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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넷마블게임즈에서 3명의 젊은 노동자가 연이어 사망했습니다. 그해 11월에 일어난 한 노동자의 죽음은 이듬해 6월 과로사로 확인됐습니다. 3명의 노동자가 연달아 사망하면서, 넷마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관심이 집중됐습니다. 이번 국정감사 때도 넷마블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다뤄집니다. 12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맞춰, 서울남부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의 미래'는 넷마블 잔혹사를 재조명합니다. [편집자말]
"그 회사 1년 정도밖에 안 다녔다. 크런치 모드 때 새벽 3~4시쯤 빌드 기다리다가 태양 뜨는 거 보고 눈물이 나더라. '나 왜 이러고 살지' '왜 내가 이걸 회사에서 봐야하지' 이런 생각들… 신정 때도 회사에서 혼자 헤드셋 끼고 중국 텐센트랑 일했다. 왜 퇴사했냐고? 이렇게 일하다가는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 같아 퇴사했다. 정말이다."

넷마블 계열사에서 일했던 어느 젊은 여성 노동자의 증언이다. "이렇게 일하다가는 아기를 낳을 수 없을 것 같아 퇴사"하게 했다는 넷마블의 장시간 노동. 가히 살인적이란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장시간 노동은 인간적 존엄을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존속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 한국이 겪고 있는 저출산 위기가 드러내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한국의 노동법은 대체 뭘 하고 있었나? 흔히 말하듯이 노동법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이다. 자본주의 태동기, 노동자들은 육체적 한계치까지 최대한 늘어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 14~16 시간씩 계속되는 장시간 노동에서는 여성과 아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19세기 전반 영국 공장법을 필두로 세계 각국에서는 장시간 노동을 규제하는 노동법을 제정해 온 것이다. 한국의 근로기준법 역시 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법정 노동시간으로 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사용자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근로기준법 제 50조, 제110조 제1호).

왜 한국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정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감 없는 법규정이 되어 버린 것인가. 노동법을 심각하게 위반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쯤으로 치부하는,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권 경시 풍조부터 지적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에 앞서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조장하고 사용자의 위법행위를 방조하는 포괄임금제 문제를 지적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시스템을 살펴보자.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시스템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1일 8시간, 1주 40시간이다(근로기준법 제 50조). 간혹 법정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용어 사용이다. 52시간은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 노동시간 12시간을 합산한 시간인데, 연장노동은 사용자 마음대로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노동자의 동의가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즉 근로기준법 제53조 제1항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 간에 12시간을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사용자를 2년 이항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제 110조 제 1호). 사용자가 노동자의 동의 없이 연장노동을 시켜도 처벌되고, 또 노동자가 동의했다 하더라도 주 12시간을 넘겨 연장노동을 시키면 처벌된다는 것이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법정 노동시간은 40시간이고 불가피한 경우에만 연장노동을 허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은 연장노동 등 시간 외 노동에 대해 추가 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용자는 연장노동, 휴일노동, 야간노동을 시킨 경우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해야 한다(근로기준법 제56조). 한국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시간 외 수당 규정이 마치 더 많은 임금을 벌 수 있는 제도인 것처럼 오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 외 수당의 입법 취지는 어디까지나 사용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어 법정 노동시간(1주 40시간)을 지키게 하자는 것이다. '야근을 많이 시켰더니 임금이 많이 나가네? 되도록 야근을 시키지 말아야겠다.' 사용자가 이렇게 생각하게끔 만들겠다는 뜻이다. 시간 외 수당 지급 의무를 정한 근로기준법 제56조가 근로기준법 제4장 <근로시간과 휴식> 파트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제3장 <임금> 파트가 아니라 말이다.

포괄임금제의 작동 방식

포괄임금제는 실제 일한 연장·휴일·야간 노동시간에 대한 수당을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후적으로 정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이미 정해진 월 급여에 사전 합산하여 지급하는 제도를 가리킨다. 이를테면 "월 200만 원의 급여 총액에는 1주 12시간 분의 연장수당이 합산되어 있다"는 식으로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는 식이다. 근로기준법 어디에도 포괄임금제를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포괄임금제는 법원 판례와 고용노동부 행정해석 등을 통해 허용되고 있는데, 대법원 판례는 "계산의 편의와 직원의 근무의욕을 고취하는 뜻에서 근로자의 승낙"이 있으면 포괄임금제를 사용할 수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1998.3.24.선고 96다24699판결). "계산의 편의와 직원의 근무의욕 고취"라니,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파괴하는 포괄임금제가 인정되는 이유가 고작 이것이다. 이제부터 포괄임금제가 어떤 식으로 노동시간 규제 시스템을 무력화 하는지, 넷마블의 실례를 통해 확인해보자.

1. 연장노동 동의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A사의 연봉계약서
 A사의 연봉계약서
ⓒ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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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마블 계열사 A사의 근로계약서이다. 매월 52시간 분의 시간 외 근로는 1주 최대 연장시간 12시간에 한 달의 평균 주수(4.34주)를 곱해 산출한 시간이다. 1주의 노동시간이 자연스럽게 52시간으로 정해졌다. 법정 노동시간은 1주 40시간이며, 연장노동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법적 요건은 흔적도 없이 지워져버린다. 실제로 회사의 관리자들은 "네가 받는 월급에는 이미 연장수당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야근을 해야만 월급을 다 받을 수 있다"는 식의 거짓 엄포를 놓기 일쑤이고, 노동자들 역시 주 40시간을 넘는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잦다.

2. 사용자의 경제적 부담이 전혀 없다

B사의 연봉계약서
 B사의 연봉계약서
ⓒ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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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넷마블 계열사 B사의 연봉계약서를 보자. B사는 각종 수당이 몇 시간 분의 시간 외 수당인지조차 밝히지 않는다. (이는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을 명시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제17조 위반이기도 하다.) 사용자는 이제 위 계약에 따라 연봉 3천만원, 매달 250만원의 월급을 똑같이 지급하기만 하면 자신의 필요에 따라 무제한적으로 시간 외 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야근을 시켜도 돈 한 푼 더 들지 않는다면, 당연히 고정된 비용으로 최대의 편익을 쥐어짜내고 싶지 않겠는가. 매달 똑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시간 외 수당이란 그저 급여 항목 중 하나의 형식적 명칭에 불과할 뿐이다. 경제적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법적 노동시간을 준수하도록 하겠다는 시간 외 수당의 입법 취지가 이렇게 절멸되는 것이다.

3.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이 마비된다

근로계약이 근대적 계약인 이유는 임금이 인신(人身) 종속의 대가로서가 아니라 노동력의 제공에 따른 대가로서 지급되기 때문이다. 근로계약의 대등 당사자로서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계약에서 주고받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포괄임금제에서 노동자는 자신이 지급받는 임금이 자신이 제공한 노동의 절대량에 따른 대가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몇 시간을 일하든 똑같은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절대적 상한선을 넘었는지 여부, 장시간 노동에 대해 법이 정한 정당한 가산 수당이 지급됐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없게 된다. 실제로 상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우리 회사는 원래 야근이 많은 회사"이고 "월급 받으려면 이 정도 시간 외 근무는 당연히 해야"하며 "일을 많이 했더라도 더 받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자들은 자신들에게 오히려 불리한 임금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넷마블 계열사 C사의 예를 보자.

C사의 2014년 연봉계약서
 C사의 2014년 연봉계약서
ⓒ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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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의 2015년 연봉계약서
 C사의 2015년 연봉계약서
ⓒ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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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자기 임금이 2300만 원에서 2334만6000원으로 1.5% 인상된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노동자의 통상임금은 시급 기준 6704원(=1955만 원/12개월/243시간)에서 6033원(=1759만5000원/12개월/243시간)으로 10%가 낮아졌다. 이렇게 되면 고정연장수당에 예정된 연장노동 시간은 월 28.6시간(=28만7500원/6704원/1.5)에서 월 54시간(=4887만50원/6033원/1.5)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공짜 야근을 시킬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연장노동이 많은 이 노동자는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한 근로계약을 갱신 체결했던 것.

4. 그 결과는 참혹한 장시간 노동의 흔적이다.

이런 식으로 포괄임금제 계약을 체결했던 노동자들의 실제 노동시간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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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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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사를 보자. 2014년 9월과 10월 집중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한 것이 확인된다. 9월에만 주당 평균 77.4시간을 일했다. 10월에는 주당 평균 61.1시간을 일했다. 사실 이 기록도 과소 추정된 것인데, 교통비 지급기록에 근거해 추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교통비 지급기록에 따라 근무시간을 추정하면 약 70% 정도만 추산될 뿐이다. 실제 근무시간은 1.4배 이상일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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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에 재직했던 노동자의 매월 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보면, 52시간보다 적게 일한 달은 2015년 7월과  2016년 11월 고작 두 달이다. 주 40시간은 고사하고, 주 52시간보다 적게 일한 달이 19개월 동안 2번 밖에 없었다.

2016년 4월에서 7월까지는 주당 평균 70.0시간, 74.4시간, 70.0시간, 72.1시간 일했다. 이 근무시간 기록도 회사가 교통비 지급으로 인정한 근무시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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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사 노동자의 매월 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보면, 2014년, 5월, 8월, 10월, 11월, 12월, 2016년 1월, 6월에 일주일 평균 52시간 이상 근무를 한 것으로 나타난다. 2014년 12월에는 평균 61.0 시간 일했다. 모두 근로기준법 위반이 명백하다.

넷마블 불법행위 처벌하고 포괄임금제 금지하라

당면해서는 넷마블 계열사에서 행해진 불법 장시간 노동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법 위반에 대한 엄벌이 불가피하다. 넷마블의 포괄임금제 사용 실태를 살피면 연장노동 상한 규정 위반, 시간 외 수당 과소 지급 등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이 명백하다. 왜 한국에서는 노동법이 똥친 막대기 취급을 받는가? 법 위반에 대한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넷마블과 같은 대규모 기업집단이 정교하게 설계된 포괄임금제를 통해 공짜 야근을 강요해도, 그저 시정지시 내리고 체불임금 얼마 청산하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게 된다. 구태여 법을 지켜야 할 이유가 없다. 버티다가 문제가 생기면 선심이라도 쓰는 것처럼 체불임금 지급하고 자화자찬을 한다. 뻔뻔하기 짝이 없는 이 모습, 이게 바로 현재 넷마블을 비록한 한국 대기업들의 민낯이다. 넷마블부터 고용노동부의 한층 철저한 근로감독과 엄정한 처벌이 요구된다.

나아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규정을 누더기로 만드는 포괄임금제의 전면적 금지가 절실하다. 당장 있는 법이라도 그 취지대로, 있는 그대로 지키게 하자는 것이다. 포괄임금제를 금지하자는 것은 사용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담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포괄임금제 금지는 그야말로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이다. 또 노동자 권리의식의 제고를 위해 매달 급여명세서 교부를 의무화 하고, 급여명세서에 해당 월의 노동시간 기록을 명시하도록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포괄임금제 남용에 대해 곧 사업장 지도지침을 마련하고, 제도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내년 상반기 발주하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참 한가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다. 이미 19대 국회, 20대 국회에서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수차례 발의되었던 적이 있다.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데 또 무슨 연구가 필요한가? 필요한 건 정책 의지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촛불혁명의 계승자임을 자임한다면 장시간 노동 금지를 두고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시간은 인간 발전의 공간"으로서 민주주의의 실행 토대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요한 기자는 공인노무사로,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회원입니다.



태그:#넷마블, #포괄임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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