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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앞에서 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고박선욱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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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사랑방 노란리본인권모임에서 '재난참사 피해자의 권리'라는 작은 자료집을 새로 발간했다. 세월호 참사를 인권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나누기 위해 2017년부터 공부해 온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픔도 아니고 피해자의 권리라니 어색하기도 하다.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내용도 많다. 우리 사회에서 쉽게 무시되거나, 거의 실현되지 않는 내용이라서 그럴 것이다. 

자료집에서는 재난참사를 당하고 난 뒤, 사건 현장 및 사고 순간에 '살아나올 권리'로부터, 생존자와 그 가족, 실종자와 그 가족, 희생자와 그 가족, 구조 및 지원활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권리를 두루 살피고, 마지막으로 진실, 정의, 안전, 회복, 기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

이 중 정의에 대한 권리는, 재난 참사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정의'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묻고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는 과정은 피해자 뿐 아니라 재난참사를 목격한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를 다시 쌓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런 정의 경험의 첫 출발은 사과일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로서는 자신이 재난으로 입은 피해와 고통이 나의 잘못이나 불운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권리를 산업재해 피해자 및 그 가족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 피해자 및 그 가족에게 정의의 권리에 대한 욕구가 더 뚜렷할지도 모른다. 재난참사의 경우, 책임자가 매우 간접적이고 폭넓을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산업재해는 아주 분명한 사고의 책임자가 있는 경우가 많고, 사고를 방치한 채 회사를 경영해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는 사람이 분명하다. 그러니 산업재해 피해자 및 가족에게도 모든 회복의 출발은 안전하지 못 한 일터를 그대로 운영한 자들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일 것이다. 그 뒤 책임자를 처벌하고, 책임 있는 사과를 받는 것, 바로 그 책임 있는 자에게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정의와 회복의 권리에서 중추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기업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주, '재난참사유가족과 함께 하는 영화 <생일> 시사회'에 참석해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 시작 전 식사 자리의 이야기 도중, tvN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이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 이용관님은 "우리 아이 엄마는 CJ E&M, tvN에서 대표가 와서 고개 숙이는데도 사과도 안 받았습니다. 용서할 생각이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님의 어머니 김미숙님은 조금 의견이 달랐다. "사과는 받아야죠. 저도 사과는 하라고 했지만, 용서는 안 할 거예요. 용서는 못 하죠."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산재가 승인되고 나서도 병원이 사과 한 마디 없다는 이야기 끝에 나온 대화였다. 와서 사과를 해도 용서해줄 수가 없고, 용서가 되지가 않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서울아산병원 얘기다. 

기업살인법으로도 알려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하려는 이유
 
서울아산병원 근처에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서울아산병원 근처에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스티커가 부착되었다.
ⓒ 고박선욱공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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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3월 6일 근로복지공단은 서울아산병원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이 산업재해라고 인정했다. 2018년 2월 15일 박선욱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년만의 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서울아산병원이 신규간호사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중환자실 업무를 떠맡기며 과중한 업무를 부여한 것이 사망의 원인이라고 보았다.

간호사끼리의 괴롭힘과 갈등이 아니라, 안정적으로 교육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적절한 업무를 분담해주어야 할 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 해 발생한 사고라는 것이다. 명백하게 병원의 잘못임을 인정한 판정이다. 그런데도 한국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아산병원에서는 아직 사과나 유족에게 어떤 연락도 없다. 산재가 승인됐어도, 병원이 사과할 의무는 없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한국 기업들에서 꽤 흔하다. 2018년 1월 인터넷 강의업체 에스티유니타스의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과로자살'한 장민순씨의 유족도 회사로부터 공식적인 사과를 받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이 6개월 동안 회사는 지속적으로 회사의 책임을 부인하고, 고인을 모욕했다. 그러니 사과를 받더라도, 유가족이 그 사과에서 진심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사과를 받아도 용서가 되지 않고, 그 사과가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닐 수 있는데도 우리가 '책임 있는 사과를 받을 권리'를 계속 요구하는 이유는 그것이 피해자들의 회복의 출발점이 되고, 피해자들을 온전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책임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을 시작하도록 추동하기 때문이다. 
   
기업살인법으로도 알려져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는 이유도 이런 것이다. 기업이 스스로는 진짜 책임 있는 자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대산업재해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재해 사건은 특정한 노동자 개인의 위법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 내 위험관리시스템의 부재, 안전불감 조직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그래서 이런 사고의 책임은 안전관리의 주체인 경영자 및 그 기업 자체에 있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경영자나 기업의 책임을 묻지 못 하고, 일선 현장 노동자 또는 중간관리자들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수준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 실제 재난, 참사, 중대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경영자와 기업 자체가 책임지게, 처벌받게 하자는 것이다. 

이 법의 제정이 기업들에게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경각심을 높이고, 노동자와 시민에게 발생한 재해에 대한 책임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거꾸로, 거대 기업들에게 책임이 있는 사고에 대해 끝까지 사과를 받아내고 책임을 묻는 것은, 이런 법을 만들어 내는 데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서울아산병원의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꼭 제정해낼 것이다. 

지금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노동자의 죽음에 책임있는 모든 기업들이 깜짝 놀라도록,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http://bit.ly/서울아산병원사과하라

덧붙이는 글 | '고 박선욱간호사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산재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서울아산병원의 사과를 촉구하는 연속기고글을 싣습니다. 이번 기사는 공동대책위원회에 함께 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민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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