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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32km 지점, 투르(Tours)는 프랑스 북서부의 루아르(Loire) 강과 셰르(Cher) 강의 합류지점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꽤 먼 거리지만 프랑스 고속열차 TGV를 타고 가면 한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루아르 강 중류의 물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강 연안에 자리한 투르는 누가 보아도 프랑스 같은 경치가 펼쳐지는 '프랑스의 정원'이다.  게다가 투르는 '잘 살고 잘 먹는다.(bien vivre et du bien manger.)'를 주요한 인생의 모토로 삼는, 멋진 도시철학을 가진 도시이다.

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다.
▲ 투르 역. 역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처럼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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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농소 성(Château de Chenonceau)를 방문하기 위해 들렀던 투르에서 나는 충격적일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TGV 열차에서 내리면서 보니 투르의 기차역부터가 향기 나는 거대한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열차가 드나드는 벽면마다 투르 주변의 옛 고성들이 마치 미술관 회화들처럼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나는 기차역에서 나온 후 투르의 가장 번화가인 나시오날 거리(Rue Nationale)를 지나 투르의 옛 시가를 찾아갔다. 나는 투르의 유명 성당을 찾아 걷다가 우연히, 계획에 없던 플뤼므로 광장(Place Plumereau)에 들어서게 되었다. 갑자기 만난 투르의 아름다운 구시가. 여행지로서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닌데도 나의 무지를 비웃듯이 정녕 아름다운 구시가가 역사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골목길로 이어지는 구시가는 중세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 투르 구시가. 골목길로 이어지는 구시가는 중세의 향기를 풍기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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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 구시가인 뷰 투르(Vieux Tours)의 중심지인 이 광장에는 중세시대에 지은 목조가옥들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 주변의 로마 시대 집터는 이 도시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고, 16~17세기에 지어진 목재 골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광장을 중세의 거리로 되돌려 놓고 있다.

투르 역사의 중심인 이곳에는 중세의 느낌을 주는 노천카페, 레스토랑과 맥줏집, 화랑,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투르 시내 중심가는 평일 낮이라 조용하지만 이 플뤼므로 광장의 노천카페 주변만은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구시가에는 카페, 레스토랑, 맥주집, 화랑들이 늘어서 있다.
▲ 구시가의 가게들. 구시가에는 카페, 레스토랑, 맥주집, 화랑들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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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투르의 이 구시가는 1870년 프랑스/프러시아 전쟁 당시 프러시아 군의 폭격에 파괴되었다가 정비되었으나, 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격으로 다시 한번 처참하게 파괴되었었다. 그러나 1960년도 구도시 재정비 정책에 따라 투르의 구시가는 현재와 같이 말끔하게 복구되었다.

구시가에는 거리마다 운치 있고 개성 강한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넘쳐난다. 현재 잘 복원된 방대한 구시가에서 플뤼므로 광장은 투르의 역사와 예술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15세기의 옛 건축물 안에서 현대의 먹거리를 파는 거리의 카페들은 조용한 휴식 공간 역할을 하고 있어서 카페만 보아도 투르의 강한 역사성을 느끼게 된다.

투르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 구시가의 아름다운 광장이다.
▲ 플뤼므로 광장. 투르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 구시가의 아름다운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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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노천카페 중에서도 투르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마르셀 카페(Le Café Marcel)를 찾아갔다. 나는 이 분위기 좋은 노천카페에서 광장을 향해 내놓은 테이블에 앉아 투르 시민들과 함께 휴식을 취하며 다리를 쉬기로 했다. 다행히 야외에 전망이 트인 좌석이 남아 있어서 자리를 잡고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과거 프랑스의 금융 중심지였던 곳에 수많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 플뤼므로 광장의 카페. 과거 프랑스의 금융 중심지였던 곳에 수많은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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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상당한 크기의 백색 머그 컵에 카푸치노가 가득 담겨 나왔다. 이곳의 카푸치노에서는 달달하지 않고 고전적인 맛이 났다. 나는 카푸치노와 함께 타르트(tarte)를 함께 주문해서 먹었다. 타르트는 따뜻한 카푸치노와 아주 잘 어울렸다.

플뤼므로 광장 주변에는 대학교들이 많아서 싱싱한 젊음을 느끼게 한다.
▲ 광장의 젊은이들. 플뤼므로 광장 주변에는 대학교들이 많아서 싱싱한 젊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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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낮 시간의 카페 안에는 많은 학생들이 있지 않고, 야외 좌석에 편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이 꽤 모여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프랑스어이지만 이곳 젊은이들이 말하는 프랑스어는 참으로 경쾌하게 들린다. 프랑스 내에서도 투르가 가장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지방이라는 소문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광장 주변으로는 높은 목조건물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외길 같이 이어지고 있다. 바닥이 안개비에 젖어 운치 있는 중세의 골목길들은 중세시대 영화 촬영세트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아직도 중세 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좁은 골목길 안쪽으로 다정한 연인이 함께 걸으면 참으로 어울릴만한 곳이다. 이 거리에서 중세의 정서가 느껴진다고 해도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광장 주변은 중세의 향기를 품고 있다.

중세시대에 이곳은 투르 상인들의 돈 거래가 이루어지던 넓은 광장이었다. 원래 투르는 루이 11세(Louis XI, 재위 1461년~1483년) 당시인 1461년부터 앙리 4세(Henri IV, 재위 1589년~1610년)에 의해 수도가 파리로 정해지기 전까지 중세 프랑스의 수도였던 곳이다. 그 영향으로 인해 현재도 투르는 루아르 강변 지역을 통칭하는 발 드 루아르(Val de Loire) 지역의 고성 순례 기점이 되어있다.

루이 11세가 투르를 프랑스 수도로 정했던 당시 이 도시는 사치와 소비의 극치를 이루는 도시이기도 했다. 5백여년 전에 플뤼므로 광장은 프랑스 수도의 금융 중심이었으니, 당시 이곳은 프랑스 전체의 중심으로서 사치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는 중심지였던 것이다.

광장을 둘러싼 중세거리는 새로 복원되어 샤또 뇌프(Château neuf) 구역으로 불리고 있다. 샤또 뇌프 주변의 목재 골조 건축물들은 전쟁의 상처 이후 복원된 곳이 많지만 전쟁의 참화에서 벗어난 일부 목조 구조물들은 지금까지도 과거의 건축물 안에 당당하게 살아 있다.

하프팀버 양식의 목조가옥에는 나무로 만든 인물상들이 남아 있다.
▲ 구시가 가옥의 목조각. 하프팀버 양식의 목조가옥에는 나무로 만든 인물상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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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뤼므로 광장 주변의 건축물들은 중세시대인 14~17세기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이 건축물들은 모든 기둥과 들보를 목재로 만들고 그 사이에 흙과 벽돌을 채워서 건설하는 하프팀버 (half-timber)방식으로 지어졌다. 이러한 반목조 건축방식은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집중적으로 지어졌는데, 건물 외벽에 나무 기둥이 드러난 건축 구조는 참으로 아름답고 운치가 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옛 가옥 외벽의 목조기둥에 수많은 중세시대 사람들이 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옛집에 장식된 인물 조각 중에는 건물 안에 살던 평범한 투르 시민들도 조각되어 있어 입가에 웃음을 띠게 한다. 한 할아버지는 왼 손에 책을 들고 있고, 장발의 한 남성은 서류를 들고 있으며 한 여인은 양손으로 무언가를 누르고 있다.

그런데 이 인물상들의 발 아래에 고개를 쳐들고 있는 기괴한 표정의 인물조각 표정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약간 섬찟한 느낌이 드는 이들은 집 안에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집안에 좋은 일들만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집집마다 재앙을 물리치는 인물들을 조각해 놓은 것이다. 집 앞에까지 왔던 사탄이 이 험한 인물상들을 보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가옥의 기둥을 장식한 작품에는 드래곤도 있고 그리스도도 있다.
▲ 구시가 가옥의 나무조각 작품. 가옥의 기둥을 장식한 작품에는 드래곤도 있고 그리스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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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조각상들은 긴 역사 속에서 비바람에 마모되어 팔이 잘려나가고 불구의 몸이 되기도 하였지만 불완전한 모습에 나름의 미감이 있다. 날개를 접고 있는 드래곤은 금방이라도 불을 토하며 달려들 자세로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날개를 뒤로 한 채 쭈그리고 앉은 천사는 비바람에 얼굴이 뭉개져서 얼마나 잘 생긴 천사였는지 알 수 없지만, 당시 천주교가 지배하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조각상은 현재도 밝게 거리를 비추고 있다.

중세의 시대상을 그대로 알려주는 구시가 옛집의 목제 인물상들은 투르 여행에서 꼭 만나보아야 할 보석 같은 존재들이다. 현재와 같은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 전, 천주교의 틀 안에서 살던 이들의 생각과 가치관이 그대로 다양한 인물상들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랜 나무가옥의 틈새마다 비둘기들이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 나무가옥의 비둘기들. 오랜 나무가옥의 틈새마다 비둘기들이 자연스럽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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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뤼므로 광장에서 나와 브리소네 거리(Rue Briconnet)로 들어서자 더욱 특이한 반목조의 가게 건물들이 골목길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길 양 옆의 아늑한 바 카페(Bar Café)와 프랑스 레스토랑,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여행자들의 최상위 평점을 차지하는 훌륭한 가게들이다. 반목조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한 채로 내부는 현대적 인테리어로 분위기를 살린 모습이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늑하다. 그리고 과거와 현대가 어울리는 건축물의 가장 높은 곳에는 투르의 비둘기들이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잔잔한 루아르 강과 젊음의 대학들이 나온다.
▲ 브리소네 거리 가는 길.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잔잔한 루아르 강과 젊음의 대학들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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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좁고 정겨운 브리소네 거리를 계속 걸어갔다. 브리소네 거리가 끝나는 북쪽 블록 위까지 걸어가자 루아르 강변이 나오고, 강변에는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Université François-Rabelais)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플뤼므로 광장이 젊음으로 넘치는 것도 구시가에 이런 대학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프랑수아 라블레 대학교를 통과하자 갑자기 눈 앞에 루아르 강의 물줄기가 나타났다. 프랑스에서 가장 긴 강이지만 강의 중류지방이라서 강줄기가 크고 위압적이지는 않고 잔잔한 모습이다. 중세 도시를 나와 갑자기 자연의 품으로 안긴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루아르 강변은 조용하고 운치가 있다.

한때 프랑스의 중심이었던 투르는 지금도 작은 파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루아르 강이 도시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세느(Seine) 강이 도심을 흐르는 파리와 비슷하고 예술적 분위기도 넘치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에게는 관광지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투르. 하지만 이 작은 도시는 아름다운 역사유적과 함께 젊고 우아한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다. 여행길에서 의외의 진주를 캐낸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 작은 도시도 이렇듯 갑자기 놀라운데 프랑스의 수많은 작은 도시들은 모두 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역시 프랑스는 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나라이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태그:#프랑스, #프랑스 여행, #투르 , #루아르 강, #플뤼므로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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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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