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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아침 햇살이 버스 그늘을 드리운다. 2월 마지막 목요일이다. 종합운동장 9번 출구 안동에서 달려온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연구원과 기사 아저씨가 나와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다. 약속 시간 2분 전 헐레벌떡 차에 올랐다. 숨을 고르며 맨 앞자리에 앉았다. 이내 버스가 출발한다.

미안함이 온 마음을 두드린다. 정윤희 연구원이 물 한 병을 건넨다. '미안해요. 선생님!' 물을 받아들며,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에 앉아있는 모든 사람을 살폈다. 조용하다. 버스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40명과 정윤희 연구원, 기사님 그리고 참관을 위해 온 내가 타고 있다.

버스 안에
▲ 아름다운 그녀들의 모습 버스 안에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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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명이 탄 버스 안이 이토록 조용할 수가 없다. 곧 이유를 알게 된다. 어떤 사람은 손에 프린트를 들고 있고, 또 다른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다. 모두 2018 심화교육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이야기를 외우고 있는 중이다.

격려하는 이용두 원장
▲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 원장의 환영사 격려하는 이용두 원장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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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명을 태운 버스는 지체 없이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으로 향한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봄물이 오르고 있다. 겨울 내내 움츠렸던 가지들이 기지개를 펴며 물기를 머금고 있다. 새삼 살아있다는 것의 생명력의 위대함을 생각해본다.

10시 40분, 치악휴게소에 버스가 잠시 멈춘다. 휴식시간 10분. 다시 버스가 달려 '예던길'을 돌아 정확히 12시,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버스가 도착한다. 서울에서 온 1호차를 뒤따라 전국에서 온 버스들이 차례차례 이어서 도착한다. 전국에서 온 200명에 이르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들을 연구원들이 한 줄로 나와 서서 반긴다. 이어 그들은 모두 정해진 절차와 순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2018년도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상반기 심화교육'이 1월 18일 1회 차를 시작으로 3월19일 마지막 13회 차에 걸쳐 2000여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3개월에 걸친 심화교육 중에서 6회 차 교육이 2월 말 진행되었다. 심화교육을 받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아름다운 그들이 모두 인문정신연수원 대강당에 집합한다.

색소폰 연주를 잘 하신다는 이야기 교장 선생님, 이용두 한국국학진흥원장이 환영사를 시작했다. 이용두 원장이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 수업은 어떤 AI로도 대체 불가능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드디어 1박 2일에 걸친 본격적인 심화교육이 진행된다. 교육은 두 개의 영역으로 나눠진다. 첫 번째 영역은 '이야기 구연 실습 강의'이고, 두 번째는 '효과적인 이야기 활동을 위한 활동 설계'다.

자신의 이름과 한국국학진흥원 고유 ID에 따라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1반에서 6반까지 분반이 되었다. 분반된 반 중에서 1반에서 3반까지는 1일차에 '이야기 구연 실습 강의'을 먼저 하고, 2일차에 '효과적인 이야기 활동을 위한 활동 설계' 강의를 듣는다. 4반에서 6반은 이 일정과 꼭 반대로 진행된다.

1반에서 3반으로 구성된 분반, 1일차 일정을 따라 움직였다. 일 년간 스물여덟 개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으로 매주 한 가지씩 전달된다. 당연히 전달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들이다. 강의실에는 구연 실습을 담당하는 강사와 이미 설치된 캠 앞에서 연구원들이 녹화준비를 끝내고 있었고 그리고 다른 이야기 전달자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는 아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강사는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구연할 순서와 구연자의 이름을 적었다. 저마다 자신의 순번을 체크하며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에게 배당된 이야기 구연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구연과 피드백을 끝낸 시간이 밤 9시다.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각인하며 모두에게 귀감을 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들이 심화교육 하루의 일정을 끝냈다. 긴장과 떨림의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숨 막히는 순간이 '끝났다'고 하얗게 웃는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각자 정해진 룸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하얀 눈길 산책을 한다
▲ 눈 내린 한국국학진흥원 누군가 하얀 눈길 산책을 한다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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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새벽 5시 7분. 안동의 밤이 더욱 깊다고 느낀 것도 잠시다. 가장 먼저 날이 밝았다고 알린 것은 온천지를 밤새 하얗게 덮은 눈이다. 누군가 이미 옷을 다 갖춰있고 하얀 눈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만들며 산책을 한다. '참, 부지런도 하다' 그 모습을 마음이 환해진다. 어제 본 그들의 짙고 깊은 수고는 단지 지켜보는 사람의 우려였다.

2일차 일정이 진행된다. 모두 분주한 느낌이다. 그래도 1일차에 구연을 한 사람들은 한층 여유가 있다. 2일차 구연을 하는 팀들이 걱정과 불안으로 거의 잠을 못 잤다는 얘기가 어깨 너머로 들린다. 진정 이해된다. 긴장을 보고 기억했던 터라 그 순간의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초연할 수가 없다.

노래하는 주인공
 노래하는 주인공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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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차 9시, 정확히 김형숙 강사의 인도로 상반기 이야기 14편의 '효과적인 이야기 활동 위한 활동 설계' 강의가 진행되었다. 강사는 아주 오랜 경험의 소유자로 유연하고 부드러운 강의를 했다. 수강 중인 한 사람을 단으로 불러 구연을 재현하게 했다. 지명 당한 사람은 아무 떨림 없이 잘 구연했다. 강의실은 화기애애하고 뜨거웠다. 누구도 주저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그들의 태도에서 그들의 자부심을 봤다. 그들의 전직이 대부분 교사, 도서관 사서, 교육계 종사자였다는 것이 빈말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1박 2일에 일정이 마치고 서울로 향했다. 버스 안은 안동으로 가던 순간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야기꽃의 향기가 가득했다. 양평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두 봉지 샀다. 그저 아름다운 그들의 마음을 귀히 하고 싶었다. 호두과자 하나에 그 마음을 담았다.

그들과 보낸 이틀은 인생에서 잊지 못할 시간이 될 것이다. 50대, 60대, 70대를 지나는 그들의 여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들의 삶은 최고였다. 자신의 열정과 순수로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멋진 생을 사는 그녀들에게 내내 축복을 보낸다.    


태그:#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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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전공. 문학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며, 성찰로 자신을 알게 한다. 치유로서 인문학을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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