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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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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월 큰딸이 시집을 갑니다. 남들처럼 잘 입히고 많이 가르치지 못해 딸에게 죄스러운 마음이지만 아비의 역할이 어찌 잘 입히고 잘 먹이며 많이 가르치는 일만 있을까요.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짠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비가 못다한 사랑 사위가 배풀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며칠 전 딸 둘을 데리고 치킨집에서 맥주잔을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평생 두 딸에게 공부해라, 뭐 해라, 잔소리를 한 번도 안 해본 제가 처음으로 결혼날짜를 잡아놓은 딸에게 시집가서 시부모님께 잘 하라는 상투적인 잔소리를 좀 했습니다.

딸 둘과 다정한 자리가 무르익을 즈음 큰딸이 아버지가 주례를 서주면 어떻겠냐며 부탁을 합니다. 그래서 양복 한 벌 얻어입는 걸로 허락을 했지요.

주례사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신부보다 더 가슴이 콩닥이고 설레는 신부아버지를 보고 계십니다. 멋진 신랑을 얻었다는 신부의 기쁨보다 착하고 심성 고운 사위를 얻었다는 기쁨이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이렇게 새하얀 면사포를 쓴 딸아이를 곁에 두고 제 앞에 서있는 사위를 보니 문득, 천상에서 발을 헛디뎌 지상으로 잘못 내려온 한쌍의 천사가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눈길이 갑니다.

그동안 모진 마음으로 소중한 씨앗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습니다. 그 씨앗이 싹을 틔워 눈부신 사내 하나가 지금 제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제 딸의 곁에 서있는 멋진 사내를 보며 사람의 눈물이 뜨겁듯 지금 제 가슴도 뜨겁습니다. 이 멋진 사내가 저의 사위라는 사실이 몸서리쳐지도록 마음에 흡족합니다.

햇살 좋은 봄날, 이러한 기쁨을 만들어주신 사돈댁의 부모님께 감사를 드릴 일입니다. 그리고 저의 딸에게 애비로서 당부의 말을 좀 하고 싶습니다.

첫째. 저녁이면 되도록 일찍 들어와서 쌀을 씻고 찌개가 끓는 소리를 남편과 함께 들어야합니다. 또한 숟가락과 젓가락은 항상 남편과 똑같은 것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은수저든 금수저든 같은 숟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은 남편과 아내가 위아래 없이 평등하다는 얘기지요.

둘째.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남편을 위해서 요리를 하기바랍니다. 남편의 식성을 잘 알아서 되도록이면 남편 입맛에 맞추기 바랍니다. 결혼이란 틀린 입맛을 상대방의 입맛에 맞추는 겁니다. 요리는 생명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하여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는 것처럼 귀한 일은 없습니다.

셋째. 결혼은 혼자 잠들던 날들을 잊고 함께 잠드는 것이지요. 하나는 외로워 둘이 되기로 선택한 남편을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게 하지 마세요. 부부는 같이 잠들고 같이 일어나서 함께 찌개냄비 속에서 숟가락을 부딪히며 밥을 먹어야 합니다. 서로가 사랑한다면, 부부라면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게 이 아버지의 생각입니다.

서로의 건강과 즐거움을 위해 밥만 먹지 말고 가끔 떡도 해먹고 고기도 구워 먹고 술도 한 잔씩 하세요.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 때는 월급 타면 신랑 잠바 하나 근사한 것으로 사줘야지 생각하면 덜 힘들 테지요. 그렇게 서로에게 위안이 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게 결혼입니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오래 살 생각 말고 하루를 살더라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살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단단하게 여물은 밤톨처럼 씩씩한 사위에게 부탁 하나 하렵니다. 지금처럼 나의 딸을 사랑해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어려운 걸음을 해주신 하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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