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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길, 우리네 삶이 녹아 있습니다.
▲ 길 길, 우리네 삶이 녹아 있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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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사랑에 빠졌습니다. 누구랑 사랑에 빠졌을꼬? 아내를 슬슬 구슬립니다. 이실직고 하라는 거죠. 아내를 꼬신 주인공은 묘한 놈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이라나. 하여, 아내를 앞세웁니다. 왜? 아내가 고흥에게 마음을 빼앗긴 이유를 알아봐야 하니까. 이를 알아야 중년 남자도 새로운 변화를 꾀할 수 있지 않겠어요.

지난 13일, 아내 덕분에 산행을 결행했습니다. 전남 고흥 외나로도 봉래산(410m) 입구. 주차장은 텅 비어 한산합니다. 마스크를 쓰고 내립니다. 코로나19에 대비해 손소독제 등이 놓여 있습니다. 숨을 고르고 산에 오를 준비를 합니다. 역시 산은 산입니다. 한가롭고 넉넉합니다.

'봉래산(蓬萊山)'은 "중국에서 신선들이 살고, 사람이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진시황의 '불로초' 전설이 내려오는 봉래산에서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여기서 주목하는 건 '신선'입니다. 공자는 <논어(論語)> 자한편 13장에서 '신선이 사는 해동 조선'을 부러워했답니다.

"공자가 구이(해동 고조선)에서 살고 싶어 했다. 어떤 이가 말하길, 누추한 곳에서 어찌 지내려 하십니까? 공자가 말하길, 군자(신선)가 사는 곳이 어찌 누추하겠느냐?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자욕거구이 혹왈 누여지하 자왈 군자거지 하루지유)."

전남 고흥 봉래산행에서 배우는 천지자연의 지혜
 
빛내림 하늘에서 땅에내리는 축복이라지요. 빛내림 현상입니다.
▲ 빛내림 하늘에서 땅에내리는 축복이라지요. 빛내림 현상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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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봉래산행에서 뜻밖의 횡재를 했지 뭡니까. 천하 만물과 천지자연에게서 배운 지혜입니다. 다만, 무지한 인간이 그걸 모르고 지나치는 게지요. 그럼 만물이 가르쳐 주는 천지자연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 한 번 짚어볼까요?

첫째, 자연은 사전 '준비기간'을 줍니다. 어떤 산이든 대부분 오르막으로 시작됩니다. 30여 분 땀을 흘리고 나면 다음부턴 가뿐합니다. 이는 산에 적응하는 시간입니다. 세상 한복판에서 고생한 몸이, 불필요한 걸 배출하고, 필요한 것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래야 찌든 때를 벗고, 신선한 천지자연의 기운을 받아, 새로운 활력 충전이 가능해, 또 열심히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천지자연은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일깨웁니다. 산을 오르니 땀이 납니다. 마스크 덕분일까. 안경에 김이 서립니다. 아! 왜, 벗을 생각을 못했을까? 필요할 때 쓰면 될 것을. 늘 습관처럼 버릇처럼 끼고 있었습니다. 반성했습니다. 안경. 인간이 흐린 눈으로 보던 걸 똑바로 올곧게 보기 위한 임시방편. 행여 방편에 안주해 세상을 내 입맛에 맞게 보지는 않았는지…

안경을 벗었습니다. 그러자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를 감싸고 있던, 편견과 아집 및 무지의 굴레가 한꺼번에 녹아내렸습니다. 분별하지 않아도 되는데 기를 쓰고 분별하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벗자 변화가 뒤따랐습니다. 선(善)이든 비선(非善)이든, 아름답든 그렇지 않든 본질이 드러났습니다. 분별에서 벗어나니 새로운 분별이 시작되었습니다. 분별 아님도 없고, 분별도 없었습니다. '마음'이란 놈 참?

천지자연은 무지하고 아둔했던 인간을 일깨웠습니다
 
다도해 풍경 고흥 봉래산에서 본 다도해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물 반 섬 반입니다.
▲ 다도해 풍경 고흥 봉래산에서 본 다도해 풍경입니다. 그야말로 물 반 섬 반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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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우리네 삶, 쉼을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라! 한 고비 넘으니 즐거움이 따릅니다. 등산길 양쪽으로 바다가 펼쳐집니다. 이게 섬 산행의 묘미지요. 앞서 가던 아내가 잠시 쉬어가길 청합니다. 재촉할 이유 없지요. 땀 식히며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함께하는 산행 길에서 우리네 삶을 봅니다. 새삼스레 걸어온 길과 가야할 길 위에 과거 현재 미래가 놓여 있음을 봅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은 과거요, 쉬는 이곳은 현재며, 앞으로 갈 곳은 미래입니다. 이 길을 아름답게 혹은 추하게 만드는 건 오롯이 자신의 몫입니다. 어렵게 느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느리게, 빠르게 등 마음 내키는 대로 가면 됩니다. 또한 앞만 바라보지 말고, 뒤도 보며, 차 한 잔의 여유로 숨을 고르는 쉼 또한 필요하리라! 그러면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면 금상첨화 아니겠어요?

넷째, 어리석은 인간을 일깨웁니다. 봉래산 정상. 와! 감탄이 절로 터집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풍광이 멋스럽습니다. 고흥 거금도와 소록도, 여수의 돌산도와 금오도 등도 보입니다. 그야말로 물 반 섬 반입니다. 나로우주센터 우주과학관도 보입니다. 특히 아내가 반한 편백나무 숲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아내가 고흥에 빠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편백 숲'입니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 찾으면 더 정겹다나! 

정상에 서니 도드라진 게 있습니다. 모든 풍경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로따로였던 개체가 모여 '우리는 하나'로 일컫는 전체를 이룬다는 점입니다. 땅, 물, 바람, 공기, 낙엽, 숲, 돌, 편백 숲, 새, 동물에 인간까지 드니 하나의 세상이 완성됩니다. 얽히고설키며 만들어진 세상에서 잘난 척하며 살아왔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합니다. 어리석은 인간이었던 게지요. 천지자연은 인간을 일깨웁니다.

무채색의 억새에게서 겸손의 향기와 품격을 봅니다
 
억새 한동안 넋을 잃고 보았던 억새입니다. 빛바랜 무채색에서 겸손의 향기와 품격을 보았습니다!
▲ 억새 한동안 넋을 잃고 보았던 억새입니다. 빛바랜 무채색에서 겸손의 향기와 품격을 보았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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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랑 멋진 풍경 보니 너무 좋다!"

아내 한 마디가 정신 들게 합니다. 더 많이 같이 즐겼으면 좋았을 것을! 다섯째, 상생을 위한 배려입니다. 경사진 내리막. 아내에게 손을 내밉니다. 아내, 기다렸단 듯 손을 잡습니다. 아내에게서 묘한 사랑을 느낍니다. 설렘을 동반한 설익은 사랑이 아닌, 깊이 익어가는 사랑 덕분입니다. 이는 부부가 아니더라도 세상살이에 가장 필요한 상생을 위한 배려지요.

여섯 째, 억새에게서 겸손의 향기를 맡습니다. 억새를 봅니다. 찬바람에 나부낍니다. 곱게 저물고 있습니다. 때깔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철 지난, 그래서 더욱 퇴색되었습니다.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온갖 치장으로 싱그러움을 자랑했을 억새. 마침내 출발 당시 본래 색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무채색'의 빛으로 빛이 납니다. 왜냐? 다 내려놓은 자태에서 뭐라 형용키 어려운 순수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어섭니다.

무채색의 억새에게서 '겸손'을 읽습니다. 그냥 '낮춤'이 아닙니다. 가만있음에도 저절로 향기로 품어져 나옵니다. 낮춤, 하심(下心)은 내가 높음에도 낮추는 겁니다. 하지만 겸손(謙遜)은 나의 모자람을 깨우쳐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며, 상대를 존중하며, 예를 갖추어 바르게 대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겸양지덕입니다. 이걸 '내공'이라고도 하지요. 겸손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거나, 되어야 비로소 나오는 '품격'인 셈입니다.

일곱 째,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편백나무 숲 속입니다. 편백 향이 일품입니다. 편백나무 숲길 중간 지점에 들어서니 길과 주변에 빛이 납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빛 내림' 현상입니다. 그제야 정신 버쩍 듭니다. 아~! 너와 내가 함께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이화세계요, 무릉도원인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일깨웁니다.

천지자연은 무지몽매한 중생을 일깨우는 배움의 장소였습니다.
 
편백 숲 아내가 빠진 고흥 봉래산 편백숲입니다. 보슬보슬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운치가 더한답니다!
▲ 편백 숲 아내가 빠진 고흥 봉래산 편백숲입니다. 보슬보슬 보슬비가 내리는 날에는 운치가 더한답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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