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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두 딸과 '라이어 그후 20년. 앞줄 왼쪽부터 작은딸 아버지 큰딸'
 2015년 여름 두 딸과 '라이어 그후 20년. 앞줄 왼쪽부터 작은딸 아버지 큰딸'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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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잘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을 남들처럼 영어 수학 과외공부를 시킨 일이 없구나. 그러나 큰딸은 피아노학원을 작은딸에게는 미술학원을 내 의지대로 보내느라 엄마와 의견이 안 맞아 말다툼을 자주 하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너희들을 피아니스트와 화가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음악과 그림을 통해서 예술을 이해하고 멋스러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정말 그랬다.

아버지는 음악이나 그림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느낄 줄은 안다. 아버지도 가슴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둘째를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졸업하기까지 미술학원을 꽤 많이 보냈는데 미술학원 처음 데리고 가던 날 학원장에게 부탁을 했다.

미술이론보다는 그저 표현의 소소한 방법 또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 정도나 가르쳐주십사 하는 당부였다. 그림을 그리는데 있어서 그림은 꼭 이래야 된다는 그 어떤 틀을 만들어 주지 말라는 간절한 당부였다. 다행이 원장도 나의 뜻을 이해하여 주었다.

또한 첫째를 음악학원에 보내면서 서양의 피아노곡보다 우리나라 동요라든가 유행가를 가르쳐달라고 했더니 학원장이 웃으면서 묻더라.

"왜 그래야 됩니까?"

"별다른 뜻은 없고 저 혼자 즐기는 음악이 아닌 할아버지나 엄마 생일날 '섬마을 선생님'을 연주하며 생일을 축하하는, 실생활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뭐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파 하하하~ 학원에서 그런 건 가르쳐주지 않지만 학원에서 가르쳐주는대로 하면 저절로 치게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피아노학원 보내시는 분들 중에 이런 부탁은 처음 들어봅니다. 실용음악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 예, 바로 그겁니다. 생활에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실용음악."

커가는 너희들을 보면서 후회는 안 했다. 눈이 내리면 신나서 강아지처럼 뛰는 너희들을 보며 아버지도 덩달아 신이 났고 비가 내리면 창틀에 턱을 괴고 10분이고 20분이고 창밖을 바라보는 둘째를 보며 아버지도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랑으로 행복한 사람들을 보며 "좋아 죽겠지 이것들아!" 질투어린 말에 아버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희들과 영화와 뮤지컬을 보러다니며 즐거웠고 소란스럽지 않은 맥주집에 앉아 뮤지컬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참으로 행복했다. 뮤지컬의 내용을 이성이 아닌 감성으로 이해하는 너희들이 대견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어울려주는 너희들이 고마웠다.

아래의 시는 적다가 말았구나. 시집 갈피에 메모지를 넣어놓았으니 너희들이 찾아서 읽으렴. 아버지도 너희들에게 바람 같은 존재이고 싶구나. 사랑한다 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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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는 것은

- 박종국

바람이 분다는 것은
참 복 받은 일이지 싶다

마람마저 없다면
오뉴월 뙤약볕 아래
김매기를 할 수는 있었을까

잠깐 일손을 멈추고
스치는 바람에 살이 찌는 듯
세상사를 다 내려놓을 수는 있었을까

무엇이 잘 안 될까봐 걱정하는 우리에게
바람은,

'나머지 시 글은 생략'

천년의 시작 '누가 흔들고 있을까'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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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모이, #아버지와딸, #편지,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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