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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합창단 창단 기념 연주회가 열린 부산 민주공원 큰 방 첫 곡으로 레미제라블의 주제곡 '민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박종철 합창단 창단 기념 연주회가 열린 부산 민주공원 큰 방 첫 곡으로 레미제라블의 주제곡 '민중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사진 작가 전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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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만세~" "잘한다, 역시 잘한다."

지난 5월 26일 토요일 오후 9시경 부산 서구의 한 식당 주점 '소쿠리'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20여 평 주점과 바깥 골목에 놓인 탁자는 '박종철 합창단' 단원들과 그 일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점 안 벽걸이 텔레비전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불과 몇 시간 전인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을 했다는 놀라운 뉴스를 특보로 전하고 있었다.

"우리가 창단 기념 공연을 한 바로 오늘 2차 남북 정상회담이라니? 우리 공연 축하 선물치곤 너무 큰 거 아냐?"

밉지 않은 아전인수랄까? 실제로 창단 2년째를 맞은 박종철 합창단은 그날 오후 5시부터 한 시간 반을 민주공원 중극장에서 기념 연주회를 열고 온 참이었다.   

"미국이 뭐라 하건 일본이 뭐라 하건 우리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화합하면 되는 거야."
"외세도 외세지만 남이든 북이든 분단 현실을 자기네의 이해득실로 이용해 온 우리 안의 적들이 오히려 더 문제 아닐까?"
"그런 자들,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향한 정부의 힘겨운 노력을 다 위장 평화 쇼다 뭐다 하는데, 그래, 쇼라면 쇼라고 하자.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쇼를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으니까."

와, 남북의 정상 또 만났다!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이 공연 후 뒤풀이를 위해 온 주점에서 텔레비전의 특보 뉴스를 보며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다
▲ 와, 남북의 정상 또 만났다!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이 공연 후 뒤풀이를 위해 온 주점에서 텔레비전의 특보 뉴스를 보며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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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마당이 된 그날 밤의 그 주점

"아, 빨리 기차 타고 평양도 가고 백두산도 가고 유럽도 가고 싶다."

왁자지껄, 주점은 환희의 도가니라 할 만했다.

"와이래 좋노, 와이래 좋노~"

아리랑 타령에 춤까지 덩실덩실 추었으니 말이다.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라 뭇사람들보다 감성이 더 풍부해서인가? 아니면 다들 누구보다 평화 통일을 염원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서 그런가? 하기야 안보 불안 심리를 조장해온 '분단 고착' 세력을 제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6.12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선언에 가슴이 무너지고 분통이 안 터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그날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를 위해 주점을 찾은 박종철 합창단 사람들의 환호와 감격과 흥겨움은 아무래도 남달라 보였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박종철 합창단은 어떻게 탄생했고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또한 어떤 사람들일까? 하고 말이다. 우선 박종철 합창단의 '박종철'은 1987년 6월 항쟁의 한 기폭제가 된 그 박종철 열사이며 그는 부산의 혜광고 출신이라는 걸, 혹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말은 해 두자.

남성 합창단으로서 박종철 합창단이 창단된 것은 2016년 8월 16일의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촛불 혁명'이 시작되기 두 달여 전이다. 창단식은 단원으로 참여한 안하원 목사(59세)의 새날 교회(부산 개금동) 교육관에서 열렸다.

부산대 음악학과 이민환 명예교수(72세)가 지휘자로서 중심에 서고 독일에서 '불만 합창단'(지역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한 '불만'을 노래를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시민 합창단)을 관심 있게 본 바 있는 백영제 동명대 교수(65세, 합창단 단장)와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상임의장인 '좁은 길 교회' 박철 목사 (63세, 합창단 부단장)가 참여했다. 이외에도 부산 시민 단체의 활동가들, 평범한 직장인, 자영업자, 정당인, 목회자, 학자, 교사, 의사, 화가, 법률가, 방송국 PD 등이 함께하자며 모여들었다.

나이도 다르고 일터도 다르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노래 사랑 이전에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고 마음인 게 틀림없어 보인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와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향한 관심과 열정 말이다.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

"세상에 음치란 없습니다. 합창단엔 혼자 노래 잘하는 사람은 필요하지 않지요."

유일한 성악 전공자인 지휘자는 늘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노래는 잘하는 사람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단원 중에는 다른 합창단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도 있고, 대학 시절 유명한 노래패에서 이름을 날린 사람도 있으며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연대의 노래를 해 온 '민중 가수'도 최근에 입단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냥 함께 하는 사람들의 선한 생각과 마음 씀씀이가 좋아서, 또 노래가 좋아서 온 사람들이다. 어쨌거나 합창단에는 무지개 일곱 빛깔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셈이다. 그 수가 창단 당시엔 20명 남짓했지만 지금은 40명을 웃돈다.

주점의 안과 밖도 하나?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은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주점의 안과 밖도 하나? 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은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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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합창단은 창단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엄청난 군중 앞에 서야 했다. 전국에서 232만 명이 모였다는 박근혜 퇴진 6차 촛불 집회의 날인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저녁, 부산의 서면 대로에도 촛불 집회가 열렸었다.

참여 시민이 무려 20만 명이라 했던 그날, 박종철 합창단은 트럭 위에 꾸며진 무대에 올라 데뷔 공연을 했다. 그들은 "너는 듣고 있는가, 분노한 민중의 노래 / 다시는 노예처럼 살 수 없다 외치는 소리"로 시작하는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제곡 <민중의 노래>로 포문을 열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우리의 소원은 탄핵' 등 일부 개사한 노래들도 불렀다. 

그날 이후 박종철 합창단은 발걸음이 바빠지는 행복한(!) 운명에 처한다. 2017년 일 년의 활동 일지를 일별해 보자.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식 (1.14, 서면의 소민아트센터), 3.1절 평화대회(정발장군 동상 앞) , 세월호 3주기 추모 문화제 (4.15, 부산역 광장), 부울경 민주열사합동추모제(4.28, 서면), 6월 항쟁 30주년 기념식 및 문화제(6.10, 광복동 미화당 거리),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 음악회(9.23, 송상현 광장), MBC. KBS 파업 농성 지지 방문 공연(10.16, MBC 방송국), 제1회 전국민주합장축전 (10.21, 서울시청 다목적홀).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된 연주회

5월 26일의 창단 기념 연주회에서 합창단 전체가 부른 노래는 모두 12곡 (앙코르 송 3곡과 독창, 사중창까지 합치면 모두 19곡)으로 이 중에서도 세 번째 무대에서 불린 3곡 (<더 인터내셔널>, <바르샤바 시민>, <붉은 깃발>)은 올해로 탄생 200주년이 되는 카를 마르크스에게 바쳐진 노래로서 청중들에게 약간의 놀라움을 선사했을 것 같다.

"인터나쇼날은 인류의 희망/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끝나는 '더 인터나쇼날'이 그렇고 "바리케이드 앞으로 바리케이드 앞으로/ 노동자 인민이여 전진하세"로 끝나는 '바르샤바 시민'이 그렇다. 하지만 노예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삶에 깊은 인간적 연민과 혁명에의 열망을 평생 버리지 않았던 마르크스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철학자로 기억하는 관객에겐 어쩌면 통쾌한 공감을 불러일으킨 노래이기도 했을 것이다.

연기자 대기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합창단원들 세월호 노래 '잊지 않을게'와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르기 전 노란 머플러들을 목에 둘렀다.
▲ 연기자 대기실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합창단원들 세월호 노래 '잊지 않을게'와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르기 전 노란 머플러들을 목에 둘렀다.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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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단원들이 일제히 노란 머플러를 메고서 <순이야>에 이어 4.16 세월호의 노래 <잊지 않을게>와 <내 영혼 바람되어>를 부를 때 관객들은 숙연해졌고, 1987년 체제를 탄생시킨 민주 항쟁의 피 나는 역사, 저 아름다운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맨 첫 곡인 레미제라블의 <민중의 노래>를 비롯하여 <그날이 오면>, <광야에서>, <민들레처럼> 등)이 울려 퍼질 땐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 곡인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은 기념 연주회의 타이틀이다. 또한 이제 어렵사리 첫걸음을 땐 남북이 화합과 평화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와 난관들을 함께 해결하고 넘어서야 한다는 엄연한 사실을 생각하게 만드는 노래였다.

"해 떨어져 어두운 길을 서로 일으켜주고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 아픈 다리 서로 기대며
함께 가지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합창단이 미리 준비했을 앙코르 곡은 익히 알려진 북한 노래였다. <반갑습니다>, <휘파람>, <다시 만나요>. 중강당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다시금 힘찬 박수를 보냈다. 무대와 객석은 공연 내내 그야말로 하나였다.

"진정한 예술가는 사회변혁 향한 신념이 있어야"

남북 화해, 평화 통일과 박종철 합창단의 건승을 위하여! 사진 중앙의 백발의 신사는 이민환 지휘자, 맨 오른쪽은 백영제 단장. 공연 기념 특별 케잌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단원이 정성껏 준비해 왔다.
▲ 남북 화해, 평화 통일과 박종철 합창단의 건승을 위하여! 사진 중앙의 백발의 신사는 이민환 지휘자, 맨 오른쪽은 백영제 단장. 공연 기념 특별 케잌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단원이 정성껏 준비해 왔다.
ⓒ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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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고령이 무색하게도 여느 젊은 단원들 이상의 뜨거운 마음으로 합창단을 이끌고 있는 이민환 지휘자에게 그 힘과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를 물었다.

"오래전부터 음악으로 사회 운동을 하고 싶었지요. 이제는 몸으로 때우는 운동이 아니라 문화운동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무릇 예술가라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힘을 써야 해요. 사회변혁을 향한 신념이 없는 예술가는 진정한 예술가라 할 수 없습니다. 종종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합창단이 없다면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남과 북의 길이 열리면 우리 합창단을 이끌고 평양의 광장이나 무대에서 노래하고 싶습니다. 모든 단원이 다 꼭 같은 마음일 겁니다."

끝으로 남성 합창단인 박종철 합창단에서 빼놓아서는 안 될 세 인물이 바로 여성이라는 사실은 밝혀 놓도록 하자. 남편들도 단원인 조효정, 김인숙 두 반주자와 합창단의 살림과 온갖 뒷바라지를 도맡아 하는 김미경 총무가 그들이다(도예가인 김 총무는 부산의 시민단체 '민들레'의 핵심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날을 꿈꾸는 합창단

창단 연주회 포스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노래 제목이 선명하다
▲ 창단 연주회 포스터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란 노래 제목이 선명하다
ⓒ 윤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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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합창단의 사람들이 이루고 싶은 꿈과 소망을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한마디는 해 두자. 그들이 북녘땅의 거리에서, 평양의 광장에서 <반갑습니다>도 눈물을 흘리며 부르고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도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덧붙이는 글 | 박종철 합창단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노래 사랑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를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든 환영한다는 의미다. (연락처 : 010-3556-3020 단장 백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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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현직 교사이다.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으로서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 필진이기도 하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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