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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8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규탄 시위를 벌였다.
 모두를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소속 단체 회원들이 8일 오전 청와대앞에서 "정부의 낙태죄 관련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 입법예고안이 여성에 대한 처벌을 유지하고 건강권, 자기결정권, 사회적 권리 제반을 제약하는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규탄 시위를 벌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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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할 최전선에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낙태죄가 얼마나 여성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지 지난 몇 년간 수없이 말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돌아오는 질문은 한결같습니다.

'그래서 몇 주까지 낙태하면 된다는 것이냐.' 

이번 정부의 입법안도 마찬가지입니다. '낙태죄'라는 본질은 제쳐 두고, 임신 14주와 24주에 선을 긋고 처벌의 기준을 세웠습니다. 다시 사람들이 묻습니다.

'임신 24주까지라면 이제 되는 것 아니냐.'
'그러면 대체 몇 주까지 하겠다는 것이냐.'


그 질문은 모두 틀렸습니다. 낙태죄 존치를 말하는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건, 임신중지를 가장 원하지 않는 이가 바로 여성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여성도 임신중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를 하라고 장려하고 조장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여성으로서, 의사로서, 진심으로 낙태 없는 세상을 간절하게 바랍니다. 그 자체가 여성의 몸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권을 말하는 자들에게

그러나 안타깝게도 원치 않는 임신은 반드시 발생합니다. 그 어떤 피임법도 100%는 없습니다. 매년 세계에서 발생하는 임신의 절반은 원치 않는 임신이고, 그중 절반은 임신중지됩니다. 합법이든 위법이든 임신중지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여성은 낙태죄라는 법 때문에 임신을 지속하지 않습니다.

강력한 낙태금지법이 시행된 국가에서 임신중지가 오히려 증가해 온 사례들은 숱하게 많습니다. 그 임신중지가 안전하지 않을 때, 여성의 건강은 심각하게 위협받습니다. 매년 안전하지 못한 임신중지로 인해 850만여 명이 합병증을 겪고 5만여 명의 여성이 사망합니다. 안전한 임신중지만 가능하다면 죽지 않아도 될 여성들입니다. 그리고 안전한 임신중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합법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합니다. 

낙태죄가 명시된 법은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몇 주까지냐고 묻는 것은, 어디까지 처벌할지 선을 긋는 것은, 반드시 그 선에서 밀려날 사람들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어떤 여성도 원치 않는 임신을 24주까지 일부러 지속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를 견디면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부러 법령에 있는 제한까지 기다릴 여성은 없습니다. 만약 그 제한을 넘기는 여성이 있다면, 그 경우에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을 취약한 조건에 놓인 여성입니다. 

학교에서 징계받거나 소문날 것이 두려워서 배가 불러올 때까지 아무에게도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한 청소년 여성. 친권자에게 폭력을 당하거나 탈가정을 해서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구할 수 없는 청소년 여성. 한국 남자와 결혼한 뒤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임신과 출산을 강요당했지만, 혼자 병원조차 갈 수 없었던 이주민 여성. 성폭력 피해를 입고 임신 사실조차 몰랐다가 배가 불러와서야 다른 사람에 의해 임신임을 알게 된 지적장애 여성 등 또 어떤 여성이 이 선에서 밀려날 수 있을까, 모든 경우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그 여성들일수록 가장 취약하고, 위험에 내몰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 여성들의 취약성을 배제하고 처벌하는 법이 있다고 해서, 임신중지는 결코 예방되지 않습니다. 불법임을 감수하고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만큼 더욱 심각하게 건강이 위협받는 상황에 놓일 뿐입니다. 우리는 24주 이상의 태아를 낙태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여성도 임신중지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도록,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라는 의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모든 여성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임신중지에 대한 어떤 장애물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장 취약한 여성부터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2019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나오자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던 여성단체 회원들이 환호를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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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여성들이 죽음의 위협에 놓이는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묻습니다. 감히 생명권을 말하는 자들에게 묻습니다. 임신중지를 예방하기 위해 과연 국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취약한 여성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이 여성들이 이토록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기 위해 국가는 24주라는 선을 긋기 전에 무엇을 했습니까. 성폭력으로 인한 임신의 낙태를 '허락'하기 전에, 국가는 성폭력이 더는 발생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사회경제적 사유의 낙태를 '허락'하기 전에, 사회적 경제적 조건을 걱정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국가는 무엇을 했습니까. 부모의 장애를 이유로 낙태할 수 있다는 우생학적인 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이 국가는, 장애를 가진 아이도 마음 놓고 낳아 키울 수 있도록 무엇을 했습니까. '낙태죄 폐지되면 콘돔 안 써도 되겠네'라는 SNS 댓글이 넘쳐나는 나라, 성행위 중에 여성 몰래 콘돔을 빼는 스텔싱 범죄를 자랑하는 후기가 넘쳐나는 나라에서 국가는 원치 않는 임신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지금까지 수천 번, 수만 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위해 외쳤던 여성들의 외침을 모두 묵살하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을 방치하고 침묵하고 눈 닫고 귀 닫고 비웃던 사회가, 진정한 '낙태 없는 사회'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던 국가가, 어떻게 감히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해 온 여성 앞에서 생명권을 논할 수 있습니까.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생명을 중시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어떤 여성도 불법적인 임신중지로 죽어가지 않도록, 누구도 임신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이유로 건강에 위협받지 않도록, 이제 처벌이 아닌 보장을 위한 논의가 확산되어야만 합니다. 모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낙태는 허용되고 어떤 낙태는 처벌되는 것이 아니라, 14주와 24주라는 일방적인 기준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그러한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방안을 먼저 고심해야 합니다.

처벌의 기준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임신중지해도 좋을 태아를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임신중지를 보장하고 동시에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낙태죄는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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