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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저녁식사를 하는 텃밭
▲ 로스엔잴래스 텃밭 공동체 저녁식사를 하는 텃밭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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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5개월 동안 5개의 해외 공동체를 방문했다. 공동체들은 도보로 갈 수 있는 슈퍼마켓 하나 없는 두메산골에 있었다. 분명 시골에 있는 공동체보다는 생활비가 많이 들겠지만, 도시 공동체에 있으면 영화나 공연 같은 문화 혜택도 쉽게 누리고 사회 운동에 좀 더 활발히 참여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미국을 여행 중이었고, 관광지가 많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은 몇 년 전 읽은 책 중 '에코 빌리지, 지구 공동체를 꿈꾸다' 라는 책에서 알게 됐다. 공동체 운동 전문가인 미국인 교수 캐런 T. 리트핀이 14개의 공동체를 방문하고 쓴 책이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은 Vermont/Beverly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0분, 버스 정류장에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다. 공동체 바로 코앞에 3개의 한국인 교회가 있고, 10분 거리에 대형 한국 슈퍼마켓이 있다. 집 떠난 지 5개월, 한식이 무척 그리웠고 한국인 교회에서 한국어로 찬양하고 싶었다. 그런 부차적인 매력에 굴복해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을 방문한 건 실수였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의 방문객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공동체 방문객으로 머물면 자원봉사를 하고 공동체 사람들을 만날 기회는 얼마나 자주 있는지 물었다. 답변은 모호했다.

"You can do some volunteer work, and we have community dinner once in a week, every Sunday." Some volunteer work?

해석하기도 모호한 이 문장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공동체 식사는 겨우 1주일에 한 번. 밥 먹으며 사람 사귀는 일이야말로 공동체 생활의 핵심인데,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어떻게 사람을 만날까.

답변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 빼고는 가볼 만한 도시 생태 공동체를 찾지 못했다. 공동체에 도착해 2주일 동안 쓰게 될 방을 보자마자 눈앞이 캄캄했다. 하루 20불을 내고 묶게 된 방은 화장실, 부엌, 침실까지 모두 다 갖춰진 원룸 아파트였다. 공동체에 체류하는 동안 내게 필요한 건 나만의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요리할 수 있는 공용 공간이었다. 공동체에 공용 부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도 공용 부엌을 쓰지 않아 개미가 꼬였고, 향신료 병에는 먼지가 쌓였다.

2주간의 공동체 생활, 외로웠다

거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공동체
▲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 공동체 거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공동체
ⓒ 조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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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이라면 2주 동안 공동체에서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정확히 모르는 유령 같은 존재가 될 게 뻔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공동체 체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록 누군가와 10분 이상 대화 해본 적이 없었다. 말로만 외로운 게 아니라, 외로움에 불안해져 손발이 저렸다. 불안과 걱정이 심하게 느껴질 때 겪는 증상이다. 공동체 여행을 하며 공동체 회원들과 싸운 적은 있어도 외로웠던 적은 없었다.

지난달에 방문한 미국 미주리의 댄싱래빗 공동체에서는 방문객들도 공동체 회의에 갈 수 있었지만, 로스앤젤레스 생태 공동체는 공동체 회의에 방문객 참석을 금지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방안에서 혼자 핸드폰만 만졌고, 공동체 거실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도 같이 웃고, 이야기하려고 공동체에 온건데···.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은 나쁜 공동체는 분명 아니었다. 회원들끼리 농담하고 웃는 소리를 이따금 들을 수 있었고, 1주일에 딱 한 번 있는 공동체 식사에는 공동체 근처에 사는 4~5명의 이웃이 참여했다. 회원들끼리 분명 사이가 좋았고 이웃에도 평이 좋은 게 분명했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은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이어져 온 곳이다. 사람 간의 사이가 나빴다면 진작에 없어졌을 수 있다. 

회원들 간에는 잘 지내지만, 마을 회원들이 방문객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무척 바빴다. 어떻게든 사람들과 친해져 보려 아무 할 일도 없이 공동체 거실에 우두커니 앉아 있어도 봤지만, 사람들은 "Hey"라는 말만 남기고 지나갔다. 회원들과 도통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 공동체에서 유일하게 내 이름을 외우고 있는 공동체 설립자 로이스에게 회원들을 인터뷰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제야 4명의 회원과 1명당 30분 정도 대화할 수 있었다.

로이스는 70대인 노인이지만 1주일에 한 번 있는 공동체 투어를 혼자 진행했고, 마을 주변 노숙자의 건강과 위생을 챙겼다. 그는 마을이 속한 코리아타운의 환경개선과 교통문제 개선을 위한 지역주민 회의에도 활발히 참석했다. 다른 회원들은 내 이름조차 제대로 몰랐지만 오로지 로이스만 이따금 이메일로 내 안부를 물었다.

전기 기술자로 일하는 소머스는 아침 7시에 출근했다. 소머스의 아내 역시 물리치료사로 일하며 9시부터 6시까지 일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둔 두 사람의 한 달 생활비는 6000달러 정도였다. 미국 미주리 주의 시골에 있는 댄싱래빗 공동체 회원들이 1년에 1인 가구 10000달러 이하로 지내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많은 금액이다.

소머스는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 협동조합에서 시중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유기농 식료품을 구매하고, 마을 토지 신탁 덕분에 주변 시세에 비해 2배는 저렴한 아파트에 살 수 있지만, 의료보험, 교육비, 통신비, 차량유지비에 돈이 제법 든다고 했다.

지난 5월에 방문한 시골에 있는 댄싱래빗 생태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주당 30시간 이상 일하지 않았다. 그와 비교하면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 사람들은 임금 노동하는 시간이 길었고, 회원들 간의 교류도 적은 편이였다. 한마디로 먹고살기 빠듯해 보였다. 공동체에 살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보다 그나마 덜 바쁜 편이고,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이웃이 있어 육아에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마을 회원들은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회원들이 사는 공동체 주택은 커다란 거실, 뒷마당 공용 공간이 있는 다세대 가구 건물이다. 각 가구에는 화장실, 부엌이 다 갖춰져 있다. 당연히 내부 사람들 간의 교류가 적고, 관심사가 외부로 향할 확률이 높다. 공동체 생활을 체험하고 싶어 단기 방문한 외부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도시에 있는 공동체이기에 당연한 결과 일지도 몰랐다.

2주를 있기로 한 계획을 취소하고 1주일만 있기로 했다. 원룸 방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기 지겨워 할리우드도 가보고, 영화 '라라랜드'를 촬영한 그리피스 천문대도 가봤다. 하지만 온종일 입에 풀칠이라도 한 것처럼 입술을 딱 붙이고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날을 견디기 힘들었다.

모든 도시 공동체가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 같다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들은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에 대해 좋은 의견을 가질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생태 마을의 공동체 회원들이 오랜 시간 동안 자신들의 신념, 라이프 스타일, 비전에 따라 마을의 분위기와 방향을 만들었다. 서로 느슨한 관계를 맺기로 한 것도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든 마을의 규칙이지 않을까. 그 방향이 공동체 사람들 간의 밥풀 마냥 끈끈한 연결을 바라는 내게 맞지 않았다. 이번 공동체 여행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내가 공동체에 여행에서 바라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공동체에 지내며 태양열 기구 작동법을 배우거나 채식하며 지내는게 우선이 아니라, 지나친 임금 노동 없이 여유 있게 살며 이웃과 한 몸이 되어 서로 돌보며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 1주일 있다 가는 방문객이던 건 평생을 마을에 살겠다고 공언한 사람이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밥 굶지 않나 살피고 건강하게 지내는지 서로 돌보며 사는 모습을 보고 내 미래를 그려보는 거, 내가 공동체 여행에서 바라는 전부다.


태그:#세계일주, #공동체, #미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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