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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하게 그림자가 마음을 잡는다. 사진 속 그림자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두 사람의 모습이다. 실루엣이 두 사람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물론 자세한 디테일은 알 수 없다. 어떤 옷을 입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곧 이어 하나둘 그림자 모습의 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림자가 이야기를 전한다. 첫 번째로 확인되는 것이 있다. 두 사람의 키가 다르다. 키 차이로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키는 좀 더 세밀한 것을 말해준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다른 사람은 좀 작다. 둘 다 머리는 단발머리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여자일 가능성이 짙어진다. 그리고 가장 확증적인 것은 브이를 표시하는 손가락이 섬세하며 가늘다.
  
사람으로 묘하게 닮아가는 두 사람
▲ 닮은 모습의 그림자 사람으로 묘하게 닮아가는 두 사람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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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모녀가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다. 키가 큰 딸이 엄마를 감싸고 브이를 그리고 엄마는 그사이 딸과의 좋은 순간을 놓칠까 봐 두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조심스레 사진을 찍는다.

찬란한 햇빛이 등 뒤에서 비추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밝은 태양이 환하게 지면을 따스한 햇살로 덥히고 있다. 성당을 따라 장식한 화단에서는 각양각색의 꽃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어 햇빛을 받으며 얼굴을 붉힌다.
 
엄마와 딸이 성당을 향해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자가 전해주는 모녀의 이야기는 온화하고 따스하다. 엄마와 딸은 웃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빠르게. 엄마와 딸이 둘만의 여행을 하는 중이다. 엄마는 방학이 되기를 기다렸고 딸은 엄마가 가능한 시간으로 여행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다녀온 엄마와 딸, 둘의 세 번째 여행이었다. 사진을 정리하던 엄마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그림자 사진이 좋았다. 모습이 묘하게 닮았다. 어쩜 그래서 더욱 마음에 그 사진을 새겼는지도 모른다.
 
가을이 오고 있다. 가을이 짙어가는 길목에서 엄마는 소중한 딸을 얻었다. 어느 누군들 세상의 희로애락이 어찌 다 소중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세상을 그저 마음으로만 살아온 엄마에게 딸은 너무 가슴 저린 딸이었다. 태어난 지 백일 만에 세상을 떠나버린 오빠 대신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무지함으로 백일 만에 잃은 아이로 인해, 딸과 아들에게 꼭 반반씩의 몫을 더해 키웠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가 자신의 죄의식과 아픔을 달래는 방법으로, 그날부터 엄마 자신은 이미 없었고 오직 엄마로서 하루가, 한 달이, 일 년이, 십 년이, 한 세대를 지나 또 숱한 나날이 흘렀다.
 
"소중한 딸 생일 축하해!!! 사랑해. 고마워"

10월 19일 새벽 엄마는 문자를 남긴다.

"예쁘게 키워줘서 고마워요..."

바로 답이 온다. 핑그르르 눈물이 눈가에 고인다.
 
오후 6시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다. 엄마는 딸아이가 오기 전 카드 한 장을 준비하고 싶어 서점으로 향한다. 반디 앤 루니스에 도착. 딸과의 약속 시간 15분 전이다. 이 시간이면 충분하다. 생일 카드 코너에 섰다. 카드진열스탠드에 다양한 종류의 생일카드들이 즐비하다. 거의 꽃 그림카드들이 스탠드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그중에서 유난히 눈을 잡는 카드가 있다. 촛불만이 가득한 생일카드다. 카드를 손으로 잡는다. 카드값을 계산한다. 생일카드 그림 속 촛불 하나하나에 모두 촛불을 켜고 염원의 기도를 올린다.
  
 축복을 주는 생일 카드를 고르다
▲ 촛불로 축복을 밝히는 생일카드 축복을 주는 생일 카드를 고르다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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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잘 마음을 곧게 살자. 27th 생일 축하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귀한 딸!!!"

펜을 잡아 마음을 쓰는데 왜 이리 안쓰러운지 모른다. 마음이 늘 저리다 자식... 슬기 몫으로 반반씩 짐을 지게 만든 큰 아이는 큰 아이대로, 작은 아이는 작은 아이대로, 엄마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5분 후 전화가 온다.

"엄마 어디야!"
"반디 앤 루니스. 곧 내려가. 유니클로 앞에 있어."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서 있는 딸이 보인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엄마와 딸은 서로 손을 흔든다. 검은 자켓, 흰 브라우스, 와인 바지를 입은 딸 모습이 너무한 예쁘다. 생일 저녁. 아빠는 출장가고 엄마와 딸, 둘이서 생일축하를 한다.

"뭘 먹을래?"

엄마는 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저녁을 사주고 싶다.

"빌리에서 파스타 먹자."
"그래!"

손을 잡고 빌리로 들어간다. 각각의 테이블마다 켜진 작은 등이 황혼으로 가는 시간에 빛을 받아 운치를 더한다.

"엄마! 나리가 엄마 너무 대단하고 멋지다고 하더라."
"나리는 뭐하니?"
"지원서 쓴데."
"그래... 잘 되어야 하는데... "
"엄마! 나리가 엄마는 고학력자이시지 하더라."
"그래서 뭐랬어?"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했어."
"그랬더니?"
"우리는 나중에 뭘 하고 살까 그러더라."

엄마는 갑자기 쿡 가슴이 아려온다. 이제 28살인데. 27th의 생일을 지나는 아이들인데 ----- 아이들도 삶이 녹록하지 않구나. 그토록 예쁜 애들이...
 
파스타를 먹고 정장 한 벌을 사 주었다. 아이 모습이 사뭇 다르다. 덥석 고르지도 사지도 못한다.

"왜 그래! 골라 어서"
"비싼데"
"아니야! 그 정도는 있어. 엄마 아직도 일 하잖아."

고른 옷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너무 잘 어울린다. 사주는 엄마도 딸도 꼭 마음에 들어 서로 보며 웃는다. 같이 걸었다. 엄마는 딸을 데려다줄 생각으로 걷자고 했다. '배부르다고.' 손을 잡고 모녀가 걸었다. 밤에 보도를 따라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친구 얘기. 아빠 얘기, 오빠 얘기...
  
서로 닮은 모습을 보고
▲ 사람으로 둘은 하나가 되다 서로 닮은 모습을 보고
ⓒ 유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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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호, 하하하, 밤하늘로 웃음소리가 퍼진다. 버스정거장에 도착한 엄마가 딸아이의 발을 본다. 닮았다. 참 많이도 엄마를 닮았다. 기다리던 위례행 버스가 온다. 엄마는 버스에 오른다. '사랑해! 딸!!! 버스에 오른 엄마가 차창으로 보이는 딸을 보고 말을 한다. 아마도 딸은 못 들은 듯하다. 딸이 그저 웃는다. 손을 흔드는 엄마의 눈에 또 다시 핑그르르 눈물이 고인다.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예언자>에서 지브란은 '자녀는 활이고 부모는 화살'이라고 했다. 엄마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잘 날아갈 화살이지도 못했고, 또 부모로서 화살을 잘 쏘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시간이 갈 것이다 그렇게 또...
엄마는 딸을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고, 딸은 차창에 비치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덧붙이는 글 |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 숨을 쉴 수 있도록



태그:#엄마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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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전공. 문학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며, 성찰로 자신을 알게 한다. 치유로서 인문학을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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