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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차를 타고 안동 하회마을 근처에 있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찾아갔다. 무슨 내력이 있는 건지 병산서원 가는 길은 아직도 비포장 길이었다. 오랜 만에 흙 길을 만난 내 차가 길 위에서 울렁거렸다. 어릴 적 추석 때마다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가던 비포장 길이 머리 속의 오랜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주차장에서 내려서도 병산서원까지는 낙동강을 따라 또 몇 백m를 걸어서 들어가야 했다. 주차장 바로 앞에 역사유적이 있는 게 아니고 한참을 걸어서 찾아 들어가는 길. 아내, 딸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니 제법 운치가 있었다. 이제 비는 개고, 산 언덕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산에 스며들 듯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가 돌아 흐르는 곳에 화산을 등지고 자리잡고 있다.
▲ 병산서원 전경.  병산서원은 낙동강 상류가 돌아 흐르는 곳에 화산을 등지고 자리잡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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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하회마을과도 가까워서 함께 둘러 보기에도 좋은 여행코스이다. 병산서원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하회마을까지도 갈 수 있을 정도이니, 병산서원은 하회마을과 아주 가까운 곳이다.

병산서원은 안동의 서남쪽, 낙동강 상류가 돌아 흐르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잡고 있다.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豊岳書堂)을 유성룡(柳成龍)이 1572년에 이곳으로 옮겼고, 현재는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는 곳이 되었다.

불멸의 영웅 이순신을 천거하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영의정으로서 성곽 수축과 화기제작에도 힘쓴 유성룡. 유성룡을 모시는 곳을 찾아가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이다.

이 병산서원은 유성룡의 사후인 1614년(광해군 6년)에 서원 내에 존덕사(尊德祠)를 세우고 유성룡의 위패를 모셨다. 그후 1863년(철종 14년)에 왕으로부터 '병산(屛山)'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병산서원은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에도 살아 남았던 전국 47개의 서원 중 하나여서 건축물이 고색창연할 뿐만 아니라,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병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한국의 9개 서원 중 한 곳으로서, 안동에서 도산서원과 함께 조선 유교문화의 정수가 남아있는 곳이다. 
 
수백년을 버틴 나무 건축물의 역사적 연륜은 인공과 어울린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 만대루 전경. 수백년을 버틴 나무 건축물의 역사적 연륜은 인공과 어울린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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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의 위쪽으로 조금씩 계단을 오르자 눈 앞에 옛 목재의 향이 배어 나올 것 같은 만대루(晩對樓)가 나타났다.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극찬하고 있는 만대루에 올라서 시원하게 병산과 낙동강을 조망하고 싶었으나, 현재는 만대루에 오를 수가 없었다.   

만대루는 병산서원 내에서 유일하게 별도 문화재 지정을 받은 보물급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 만대루가 보물로 지정된 이후 문화재 보호를 위해 만대루 위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만대루에 올라서 보면 시야가 더 높아져서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가 시원하게 펼쳐질 것 같은데 아쉽기만 하다.

만대루는 병산서원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의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소중한 문화재는 훼손없이 오래 보존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여행객들이 수긍을 하고, 멀찍이서 만대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재와 서재의 규모를 보면 많지 않은 유생들이 만대루에 앉아 강을 바라보았을 텐데, 현대의 수많은 여행객들이 한꺼번에 만대루에 오르면 만대루의 마룻바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누각인 만대루를 받치고 있는 나무기둥을 건물 아래에서 살펴보았다. 전혀 색이 칠해져 있지 않은 목재 기둥 여러 개가 자연스럽게 건물을 받치고 있었다. 목재가 약간 휘기도 하고 틈이 갈라진 모습이 마치 여러 나무들이 모여 웅장한 한 건물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수백년을 버틴 나무 건축물의 역사적 연륜은 인공과 어울린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한다.
 
창문을 통해 바깥의 경관을 건물 내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기법을 잘 살리고 있다.
▲ 만대루와 병산.  창문을 통해 바깥의 경관을 건물 내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기법을 잘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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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서원 누각의 대표작인 만대루는 누각의 외관과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자연경관을 잘 이용하고 있다. 창문을 통해 바깥의 경관을 건물 내부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조경기법을 잘 살리고 있다. 우리 전통건축의 기본에 충실하면 얼마든지 멋진 건축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만대루 난간에는 화려한 장식도 없고 인공의 기교도 최대한 줄였지만 그 당당한 느낌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여행객들은 입교당 중앙에 앉아 여러 폭 병풍 같은 만대루의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을 감상한다.
▲ 병산서원 감상. 여행객들은 입교당 중앙에 앉아 여러 폭 병풍 같은 만대루의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을 감상한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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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의 공간인 입교당(入敎堂)은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고 학문을 닦던 교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병산서원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여행객들이 마루에 앉아 만대루와 그 너머의 병산을 바라보는 전망대가 되어있다. 여행객들은 입교당 중앙에 앉아 여러 폭 병풍 같은 만대루의 기둥 사이로 보이는 병산을 감상한다. 풍경에 넋을 잃고 앉아 명상을 하는 여행객들은 숨 죽이고 조용한 공간을 즐기고 있다. 
 
풍경에 넋을 잃고 앉아 명상을 하는 여행객들은 숨 죽이고 조용한 공간을 즐기고 있다.
▲ 병산과 만대루 감상. 풍경에 넋을 잃고 앉아 명상을 하는 여행객들은 숨 죽이고 조용한 공간을 즐기고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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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겨운 한옥건물들은 화산을 따라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자리를 잡고 있다. 병산서원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학문에 매진할 수 있도록 조용하면서도 수려한 경치를 가진 곳에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유생들은 겸손과 절제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배웠을 것이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조선을 지배했던 성리학의 가치가 담긴 특유의 전통이 이 건물들을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산에서 내려오는 안개 사이에 서원의 기와집들이 묻혀서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이곳에서 살던 유생들 각각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지만, 현재까지도 남은 고건축물은 선조들이 세운 집들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달팽이처럼 끝 부분을 둥글게 감아 세우면서 내부가 가려져 있다.
▲ 달팽이 뒷간.  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달팽이처럼 끝 부분을 둥글게 감아 세우면서 내부가 가려져 있다.
ⓒ 노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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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을 뒤로 하고 나가면서 다른 여행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서원 담장 바로 앞, 아주 현대적으로 보이는 초가 건물이 화장실이라는 것이다. 이 일꾼들의 화장실은 사적으로까지 지정되어 후손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서원 건물과 함께 지어진 이 '달팽이 뒷간'은 병산서원의 담장 밖에 있는 화장실이었다. 흙 돌담의 시작 부분이 달팽이처럼 끝 부분을 둥글게 감아 세우면서 내부가 가려져 있는 것이다. 문이 없어도 화장실 안의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현대인이 봐도 기가 막힌 걸작이다.

병산서원의 맞은편 낙동강 강변으로 내려가보았다. 이곳의 낙동강이 아름답게 다가오는 이유는 병산서원과 함께 병풍같이 펼쳐진 산이 낙동강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병풍을 둘러친 듯하다는 '병산'의 이름에 걸맞는 화려한 산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강물도 높은 산 아래에서 흘러야 장관인 법이니, 병산서원 앞 낙동강은 병풍같은 산세 속에서 더욱 빛나고 있었다. 공부하느라 힘들었을 조선의 유생들도 병산과 낙동강의 이 수려한 자연을 보며 쉬어갔을 것이다. 

나는 가족과 함께 병산 앞 낙동강에서 걸음을 멈추고 편안히 쉬어갔다. 도산서원도 가고, 농암종택도 가고, 고산정도 가야 하는데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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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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