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새로운 아이디어로 성공(이윤 창출)을 꿈꾸는 스타트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이윤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스타트업은 흔치 않다. 우리는 이들을 '비영리 스타트업'이라고 부른다. <오마이뉴스>가 2018년 새해를 맞아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세상의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젊은' 비영리 스타트업들을 만나봤다. [편집자말]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We. able)’은 장애인들의 순탄치 않는 여행길을 돕기 위해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We. able)’은 장애인들의 순탄치 않는 여행길을 돕기 위해 지도를 제작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건강하던 사람이 팔다리 등 신체 기능의 일부를 갑자기 잃게 되면 평소에 몰랐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외출의 자유'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1년 장애인들에게 1주일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실태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6%가 TV 시청이라고 답했다(복수 응답). 반면, 여행(9.2%)이나 연극·영화 등 관람(6.0%) 등의 외부 활동은 극히 저조했다. 이들은 집 밖 활동이 불편한 이유로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 부족'(54.9%)을 주로 꼽았다('외출시 동반자가 없어서' 31.9%,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11.1%).

[젊음, 세상을 바꾸다①] 잃어버린 개, 이렇게 찾는 법도 있어요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We. able)’은 서울 내 주요 여가활동 지역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고 있다. 
지도에는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엘리베이터, 화장실, 카페, 음식점 등이 표기되어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We. able)’은 서울 내 주요 여가활동 지역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지도를 만들고 있다. 지도에는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엘리베이터, 화장실, 카페, 음식점 등이 표기되어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은 장애인들에게 '외출의 자유'를 주자는 취지로 작년 9월 출범했다. 서울시 NPO지원센터가 지난해 개최한 비영리스타트업 쇼케이스에 초청돼 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대학시절 500여 시간 동안 장애인 봉사 활동을 한 송덕진(27, 강남대 사회복지학과 졸업)씨의 체험이 바탕이 됐다.

"마음먹고 외출을 한 번 해도 거리에서 찾아갈 만한 화장실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지하철 화장실을 찾거나 아예 물을 안 마시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거리에 널린 게 편의점인데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별로 없어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아예 참는다는 응답이 많았어요. 심지어 집에서 온종일 일본 애니메이션만 봐서 저절로 일본어 능력자가 된 사례도 있었구요. 장애인들이라고 해서 선술집에서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은 욕구가 없겠습니까?"

서울의 고궁이나 남산케이블카 등의 주요 관광명소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경복궁을 구경한 다음 인근 가회동·삼청동의 맛집이나 찻집을 가고 싶어도 마땅히 갈 만한 곳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이다.

위에이블의 송덕진 대표는 직원들과 함께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장애인들이 가볼 만한 '핫플레이스'의 지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성수동과 뚝섬·서울숲 일대를 15번가량 방문한 결과,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편한 지역 업소를 24곳 정도 확보했다. 경사로나 진입턱 같은 외관만 살피지 않고 업소 주인들을 인터뷰해보고 얻어낸 결과물이다. 위에이블의 '체크리스트'에는 휠체어를 탄 사람이 출입이 가능한 너비의 문을 확인하는 작업도 들어있다.

'몸 불편한 사람들'도 가기 좋은 업소의 세 가지 조건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와 직원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역을 찾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탈 때 엘리베이터 위치를 몰라 헤매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와 직원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역을 찾아 장애인이 지하철을 탈 때 엘리베이터 위치를 몰라 헤매는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예를 들어 구글은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업소의 출입문 폭을 120cm로 규정하고 있지만, 위에이블이 파악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폭 120cm 문을 가진 가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위에이블은 '80cm 이상만 돼도 가게를 드나드는 데 큰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장애인이 가기 편한' 업소는 우선 진입턱이 없어야 하고, 자동문이면 더 좋다고 한다. 여기에 휠체어가 드나들 만한 너비의 출입구가 있는 화장실까지 있으면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지만, 세 가지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을 찾기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다. 자신이 운영하는 업소를 장애인들이 드나들기 편한 구조로 바꾸는 작업은 주인이 추구하는 '영리'와 어긋날 때도 많다. 비교적 많이 알려진 '맛집' 주인들을 인터뷰해보니 "장애인이 문 앞에 와도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는 않겠다", "다른 손님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답변을 왕왕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외국의 장애인이 한국 여행을 와도 80, 90%가 서울에 주로 머물기 때문에 서울의 정보가 중요하죠. 그래서 전수 조사를 해서 서울의 장애인 친화형 업소 지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부분 중도에 포기했어요. 그런 정보는 말 그대로 발품을 팔아야 얻을 수 있는데, 그런 일은 돈이 안 되거나 열정만으로는 쉽지 않기 때문이죠."

위에이블이 처음 선택한 성수동-뚝섬-서울숲 일대는 과거 공단에서 '카페 거리'로 바뀌고 있는 지역이다. 지하철로 오기 편하고, 새로 문을 연 식당이나 카페가 많고, 방문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최근에야 주목받는 곳이기 때문에 거리의 정취를 즐기려는 장애인들이 찾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한다.

일일이 전수 조사를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갈 곳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결정 장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10, 20곳 정도만 알아도 장애인들이 믿고 찾기에 충분하다는 게 송덕진 대표의 설명이다.

반면, 서울 망원동·홍대입구 일대는 식당들의 규모가 비교적 작고, 계단이 많아서 적당한 업소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전했다.

15개 대학 동아리와 협업, 올해 내에 '서울 정보' 앱 출시 목표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와 직원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역 인근을 찾아 장애인이 접근하기 편안한 가게를 사전 조사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와 직원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역 인근을 찾아 장애인이 접근하기 편안한 가게를 사전 조사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가 마포구 망원역 인근 한 카페를 찾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화장실을 이용할 때 통로가 불편하지 않는지를 줄자를 재며 확인하고 있다.
 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송덕진 대표가 마포구 망원역 인근 한 카페를 찾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화장실을 이용할 때 통로가 불편하지 않는지를 줄자를 재며 확인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다행스러운 소식은 올해부터는 강남대, 경희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15개 대학의 장애인권 동아리들과 위에이블 사이에 협업의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각 대학들이 있는 지역별 업소 정보들이 취합되면 올해 안에 서울 전 지역의 업소 정보를 담은 모바일 앱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은 않다.

2022년까지 장애인이 편리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의 서울시 '무(無)장애 관광도시 조성' 계획에 대해서는 기대와 아쉬움을 함께 드러냈다.

"1차로 선정된 지역들(6개 관광특구: 이태원, 동대문패션타운, 종로·청계, 잠실, 강남 MICE, 명동·남대문·북창동·다동·무교동 일대)은 관광객이 많이 몰리거나 경사로가 높은 지역(이태원 등)이 섞여 있습니다. 번화가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장애인들의 만족도가 높은 지역을 조사해서 우선적으로 선정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비영리스타트업을 하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사업의 불확실성과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은 모두 '이 사업만으로 경제적인 자립이 가능하겠냐'는 회의론과 연결된다.

"이해심 높은 부모님을 모시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뜻은 좋은데 사업을 계속할 만한 기반은 마련해야 하지 않냐'는 얘기를 하시죠. 그럴 때마다 저는 '1, 2년 정도 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겠냐?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해요."

기자가 '2년 후의 미래'를 묻자 송덕진 대표는 "그때는 성공해있어야죠. 어떤 분야든 1등을 하면 돈은 벌지 않겠냐? 이 일을 같이하는 친구들에게도 대기업만큼 봉급은 못 주더라도 멋진 일, 좋은 일 한다는 자긍심만큼은 심어주고 싶다"고 답했다.


태그:#비영리스타트업, #위에이블, #장애인, #성수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