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메밀국수입니다.
 메밀국수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맛은 예술이다."

요리에 대한 지론입니다. 맛내기는 예술가들이 용 그림 마지막에 찍는 '화룡점정(畵龍點睛)'과 비견되지 싶습니다. 왜냐하면 열정적인 요리의 맛내기는 예술가의 투혼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행위는 열정이 동반되는 경우 모든 게 예술인 셈입니다.

세 번 놀라는 양산 메밀국수 전문점 '화정'

"식사하셨어요?"
"아직 전입니다."
"제가 좋은 식당 하나 소개할까요?"
"스님이 추천해 주시면 저야 고맙지요."

배가 고파오던 중, 어디서 뭘 먹어야 하지 고민하던 차에 잘 됐습니다. 연암 스님(양산 보리원 주지)께서 자신 있게 안내한 곳은 경남 양산의 <화정>입니다. 스님께선 미리 "이곳에 가면 세 번 놀랄 거다"며 마음 준비를 시킵니다. 대체 어떤 맛집이길래 요렇게 서론이 길까 싶습니다.

"첫째, 식당 같지 않은 건물에 놀란다."

연암 스님과 주인장입니다.
 연암 스님과 주인장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스님이 멈춘 곳은 도로가 허름한(?) 창고 앞. 이런 곳에서 먹는 음식장사가 될까 걱정스럽습니다. 건물도 '불상 조성원'과 '메밀국수 전문점'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불교 미술가인 연암 스님 작업실 '연암 불상 조성원'은 알겠는데, 그 옆에 있는 메밀국수 전문점 '화정'은 의외였습니다. 두 집 간판이 나란히 붙은 데에는 사연이 있더군요.

"이곳 주인이 쫄딱 망해 오갈 데 없이 길거리에 내몰렸을 때 작업실을 뚝 떼어 여기에서 장사하라고 권했다."

조선시대 관례 후 간단한 주찬 별식 '메밀국수'

"둘째, 식당 분위기에 놀란다."

식당 밖에서 보면 축축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떠올리게 되어 있습니다. 식당 안으로 들어서니 밝은 분위기라 다행입니다. 없는 와중에서도 한껏 분위기를 살렸달까. 음식은 긍정 속에서 먹어야 더 맛있는 이치를 아는 겁니다. 식당 내부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에서는 12월 31일 그믐날에 꼭 모밀소바를 먹는다네요. 묵은해를 털어내며 액을 막아내고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가길 기원한대요."

경남 양산, 연암 스님의 불상조성원 내부입니다. 불교미술 작품들이 많더군요.
 경남 양산, 연암 스님의 불상조성원 내부입니다. 불교미술 작품들이 많더군요.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불상 조성원을 둘러봅니다. 갖가지 불상들, 조선시대 고가구와 민화 병풍, 도자기 등 다양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한 작품이 있었으나, 아직 미완성이라 하네요. 사실, 연암 스님을 만난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 단청, 불상, 탱화 등 불교 미술 하는 모습을 직접 한 번 보았으면 바란 겁니다. 불교 예술가가 작품 할 때 품어져 나오는 기운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도 틀렸습니다. 내킬 때에만 작품한다네요.

"주인장 음식 솜씨에 반해 앞 뒤 안 재고 작업실을 뚝 떼어줬다. 여기서 솜씨 발휘해 먹고 살라고."

스님이 본인의 작업실을 떼어 준 연유입니다. 아쉬움 속에 다시 '화정'으로. 메뉴판을 살핍니다. 온 메밀과 냉 메밀 7000원. 사리 추가 3000원입니다. 메밀+주먹밥 10000원입니다. 찬 성질의 메밀을 고려, 따뜻한 메밀국수를 주문합니다. 아시겠지만 메밀국수는 모밀국수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관례가 끝난 뒤 간단한 주찬을 들 때 별식으로 들던 음식"입니다.

절집의 대중공양 음식으로 '메밀국수'가 이용되는 이유

잘게 간 무를 요렇게 빙수 얹듯 얹은 이유가 음과 양의 조화라는 '음식궁합' 때문이더군요. 메밀국수 하나에도 음식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잘게 간 무를 요렇게 빙수 얹듯 얹은 이유가 음과 양의 조화라는 '음식궁합' 때문이더군요. 메밀국수 하나에도 음식철학이 녹아 있습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셋째, 음식 맛에 놀란다."

어떤 맛일까? 궁금 허나, 메밀국수 맛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일. 괜히 하는 소리로 들었습니다. 눈치로 알았을까. 스님, "저기 달력 좀 보세요. 사찰 대중공양 주문 일정이 들어 있다"며 신빙성을 더합니다. 달력을 확인합니다. 통도사, 법주사, 송광사, 쌍계사, 해인사, 해운정사 등 전국 주요 사찰의 대중공양 주문 일정이 빡빡합니다. 맛에 대한 기대치가 확 높아졌습니다.

그것도 "고기로 메밀국수 육수 맛을 내면 귀신 같이 알아채는 까탈스런 스님들께서 음식을 물린다"면서 심지어 "오신채(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인 마늘, 파, 부추, 달래, 무릇)까지도 피하는 스님들께서 여기 와서 맛을 본 후 대중공양을 주문하는 거다"고 설명합니다. 참고로 대중공양(大衆供養)이란 "불교 신자가 여러 승려에게 음식을 차려 대접하는 것과 여러 승려가 대중에게 음식을 차려 내는" 걸 의미합니다.

메밀국수 한상차림입니다.
 메밀국수 한상차림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밑반찬으로 단무지, 생강, 김치, 무, 대파, 와사비가 나옵니다. 마치 빙수처럼 무를 갈아 내놓은 게 인상적입니다. 이어 김 가루를 올린 메밀과 육수, 여분의 메밀 면이 나옵니다. 차가운 성질의 메밀국수에 따뜻한 성질의 무와 파를 듬뿍 얹고, 거기에 따뜻한 육수를 부어서 먹으면 된다네요. 그래야 음과 양의 성질이 서로 어울린다고 합니다. 하여튼 다른 소바 집에서 먹었던 방식과 달라 잠시 당황했습니다.

메밀국수, 맛을 봅니다. 밋밋합니다. 그동안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탓입니다. 그만큼 연하고 부드럽습니다. 보통 녹차는 목 넘김에 걸림이 없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차를 좋은 차로 꼽는데 그와 비슷하단 생각입니다. 쫄깃한 면발과 자극적이지 않은 육수가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굳이 화룡점정을 찾지 않더라도 전체적으로 맛이 차분히 녹아 있음을 느낍니다. 절집에서 대중공양으로 이곳의 메밀국수를 권하는 이유를 알 듯합니다.

양산맛집 화정의 메밀국수입니다.
 양산맛집 화정의 메밀국수입니다.
ⓒ 임현철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양산맛집, #연암스님, #화정, #메밀국수, #대중공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