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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양평의 한 버섯농장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 경기도 양평 버섯농장 앞에서 항의하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양평의 한 버섯농장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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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딱 이틀 쉬었다. 점심시간 빼고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꼬박 9시간 30분씩 일했다. 그렇게 15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적어도 50만 원은 더 받았어야 했다. 항의했다. 돌아온 사장님의 대답은 "내가 너한테 집과 쌀, 전기, 물, 가스를 줬다"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월급에서 13만 원을 떼이면서 산 곳은 화장실도 없는 비좁은 컨테이너 박스였다. 창문을 열면 분뇨 등의 냄새가 진동했다. 침대도 없어 바닥에서 잤다.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에 의존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곳에서마저 살 수 없다. 일하다 손가락을 다쳤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온 24살 A씨는 오른쪽 검지 손가락을 구부리지 못 한다. 지난해 3월 8일 10kg이 넘는 버섯박스를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다, 벨트 톱니바퀴 사이에 손이 끼었다. 안간힘을 써, 손을 뺐다. 검지가 두 번째 관절까지 으스러져,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었다. 결국 손가락에 철심을 박았다.

다친 손가락을 가지고 그는 느타리버섯이 든 박스를 3~5m 높이까지 들어 올리는 일을 해야 했다. 다치기 전에도 하던 일이다. 고용노동부에서 조사가 나오자, 업체 사장은 "손가락이 다쳤으니 버섯박스를 들어 올리고 내리는 일이 아닌 앉아서 할 수 있는 버섯 따는 일을 시키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항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일 안 할 거면 나가라"였다. 버티다, 버티다 다친 손으로 더는 박스를 들어 올릴 수 없어 3년을 다닌 경기도 양평의 버섯공장을 그만뒀다.

"스티로폼 창고·컨테이너 박스는 사람 집이 아니다"

이주노조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이주노조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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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8일 경기도 여주·양평의 한 느타리버섯 공장 앞에 섰다. 자신이 일했던 곳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비슷한 곳이다.

이주노조, 수원이주민센터, 지구인의 정류장, 민주노총, 이주공동행동 등은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이하 투투버스)'를 꾸려, 5월 한 달간 이주노동자들이 고통 받으며 일하고 있는 전국의 사업장과 그 사업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노동청을 방문하고 있다. A씨를 포함한 투투버스 일행이 이날 찾은 곳은 느타리버섯을 공장식으로 재배, 포장하는 업체였다. 해당 공장 맞은편에는 컨테이너 창고 3~4개가 쭉 늘어서 있었다.

투투버스 일행은 이날 낮 12시 30분쯤 공장 입구 공터에 자리 잡고, 집회를 열었다. A씨가 마이크를 잡고 캄보디아어로 "우리 사장님은 위험한 스티로폼 집, 컨테이너 박스에 살게 하면서 임금의 8%를 가져갔다"라며 "내가 일한 곳뿐 아니라 이곳도 그런 것 같다"라고 했다.

캄보디아어가 공장 앞에서 울려 퍼지자 버섯공장에서 일하던 이주 노동자들 2~3명이 눈치 보듯 얼굴만 쑥 내밀어 집회를 지켜봤다. 몇몇은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재빨리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컨테이너창고에서 점심을 먹던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2명도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오지 그러냐"라고 묻자 그는 어눌한 한국말로 "사모님 눈치 보여"라며 "못해"라고 했다. 창문 너머로 들여다 본 컨테이너는 창고가 아니었다. 이들의 집이었다.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여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하며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 컨테이너박스에 사는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여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하며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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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여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하며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 이주노동자의 컨테이너박스 집 이주노동자가 경기도 여주의 한 버섯농장에서 일하며 열악한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 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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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커튼 형식으로 매달린 이불 2~3개가 공간을 나누고 있었다. 한 쪽에는 침대 하나가 있었다. 플라스틱 바구니 위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간이' 침대였다. 침대 머리맡 반대쪽에는 사람이 오갈 수 있을 정도의 큰 창문이 있었다. 그 창문으로 이 창고 같은 집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서인지 창문 바로 앞에 옷걸이를 설치해, 옷더미로 가렸다.

집세가 얼마일까. 그들은 "안 내"라고 답했다. 진짜일까. 하루 근무시간이 얼마냐고 물었다.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10시간 일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 달에 3번 쉬어"라며 "150만 원"이라고 했다. 27일을 10시간씩 일해서 받는 돈이 150만 원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으로만 계산해도 203만3100원을 받아야 한다. 약 50만 원이 부족하다.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지원하는 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대표는 "농장의 노동자들이 최소 267.5시간에서 277.5시간을 일하고 있다"라며 "약 59만에서 51만 원이 부족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족한 금액만큼 집세 등으로 가져가고 있을 것이다"라며 "몇몇 노동자들이 사장에게 금액이 적다고 항의하자, 사장이 '부엌도 쓰게 하고 집도 주고 쌀도 줘서 그렇다'라고 했다고 들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노동자들이 한국말이 서툴러 자신들이 내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3월부터 시행한 '외국인 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에 따르면 이주 노동자의 서면 동의가 있으면, 숙식비를 월 통상임금에서 최대 20%까지 사전 공제할 수 있다. 아파트, 단독주택, 다세대 주택 등은 월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그 밖의 임시 주거시설은 최대 13%까지 가능하다. 식사를 제외한 숙소만 제공하면 각각 15%, 8%다.

컨테이너는 불이 붙으면 빠르게 타면서 유독가스를 내뿜는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져, 화재에 취약하다. 2013년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가 이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주거실태를 조사한 결과, 일반 주택 다음으로 컨테이너 거주가 많았다.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일어났던 이주 노동자 숙소 화재는 대부분 컨테이너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숙박비 징수 기준만 있지, 숙소 실태가 어떤지 점검하고 관리·감독하는 법정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이주 노동자들이 난방 시설, 화장실 등이 갖춰지지 않은 비닐하우스, 가건물 등에 사는 것을 정부가 사실상 방치·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조 섹알마문 수석부위원장은 "사장이 '갑', 이주노동자는 '을'인 상황에서 집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라면서 "마음먹고 항의해도 대부분이 '(이 집에) 있으려면 있고, 아니면 니네 나라에 가라'라고 한다"라고 밝혔다. 그는 "농촌 같은 경우, 살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아 집이 너무 안 좋아도 한 달에 20만 원씩 내며 울며 겨자먹기로 사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하루 10시간 일했는데, 계약서도 임금도 8시간치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숙식비를 빼더라도, 최대 27만 원 정도 월급에서 빠져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받지 못하는 돈은 50만 원이 넘는다. 김이찬 대표는 "실제 노동시간과 근로계약서 안에 명시된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농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이주 노동자들이 한 달 평균 280시간 일을 한다"라며 "지난해 노동부가 농업 종사자의 노동시간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평균 280시간으로 나왔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실제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씩 26일 일하는 208시간으로 돼 있다"라며 "전형적인 노동 착취"라고 비판했다.

한국에 온 지 2년 됐다는 캄보디아 남성은 "여주에 있는 한 버섯농장에서 일을 했는데, 하루 10시간씩 일했다"라며 "한 달에 딱 2일 쉬었다. 그런데 4개월 이상 임금을 받지 못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매일 10시간씩 일했는데, 사장님은 8시간도 안 되게 계산해서 준다"라며 "제대로 계산해서 임금을 달라"라고 호소했다.

이어 투투버스 일행은 "노동시간 사기, 갈취 중단하라", "스티로폼 창고는 사람집이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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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버스 일행의 집회를 내내 지켜보던 공장 관계자에게 이주 노동자의 숙소 상태에 대해 묻자, 그는 "안전하고 좋은 곳에 살면 좋다"라면서도 "저분(이주 노동자)들은 떠나면 그만이지만, 사업주는 빚더미에 오른다"라고 말했다. 장시간 근로에 대해서도 "근로자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하면 되지만 공장 운영하는 사람들은 1~2시간씩 더 일찍 일어나 일하러 간다"라며 자신들도 힘들다고 했다.

시골에서 농사 하며 사는 게 힘들다는 그는 임금에 대해서도 "돈을 안 주면 어떻게 일을 시키나"라며 "공장마다 체크해서 돈을 다 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나갈까봐 (그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라면서 "개선할 점이 있으면 개선해야 한다"라고 했다.

투투버스 일행은 지난 10일 해당 사업장을 ▲임금시간 사기 ▲근로계약서 미교부 ▲건강보험 미가입 등으로 성남노동청에 고발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국 많은 농장들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투투버스는 5월 한 달, 전국을 돌며 이들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태그:#투투버스, #이주노동자, #버섯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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