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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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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오토바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만, 대형 오토바이를 사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웅장한 소리를 위한 머플러 교환인데,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며칠 전, 두물머리로 바람이나 쐬고 온다며 엄마랑 구의사거리를 지날 때였다. 대형 오토바이 20여 대가 굉음을 울리며 워커힐 쪽으로 좌회전을 받아 여섯 대 정도가 지나니 신호가 바뀌었다. 갑자기 사이렌을 다급히 울리며 양 옆으로 오토바이 두 대가 튀어나가 신호를 받아 진입하려는 차량을 막아선다.

가로막힌 차들이 빵빵거리며 손가락질을 해대도 당당한 모습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차들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버지 역시 누구보다 오토바이를 사랑하고 즐기지만 이건 아니다 싶더구나.

나의 존재가치는 내가 아닌 네가 있음으로서 비로소 발현된다.

자기만족은 말 그대로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일에 대한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일 터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있으며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만족하며 그것이 자신과 남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때 느끼는 자기만족이야말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지 싶다.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닌데? 아, 이제 생각났다. 얼마 전 못 보던 가방 하나를 들고 와서 자랑하던 네 모습을 보며 의아했는데, 엄마 말에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너에게 꼭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구나.

"저 가방 짝퉁이야. 쟤가 언제 사치 부리는 거 봤어? 아직도 자기 딸을 몰라?"

다른 집 아이들처럼 사치를 안 부리고 아버지가 사용하던 노트북을 주어도 노트북 생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이나 엄마랑 옷을 사러 가도 비싼 옷을 골라주면 마다하는 네가 한편으론 안스럽고 또 한편으론 무척 고맙기도 했다.

몇 해 전 아버지 생일선물이라며 백화점으로 시계를 사러 갔던 일 너도 기억할 테지. 아버지 취향을 잘 아는 네가 굳이 비싼 시계를 들고 이걸로 해야 한다며, 최소한 10년은 차고 다녀야 할텐데 마음에 들어야 한다며, 자신에게 쓰는 돈은 그렇게 아까워하는 딸이 굳이 비싼 시계를 할부로 사주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짠하더구나.

행복이라?

아버지 구두 신고 다니는 거 봐서 알겠지만 10여 년 전 네가 첫월급 타서 사준 구두가 아직도 거의 새 것이나 다름 없다. 아까워서 신을 수가 있어야지!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챙길 줄 알고 소소한 일에도 기뻐할 줄 알며 일상의 작은 일에서도 행복해하는 아버지의 작은 딸, 과연 행복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겠나?

"그런데 얘야, 네 언니는 아버지 생일 날, 꼭 아버지가 징징거려야만 선물을 하고 그러더라? 선물을 해도 아버지가 정말 갖고 싶은 게 아니고 평소 제가 좋아하는 이상한 걸로 선물하더라? 언니 만나면 슬쩍 한마디 해주라. 아버지 생일 선물은 현금으로 드리라고. 그래서 아버지 사고 싶은 걸 사게 하라고. 알았지?"

시인 김남주 선생의 시 하나 감상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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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캐는 처녀가 있기에 봄도 있다

김남주

마을앞에 개나리꽃 피고
뒷동산에 뻐국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꽃피고 새만 울면
산에 들에 나물캐는 처녀가 없다면

시냇가에 아지랑이 피고
보리밭에 종달새 우네
허나 무엇하랴 산에 들에
쟁기질에 낫질하는 총각이 없다면
노동이 있기에
자연에 가하는 인간의 노동이 있기에
꽃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산에 들에 나물캐는 처녀가 있기에
산에 들에 쟁기질하는 총각이 있기에
산도있고 들도 있고
꽃 피고 새가 우는 봄도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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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 딸, #시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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