한 건의 위반사항도 적발되지 않았다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내가 보기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 점검사업이 가장 심각하게 문제인 것 같다.

27살, 꽃다운 나이에 자살로 내몰린 박선욱 간호사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잃었고 어머니는 하나뿐인 딸을 잃었다. 하지만 아산병원은 여전히 매일 환자가 넘쳐나는 국내 최대의 병원이다. 고작 간호사 하나 죽어 나간 걸로 거대한 아산병원의 평화로운 일상과 진료수익은 크게 변화가 없겠지만, 박선욱 간호사의 가족과 주변 사람들, 그리고 나의 삶은 크게 변해버릴 수밖에 없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녀의 죽음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박선욱 간호사의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도 후배들이나 신규 간호사들이 일이 힘들다며 나를 종종 찾아오곤 했었다. 간호사들이 찾아올 때면 나는 밥이나 차를 사주면서 이런저런 위로와 조언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박선욱 간호사 사건이 있고 난 후부터는 예전처럼 내 생각을 쉬이 말할 수가 없다. 

과도한 업무량에 교육도 해주지 않는 병원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

박선욱 간호사 죽음 이전에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심각하게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다른 진로를 고민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하고, 내 나름 판단해서 견딜 만한 수준인 것 같으면 조금 더 견뎌보라고 다독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굴에 자살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출근하는 게 두렵다면서 펑펑 우는 간호사들을 보면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혹은 펑펑 울진 않더라도 오죽 힘들었으면 나를 찾아왔을까, 사람마다 표현방식이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담담하게 말하더라도 힘들다고 하는 말을 가볍게 넘길 수가 없어졌다.

무작정 힘들면 관두라 하기에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보냈던 4년을 그렇게 쉽게 포기하라고 해도 되는 것인지, 조언을 구하러 온 사람에게 선배 간호사로서 너무 무책임한 말은 아닌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힘들어도 조금만 더 견뎌보라고 그동안 고생한 게 아깝지 않으냐고 말하기엔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이 간호사가 나랑 헤어지고 돌아가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나를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간호사들이 이렇게 한번 찾아오면 나는 온 신경이 거기에 쏠렸다.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 일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뒤통수가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 이후 나의 일상도 변해버렸다.

언론에서는 간호사들이 힘든 것이 소위 '태움'이라 불리는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인 것처럼 말하지만, 신규 간호사들이 힘들어하는 이유는 특정인의 괴롭힘보다 시스템 전체의 문제 때문인 경우가 많다. 고 박선욱 간호사의 산재 판정서 결론에 나와 있는 것처럼 생명과 직관된 중요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신규 간호사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과도한 업무량을 주고 업무교육도 제대로 해주지 않는 병원 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해결된 병원은 그나마 병상 대비 간호 인력 상황이 가장 좋다고 하는 서울대병원을 포함해서 우리나라에 단 한 곳도 없다.

보건복지부는 간호사들의 자살 문제가 불거지고 난 후에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커녕 간호사들의 자살이나 정신건강 상태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한 명의 간호사가 병원 시스템 속에서 자살로 내몰려 죽음을 선택할 때, 그 한 명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는 수십, 수백 명의 간호사들은 죽음의 낭떠러지 옆에서 그에 준하는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병원 홍보팀이 조금 더 바빠진 것뿐

의료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 같았으면 살리기 어려웠던 환자들을 첨단 의료기술과 고위험 의료기들로 연결해서 살려내고 있다. 당연히 환자의 중증도는 10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그리고 점점 기업화되어가는 병원들이 기업의 경영방식을 병원에 도입해 병상 가동률이나 수익률 등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간호사들의 노동강도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간호사들의 자살은 박선욱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박선욱 간호사의 사망 이후에 지난 1년간 언론에 보도된 것만 3명의 간호사가 자살했다. 1명은 한강에 투신하고 2명은 약물을 주사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4월 10일에 네 번째 죽음이 발생했다. 고양시의 대형쇼핑몰 화장실에서 남자 간호사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입사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서울의 한 대형병원 심장중환자실의 신규 간호사였다. 사망한 간호사의 팔에는 주사가 꽂혀 있었고 사망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수액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산병원과 마찬가지로 큰 병원에서 또다시 신규 간호사가 죽은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의 박선욱 간호사 자살사건 이후에, 병원이나 보건복지부는 근본적인 간호 인력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않고 있다. 변한 건 없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각 병원 홍보팀들이 조금 더 바빠진 것뿐이다. 병원들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도 아산병원처럼 언론에 떠들썩하게 오르내리지 않도록 조심할 뿐이다.

5월 12일은 세계 간호사의 날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병원은 간호사들의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묻고 싶다. 환자로서 나의 건강을 지켜주는 간호사의 노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같은 노동자로서 병원 노동자 간호사의 일할 조건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함께 지켜보는 시민의 눈이 없다면 변할 것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원영 기자는 서울대학교병원 간호사로 대책위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태그:#박선욱, #간호사, #과로자살, #서울아산병원, #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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