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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수호대가 텀블벅에서 올려 627만 원을 모은 '몰카 금지 응급 키트'
 화장실수호대가 텀블벅에서 올려 627만 원을 모은 '몰카 금지 응급 키트'
ⓒ 화장실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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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에는 송곳과 실리콘, 마스크 등이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가 있다. 언뜻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이것은 화장실 용품이다. 사용법은 이렇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 마스크를 쓴다. 내부 칸에 들어가면 작은 구멍이나 불법촬영 카메라가 설치되었을 만한 곳을 찾는다. 송곳으로 카메라 렌즈를 부수거나 실리콘으로 구멍을 막고 스티커를 붙인다.'

이 용품들은 텀블벅 후원으로 구입한 이른바 '몰카 금지 응급 키트'로, 무려 목표금액의 627%에 이르는 후원금을 달성했다. 화장실 불법촬영 피해여성이 직접 만든 '화장실 수호대'의 기획이다.

이렇게까지? 라며 비웃거나 놀라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여성들은 매일 이렇게까지 하며 살아간다. 어느 순간 나를 향한 범죄가 있을지 모른다는 것, 이것이 여성으로서 느끼는 일상의 공포다. 하지만 이 키트로도 안전함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일반 나사와 몰래카메라는 육안으로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이외에도 문고리, 변기 내부, 벽의 작은 구멍, 휴지통 등 불법촬영 카메라가 적발되었던 곳은 숱하게 많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상에서 겪는 숱한 범죄 공포. 이중 불법촬영물은 여성의 삶 속의 수많은 위협 중 극히 일부일지 모르나, 피해자의 삶 자체가 무너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이다.

'인격살인'으로 불리는 불법촬영물 피해는 실제 '사회적 살인'으로 이어진다. "피해여성에게 연락하면 가족이 받는 경우가 많다"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의 인터뷰는 그 피해로 인한 고통을 가히 짐작케 한다. 세상에 더 이상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기에, 그 가족이 연락을 받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범죄는 비단 피해당사자 뿐 아닌 모든 여성들에게 일상에의 공포를 새겨 넣는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부터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행위까지, 심지어 가족조차 안전하지 않다(아내는 물론 여동생과 친모까지 불법촬영한 남성이 검거된 바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집 밖에서는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아무도 믿지 않고 혼자 살면 될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조차 안전하지 않다. 연애도 섹스도 하지 않고 집에 숨어 있더라도 사이버성폭력에 노출된다. 이른바 '지인능욕' 사이트. 어떤 인물사진이든 여성 나체 사진에 합성하여 포르노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영상물들은 '리벤지(복수라는 뜻) 포르노', '능욕사진'이라는 이름으로 공유된다. '복수'와 '능욕'이라는 단어에는 그 영상물이 당사자에게 끼치는 피해를 분명하게 알고 있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에 대한 '복수'이고, 무엇 때문에 '능욕'하는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은 죄, 밥을 사줬는데 나랑 사귀지 않은 죄, 나랑 사귀기에는 너무 잘난 죄, 그냥 여자인 죄. 이러한 죄목을 달고 올라온 영상 속 피해여성은 온갖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험한 말들로 이어진 댓글과 함께 집단에게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며 '능욕'당하는 것이다.

최근 핫이슈로 떠올랐던 '홍대 누드 크로키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이례적인 빠른 수사와 엄정한 대처를 보였고, 2차 가해도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며, 긴급체포된 가해자는 구속되어 살인범처럼 포토라인에 세워졌다. 언론은 사건의 심각성을 부각하고, 피해자가 얼마나 부당한 피해를 입었는지에 집중하는 기사와 수사 상황을 연일 실시간 보도했다. 마치 불법촬영범죄에 대한 훌륭한 대처 매뉴얼과도 같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례였다. 지금껏 이렇게 해달라고 절규하던 수많은 피해여성들에게 들려오던 답변과는 달랐다.

"이런 거 못잡아요." "해외사이트라서 검거가 어려워요." "본인 맞아요? 본인 아닌 거 같은데 본인인거 증명할 수 있어요?" 피해여성들이 직접 증거와 자료를 수집해 가져가도 답변은 그대로였다. "이런 사소한 것 말고 묵직한 것 위주로 가져오세요." "저희가 잡아서 처벌해도 가해가자 누구인지는 못알려드려요. 가해자 인권보호라서."

수사가 진행된들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女수영 국가대표 탈의실 몰카 5명 모두 무죄', '女 183명 몰카 찍은 의전원생, 재판조차 안넘겼다', '여성 치마 속 몰래 80번 찍은 30대, 법원서 집행유예', '몰카 7개월간 49번 찍었는데 무죄', '여자화장실 침입 휴대전화로 몰카 집행유예', '버스․지하철․화장실 무차별 몰카 20대 집행유예', '건너편 원룸 여성 몰카 상습 촬영한 50대 집행유예', '버스정류장․지하철 몰카 460차례 회사원 집행유예', '女화장실 몰카 찍은 고시 3관왕, 항소심도 집행유예', '간호사 알몸 촬영한 몰카 의사 집행유예' 등, 관련한 기사 헤드라인을 넘치게 찾을 수 있다. 

실제 2017년 대검찰청 범죄분석에 따르면 '몰카(카메라이용촬영)'를 이용한 범죄 검거율은 94.6%이다. 하지만 이중 90%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10건 중 9건이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벌금형 역시 77%가 300만 원 이하에 불과했으며, 성범죄자 신상정보등록에 벌금형을 받은 '몰카' 초범은 제외된다. 불법촬영 범죄자 중 98%는 남성이며, 1.4%만이 여성이다.

이처럼 지금껏 피해자가 여성이었던 때 경찰 및 국가의 소극적인 대응을 볼 때, '홍대 사건'과 같은 강력한 대처가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음에 분노하는 공감대는 파도처럼 확산되었다. '남성이 몰카를 당하면 범인이 체포되고, 여성이 몰카를 당하면 영상이 공유된다'는 말이 SNS에 퍼져 나갔다.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참여자는 3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홍대몰카 편파수사' 규탄 여성시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홍대몰카 편파수사' 규탄 여성시위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피해자가 남성이어서 경찰이 이례적으로 강경한 수사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공정한 수사와 몰카 촬영과 유출, 유통에 대한 해결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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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유명 유투버가 SNS를 통해 본인의 성폭력 피해를 고백했다. 순식간에 세상은 다시 '홍대 사건'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 석 자로 사건을 각인하기 시작했다. 여성은 영상을 통해 "나를 살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홍대 사건'에서 피해자의 고통에 집중하고 2차 가해를 걱정하던 언론은 다시, 포르노를 연상시킬 만큼 구체적이고 자극적인 기사들로 당시 피해 상황을 묘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남성들은 관련 영상을 찾아 뒤지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실명은 포르노 사이트 검색어 목록에 올랐고, 포털에서는 OOO 사진, OOO 영상, OOO 속옷이 연관검색어로 떠올랐다. 원하는 영상을 얻지 못한 이들은 피해자를 공격했다.

다른 측에서는 본 사건을 엄중 수사하라는 국민청원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이 청원에 참여했음을 인증한 인기연예인 수지에게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었다. '무식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행동했다'는 악플을 넘어서서 급기야 '연예인 수지의 사형을 청원한다'는 국민청원에까지 이르렀다. 사건의 본질은 명백한 성폭력을 유희나 쾌락 쯤으로 '소비'하도록 용인하는 사회와, 이것이 거래될 수 있게 하는 견고하고 치밀한 '시스템'의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피해여성이 드러나는 순간 모든 본질은 흐려진다. 입증의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고, 공격받는 것은 피해자가 된다. 끔찍한 피해 상황은 사람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미투 때마다 우리가 반복해서 목격했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불법촬영물은 간단한 검색만으로 줄줄이 찾아볼 수 있다. 단순히 영상물 뿐만이 아니다. 강간 범죄 영상을 올리면 '존경스럽다'며 박수를 보내고, '야동후기'에 찰지다며 감탄한다. 나도 해보겠다며 구체적 범죄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심지어 불법촬영 피해를 입고 자살한 여성들의 영상을 '유작'이라 부르며 죄책감 없이 소비한다. 명백한 범죄를 여과 없이 '쾌락'으로 받아들이는 관람자들. 과연 이것은 '일부'의 일이라며 치워놓을 수 있는 것일까.

삶을 망치는 범죄행위가 처벌받지 않고 문화 쯤으로 용인되는 사회에서, 범죄는 더 이상 범죄가 아니다. 성추행 가사로 재판을 받기 위해 법원에 나온 모 음악인은 새 앨범 홍보와 김치(한국여성을 혐오하는 상징)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자신의 범죄에 대해 전혀 심각하지 않은 이러한 태도는, 자신에 공감할 숱한 이들의 지지를 믿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것을 여전히 '일부'라고 말할 수 있을까.  

5월 17일은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범인은 화장실에 1시간 30분간 숨어 남성 6명을 지나쳐 보냈고, 여성을 골라 살해했으며, 여자들이 자신을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명백히 여성을 타깃으로 한 범죄였다. 여성 대상 범죄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불과 한달 전 전주 신시가지에서도 50대 남성이 퇴근하던 여성을 화장실에서 성폭력 시도 끝에 칼로 찌르고 달아난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에 대한 포스팅에 자신의 여자친구를 태그하고 "조심해"라는 댓글을 단 남성이 있었다. 그렇다. 여성들은 매일 매순간 조심하고 조심한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조심하면 될까? 출근을 안하면 될까? 술을 안먹으면 될까? 화장실에 안가면 될까? 대체 왜 여성이, 피해자가, 점차 자신의 삶을 축소당하고 공포를 느끼며 숨어 살아야만 하는가.

불법촬영 등으로 인한 사이버성폭력과 강남역 살인사건, 이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다. 여성들이 매일 겪는 일상 속 공포의 일부분이다. 그 공포를 만드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다. 범죄를 범죄로 여기지 않는 문화. 특정한 성별, 특정한 집단에게는 '이렇게 대해도 된다'는 암묵적 용인. 여성들이 '인간'이 아닌 오직 '성적 대상'으로 소비되는 방식과, 그것이 인정되는 사회. 사회적으로 허락된 그것이 범죄를 만든다.

피해여성에게 우리가 느끼는 것은 연민이 아니다. 연민은 내가 아닌 타인에게 느껴지는 마음이다. 이것은 '너는 나'라는 공감이다. 오늘도 내가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것. 강남역에서, 신시가지에서, 불법촬영에서, 단지 운좋게 살아남았다는 것. 이 우연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른다는 것. 이것은 공포이자, 동시에 그만큼 깊은 분노이다. 이 분노의 힘은 꾸준히 자라나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 2주기를 맞아 전국 동시다발 집회가 열렸다. 5월 19일 서울에서는 '남성무죄, 여성유죄'를 내걸고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열렸고, 예상인원의 5배가 넘는 1만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서 '여자도 국민이다', '자살자가 몇 명이냐 책임지고 보호하라', '못했던 게 아니라 안했던 거네',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살아있는 여성들이 외치는 목소리는 결코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라는 공감이, '우리'라는 연대감이, 점점 굳건한 힘으로 자라나 스스로의 삶을 지켜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전북교육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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