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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있다.
▲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법관들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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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 19일 열렸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계기로 소집된 만큼 이 자리에 모인 판사 100명은 명확한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이 필요하다며 추가조사 실시 등에 뜻을 모았다(관련 기사 : 8년 만에 열린 법관회의 "판사 블랙리스트 추가조사").

그런데 마라톤 회의 끝에 나온 의결사안 중에는 '법관회의 상설화'도 있었다. 법관회의는 "사법행정에 관한 참여기구로서 법관회의를 상설화해야 한다"며 '전국법관대표회의(가칭)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을 만들자고 했다. 21일 오후 이성복 의장(수원지방법원 부장판사)은 대표로 대법원을 직접 방문, 대법관회의에 규칙 제정을 정식 건의했다.

'판사들의 사법행정 참여'는 기존 사법개혁 논의에서 한 발 더 나아간 주제다. 지금껏 법원 안팎에서 사법개혁을 말할 때는 주로 대법관 출신 다양화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등을 거론했다. 지난 2009년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촛불재판' 개입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판사들이 강력 반발했지만, 변화는 '법원장의 사건배당 재량권 제한'에 그쳤다. 1993년 3차 사법파동의 경우 사법행정권이 쟁점이었으나 유의미한 성과는 없었다.

판사들, '법원 안의 민주주의'를 묻다

명분만 있던 3차 파동 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번 법관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서 출발했다. 법원행정처는 내부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 와해시키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경향신문>은 법원행정처가 연구회 소속 A판사에게 연구회 활동 감시는 물론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 개최를 저지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해당 판사가 이 일로 사표까지 냈다고 보도했다. 또 A판사가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인복 전 대법관에게 진상조사를 맡겼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나 책임 소재조차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관련 기사 : 컴퓨터도 못 보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없다"는 조사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판사들의 목소리는 법관회의 소집이라는 행동으로, 이들이 직접 추가조사를 하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법관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날 회의는 '법원 안의 민주주의'란 화두를 던졌다.

사법부는 흔히 '민주주의 최후 보루'라고 불리지만 정작 그 내부는 민주적이지 않았다. 일선 판사부터 대법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판사의 인사권을 대법원장이 독점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장이 따로 있지만, 사법행정의 최종 결정권자는 대법원장이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만 해도 조사부터 징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양승태 대법원장이다. 잘못을 저질렀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는 구조였으니 진상조사 결과가 어정쩡할 수밖에 없었다.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식 사법행정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헌법 103조)'해야 할 판사들이 윗선 눈치를 보게 만든다. '튄다'는 소리를 피하고자 기존 법리에만 충실한 판결문을 쓰게 한다. 법원 안의 민주주의가 법원 밖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사법부 밖에서도 법관회의 상설화를 반기는 이유다.

법원 밖 민주주의로... "다양한 구성원 참여해야"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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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창익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위원장)는 "현재 대법원 규칙상 각급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구성할 수 있지만 유명무실한 제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또는 자의적 행사를 견제해야 하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서 법관회의 상설화 논의가 나온 것 같다"며 "판사들이 사법행정의 주체로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법관회의 상설화를 '판사노조 만들기'나 '사법부의 정치화'로 보는 시각에 적극 반박했다. 성 변호사는 "판사들이 월급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사법행정권에 의한 재판권 침해를 막으려는 것"이라며 "법률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을 가능성도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법관회의가 전국 법관들의 대표성을 얼마나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또 프랑스나 이탈리아 '사법평의회'처럼 사법행정기구를 따로 세워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이번 논의가 법관회의 상설화로 끝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판사들 스스로 내부 문제를 말하며 사법관료화를 견제해야 하지만 "이 일은 궁극적으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연결되는 만큼 국민 또는 그 대표인 의회가 참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독일의 경우 법관 인사 등 사법행정에 법무부와 의회가 참여하고, 법원은 적격 혹은 부적격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여러 주체들의 협력 속에 사법행정이 이뤄지는 까닭은 사법행정도 행정이라 의회 통제가 필요하다는 독일식 사고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판사들은 외부에서 참여하면 부작용만 커진다고 생각하는데, 사법행정은 재판이 아니다"라며 "(사법개혁과정에서) 법관들의 권위의식도 불식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태그:#사법개혁, #법관회의, #대법원, #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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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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