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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성소수자의 존재가 낯선 2017년 대한민국.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퀴어인컴퍼니)'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성소수자의 일상, 성소수자들의 평범하고도 다채로운 삶과 생각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일반 독자들에게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성소수자 당사자에게는 여러 직업군에 종사하는 '우리'를 보여줍니다. '우리 회사에 성소수자가 다닌다'는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기획입니다. [편집자말]
새벽 6시 30분. 모닝콜 알람 없이도 늘 비슷한 시각에 눈을 뜨는 민은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직행한다. 씻고 나와서 출근 복장을 입고 부엌으로 가면 식탁엔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콘플레이크 시리얼이 우유에 말아져 있다. 부모님과 두 살 아래의 여동생과 함께 사는 민은 매일 아침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는 시리얼을 먹고 남들보다 조금 일찍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민의 업무는 오전 8시부터 시작된다. 하루에 커피를 다섯 잔씩 마셔가며 몰아치는 격무를 해치우다 보면 어느새 시곗바늘은 저녁 8~9시를 가리키고 있다. 전쟁 같은 한국형 직장인의 삶을 사는 민에게는 회사 동료들이 모르는 비밀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퀘스쳐닝(Questioning)'이라는 그의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동성·이성·양성 등 타인에게 느끼는 성적 끌림)이다.

성적 지향은 '물음표', 이게 문제인가요?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8년차 회사원이자 퀘스쳐너인 민 님이다. 민 님의 사무실 책상에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잔뜩 놓여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8년차 회사원이자 퀘스쳐너인 민 님이다. 민 님의 사무실 책상에 테이크아웃 커피컵이 잔뜩 놓여있다.
ⓒ 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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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쳐너란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을 아직 고민 중이거나, 하나로 정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퀘스쳐너들은 아직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거나 자기 확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마치 민처럼.

"제가 성소수자 친구들에게 퀘스쳐너라고 처음 커밍아웃했을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민이는 잘 몰라서 그런다. 여기 있다 보면 변할 거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완벽한, 딱 틀에 맞춰진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정체성을 정하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가 그걸 요구하는 건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왜 제 정체성을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대로 그 감정을 받아들이면 되죠.

제가 처음 성소수자 모임에 나갔을 땐 제가 레즈비언인지 부치(Butch, 복장·말투·몸짓 등에서 소위 남성적인 방식으로 성별 표현을 하고 이를 편안하게 느끼는 레즈비언)인지 뭔지 스스로도 강박적으로 규정하려고 했어요. 그때는 무조건 그래야 하는 줄 알았으니까요.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너무 나 자신을 구속하지 말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혼란스러움 또한 정체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두려움을 덜 가졌으면 좋겠어요. 이건 지금의 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네요."

민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성적지향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은 20대 중반, 처음으로 동성애인과 사귀게 되면서다. 민은 당시 같은 여성끼리 연애하면서도 연인과 자신 둘 다 암묵적으로 '우리는 동성애자인 걸까? 우리가 레즈비언인 걸까?'와 같은 이야기를 피했다고 한다. 무엇이 두려워서였을까. 첫 애인과 2년 반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만나고 이별한 민. 그는 헤어지고 나서야 화가 나고 속상했다고 한다.

"분명히 내가 만난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왜 내가 여성과 만나고 있다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했을까. 서글펐죠. 나의 성적 지향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없고,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다는 게."

원래부터 여성인권과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민은 첫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인권단체를 검색해보다 당시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아래 행성인)가 주최하는 호모포비아 관련 세미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막연히 제 정체성이 궁금했어요. 내가 전 애인만 좋아했던 건지, 아니면 앞으로도 또 다른 여자를, 혹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지요."

민은 처음 행성인을 찾았을 때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이성애자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행성인 내에서 여성모임이라는 소모임까지 만들어 운영회원으로 3년째 활동하고 있다.

여성모임은 행성인 후원회원이 아니더라도 여성 성소수자이기만 하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모임이다. 민은 "처음 행성인에 들어왔을 때에는 성소수자는 레즈비언이랑 게이만 있는 줄 알았다"며 "퀘스쳐너라는 용어를 몰라서 처음엔 제가 레즈비언인지 아닌지 제 정체성으로 고민이 많았다"라고 설명했다.

민은 과거의 자신처럼 정체성을 고민하는 여성 퀴어들, 용어를 몰라서 고민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성소수자들이 조금 더 쉽게 벽장문을 열고 나올 수 있게 하고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여성모임을 만들어보고 싶어 활동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8년차 워커홀릭의 '꿈'

 민이 처음 영업지원 업무를 하게 된 것은 20대 초반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다. 알바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도 민은 자신이 맡은 업무는 무엇이든 쉽게 곧잘 해냈다.
 민이 처음 영업지원 업무를 하게 된 것은 20대 초반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다. 알바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도 민은 자신이 맡은 업무는 무엇이든 쉽게 곧잘 해냈다.
ⓒ 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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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업지원부서에서 일하고 있고요, 주 업무는 회사에서 진행하는 영업 프로모션 서포트, 각종 데이터를 엑셀 파일로 정리하기 등입니다. 엑셀을 잘해야 하는데 함수를 맨날 까먹어서 옆자리 언니한테 물어봐요."

민이 처음 영업지원 업무를 하게 된 것은 20대 초반에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다. 알바로 가볍게 시작한 일이었는데도 민은 자신이 맡은 업무는 무엇이든 쉽게 곧잘 해냈다. 일에서 재미를 느꼈고 적성에도 맞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8년 차 허리급 사원이 되어있었다.

회사가 한창 바쁠 때라 야근을 하고 인터뷰 장소로 나온 민에게 회사에 대한 불만은 없는지 물었다. 민은 매일 아침 8시부터 밤 8~9시까지 일하지만 큰 불만은 없다고 말했다. 워낙 일이 몰아치는 걸 즐기는 워커홀릭이라고. 하지만 회사보다도 최근 힘들었던 건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성평등 포럼에서 있었던 '나중에' 사건이라고 답했다.

"당시 문재인 후보보다는 그 안에 있었던 사람들의 '나중에'가 더 상처였어요. 왜냐하면 사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거든요, 인권에 우선순위는 없다는 걸요. 저희는 성소수자로서 생존권 하나를 가지고 나와서 발언했던 거고, 그래서 그 발언은 의사진행 방해가 아니라 하나의 절규였어요. 저희한텐 그 방법밖에 없었어요."

올해는 꼭 성소수자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엘라이들과 함께 캠페인을 하는 게 목표라는 민.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지지라는 게 꼭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도 행성인 같은 성소수자 인권 단체를 후원한다거나 온라인 서명에 참여하거나 저희 이야기에 관심 가지고 꾸준히 귀를 기울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지지라고 생각한다"며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그 날까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무지개 깃발. 여섯빛깔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상징색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무지개 깃발. 여섯빛깔 무지개는 성소수자의 상징색이다.
ⓒ 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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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17년 2월 21일 민(별명)님과의 대면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퀴어인컴퍼니’ 인터뷰 연재의 세번째 편입니다. 이 글은 저자의 블로그(https://brunch.co.kr/@seedinearth)에도 중복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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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찍는 펜기자와 글 잘 쓰는 사진기자 사이에 있고 싶은 사람.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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